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기경님께 드리는 사랑의 편지

하느님께서는 제 머리카락까지도 아시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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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경 [bkkim] 쪽지 캡슐

2000-03-09 ㅣ No.1333

찬미예수님, 꽃샘추위는 물러가려는지 햇살이 좋은 아침입니다. 신문에 기사가 나가고 추기경님을 찾는 이들이 많아져 곤혹스러우실지 모른다는 생각에 한주 쉴까했지만 다시 이렇게 찾고 말았습니다. 답장 주신대로 새로 오신 정민수신부님은 인물도 좋으시고 특히 성악가 뺨치는 굵직하고 근사한 음성을 가지신 분이셔서 벌써 인기도 좋으십니다. 갑자기 혼자서 미사를 네대나 드리게 되어 피곤하지만 보좌신부님을 모실 수 있도록 본당을 키워나가자고 하셨어요. 앞으로 기대가 많이 됩니다. 실은 어제부터 조금 우울해져서 할아버지께 글을 올립니다. 제가 철이 들면서 나름대로 정립한 가치관에 따라서 지난 십년을 지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대학입시에서 전기전형을 실패하고 나서 곰곰히 생각한 끝에 재수도 포기하고 돈을 벌었죠. 그리고나서 지금까지 부모님 빚도 갚고 동생 유학도 보내주고 했거든요. 그러면서도 아깝다거나 헛된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선택한 일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자꾸 자격지심과 피해의식이 고개를 드는 것 같아 힘이 듭니다. 착하다고 훌륭하다고 생각해본 일도 없고 알아주리라 기대도 해보지 않았지만 받아온 사람이 계속 너무도 당당히 받기만 하는 것을 보면 이건 아닌데하는 생각이 듭니다. 주위에서도 그런 시선을 보내구요. 밤마다 기도를 드리면서 이제는 제 모습이 못마땅합니다. 이렇게 자신이 한 일을 스스로도 대견해하지 못하는 좁은 속으로 주님을 따르겠다고 하고 바라는 것을 얻게 해주십사하는 제 모습이 말입니다. 요즘은 모든 것을 되돌아 보는 중입니다. 저에 대해서 주위에 대해서... 주님의 은총이 늘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서울 대흥동성당 김보경로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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