난곡성당 자유게시판

달봉 신부의 짧은 오늘의 복음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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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달현 [dalbong6] 쪽지 캡슐

2003-02-25 ㅣ No.1932

수녀님 두 분이 다른 임지로 가시게 되었습니다. 이별에는 반드시 다시 만날 것을 알지만 그래도 참 안타깝습니다. 다른 곳에서도 열심히 주님을 전하시리라 믿습니다. 조 루시아 수녀님 그리고 최 라우렌시아 수녀님 항상 건강하시고 늘 주님의 축복 가득하시기를 빕니다.

 

오늘 복음은 마르코 9,30-37절의 말씀입니다. 오늘 복음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수난에 대한 두 번째 예고를 하십니다. 물론 제자들은 뭔 소리인지 알아듣지를 못 합니다. "사람의 아들이 잡혀 사람들의 손에 넘어가 그들에게 죽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다."

 

예수님께서 가파르나움의 어느 집에 들어가셔서 제자들에게 길에서 무엇 때문에 다투었냐고 물으시자 대답을 못 합니다. 왜냐하면 제자들 중에서 누가 제일 높으냐하는 문제로 다투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첫째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꼴찌가 되어 모든 사람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신 다음 어린이 하나를 데려다가 그들 앞에 세우시고 그를 안으시며 이런 어린이를 받아들이는 사람이 곧 당신과 당신을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수난 예고를 하시는 데 제자들은 누가 제일 높으냐하는 문제로 다툽니다. 그들의 다툼을 지켜보고 계셨을 예수님의 마음이 어떠했을까는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의 그런 모습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가르침을 주십니다.

 

그 가르침의 핵심은 하느님 눈에 들어야 한다입니다. 이게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세상은 첫째를 바라지만 하느님은 꼴찌를 바라신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어리석게 보이고 모든 것은 잃은 것 처럼 보이는 꼴찌이지만 그 꼴찌가 하느님의 눈에는 첫째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눈은 유한하고 변덕스럽고 잘못될 수가 있습니다. 세상의 가치는 남은 반드시 밟고 일어서야 하는 적일 뿐입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시선은 무한하고 영원한 생명을 주고 결코 변함이 없으며 올바름 그 자체입니다. 하느님의 눈에 의하면 남은 밟고 일어서야 하는 적이 아니라 사랑할 대상일 뿐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누구의 눈에 들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까? 유한하고 변덕스러운 눈입니까? 아니면 영원한 생명을 주는 무한한 눈입니까?

하느님의 눈에 들도록 노력하는 하루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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