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가출과 출가의 수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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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윤석 [drhur] 쪽지 캡슐

2002-02-25 ㅣ No.141

제목: 가출(家出)과 출가(出家)

 

 

 

그 날은 무척 눈이 많이 온 주일 하루였다. 몇 일간 눈이 온 것이 꽁꽁 얼어서 주일 내내 틈이 나면 주일학교 학생들과 함께 얼음을 깨는 작업을 했더니 몸살기가 있었다.

 

 마지막 저녁 미사를 마치고 일찍 자리에 누었다. 늦은 밤 인터폰 소리가 계속나서 나가보았더니 주일학교 교장 선생님과 낯이 조금 있는 한 고등학생이 있었다.

 

"막무간에로 신부님을 꼭 찾아 뵙는다고 이 학생이 그래서 .........."

 

 성당의 관리 아저씨의 말씀이 신부님 피곤하시니 내일 오라고 했더니 계속 기다린다며 이 추위에 3시간이나 사제관 문앞에서 기다려서 그 이유를 물었는데 대답도 안하고 해서 신부님께 인터폰 한 것이라는 것이다.

 

 상담을 하고 싶다는 그 학생의 말에 성당은 이미 난방이 다 꺼졌기에 성당을 나와 교장선생님과 그 아이와 함께 조용한 레스토랑에 갔다.

 

"너는 내가 성당에서 자주 본것같은데?" "내 신부님 그렇군요! 저도 많이 보았어요!"

 

교장 선생님 말씀이 성당에 잘 다니고 밝고 명랑하게 생활하는 학생이라고 하였다.

 

그 아이는 추운 곳에 한 참 있어서 인지 얼굴과 손이 금새 발갛게 되었다.

 

"코코아라도 한잔 시켜줄까?" 그는 대답을 머뭇거렸다.

 

" 혹시 너 지금까지 저녁 안먹었니?" 그는 그 제사 대답을 했다. "네!"

 

 "아니 지금이 밤 10시인데?" "그리고 너 고3이잖아?" "왜 저녁을 안먹었어?"

 

그는 한참만에 대답했다.

 

"저 가출했습니다." 그의 고개는 떨구어졌다.

 

자초지정이야 어찌되었던 밥을 먹여야 하겠다는 생각에 돈까스를 하나 주문하였다.

 

그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아무말 없이 돈까스를 먹었다.

 

"배고프지 않니 어서 먹어 왜 어려워서 그래?"

 

"아니요! 종일 굶었어요! 그러나 왠지 허겁지겁 먹는 모습 보여드리기 싫어셔요!"

 

그의 말에 왠지 믿음이 갔다. 자존심이 강한 그의 성격이 보였기 때문이다. 명랑하게 생활했던 그 아이가 왜 가출했을까? 그 학생이 식사를 마치기까지 나는 천천히 녹차를 마셨다.

 

왠지 그가 식사를 할 동안 나는 다른 일을 하면서 시선을 다른 쪽으로 돌려주어야 할 것 같았다.

 

 녹차를 마시면서 창밖을 바라보았다. 눈이 내렸다. 함박눈이었다. 오늘 하루 아름답게만 보였던 함박눈이 점점 어두워보였다.

 

 식사를 마쳤다. 그는 자신이 가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잘 정리하여 말하였다. 그리고 그가 갈등했던 문제들에 대해 여러 가지 입장에서 이야기하였다. 부모님의 입장 그리고 형제들의 입장, 자신의 입장! 그리고 자신이 가출하게 될 상황을 안타까워하면서 부끄러워했다.

 

돈이 떨어진 그에게 현실적인 그의 거취문제는 너무나 힘든 것이었고 자신도 모르게 성당으로 왔다는 것이었다.

 

순간 하느님께 감사드렸다. 이 아이가 집이 아닌 다른 곳으로 갔다면 어떻게 됐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도 모르게" 그 순간 성당으로 오게 되었다는 그 말에 나는 정말 하느님이 살아계심을 느꼈다.

 

그는 천천히 그 동안의 일을 이야기 하였다. 나름대로 조리와 판단이 있었다.

 

그의 안타까운 환경에 가슴이 아팠다.

 

그 아이는 이렇게 말하였다. "누구를 원망하고 싶지도 않았고 상황을 변화시킬수도 없었고 제가 그 변화를 이르킬수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 참을수 없었습니다. 다만 얼마간 쉬고 싶었습니다."

 

  "다만 얼마간 쉬고 싶었다."는 그의 말은 어쩌면 지금 우리사회의 청소년들 모두가 갖는 공통된 바램일것이다.

 

 I.M.F는 우리나라에 경제적 문제 뿐아니라 이로 인해 가정을 붕괴시키는 영향을 가져왔다. 또한 여기에 입시지옥이라는 환경 또한  우리 아이들의 영혼과 꿈을 병들게 하였다.

 

물론 가출하는 아이들중에는 여러 가지의 환경적 원인과 본인의 문제도 있을 것이다.

 

  나는 가출은 무조건 나쁜것이고 미성숙한 행위이니까 빨리 집으로 들어가라는 말을 쉽게 그 아이에게 할 수가 없었다.

 

  자존심 강한 맑은 영혼의 소유자인 그 아이에게  내가 할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할 때 나는 참 안따가움을 느꼈다.

 

나는 지금 그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하나? 무엇을 해주어야하나? 나는 순간적으로 너무나 혼란스럽고 무거운 책임감을 느꼈다. 오늘 억지로 라도 집으로 돌려보내면 또 가출하면 어떻게 하나?"

 

 이런 걱정과 책임이 내 마음을 누르고 있을 때 그 아이는 이렇게 말하였다. "신부님 저에게 필요한 것은 제 말을 들어줄 진실한 사람이 한명 있으면 하는 것이었어요! 저는 알아요 신부님이 저의 집의 일을 다 해결하실수도 없고 이 세상에 저와 같은 상황에 있는 아이들을 다 도울수도 없으시다는 것을...... 다만 저는 성당에 계시는 신부님에게 가면 저의 말을 편견없이 다 들어는 주실 것 같아 왔어요! 이렇게 이야기 하니 너무 편해요! 저 들어갈께요! 집으로"

 

순간 나는 너무 내자신이 초라해 짐을 느꼈다.

 

그는 보이지 않는 것을  바랬던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말을 귀담아 공감해 줄 수 있는 마음이었다.

 

나는 그 아이가 자신의 아픔에 대해 이야기 하였을 때 현재 그의 아픔보다는 "어떻게"라는 단어를 먼저 생각하였던 것이다.

 

"어떻게 그를 설득하여 집으로 보낼까? 어떻게 그의 부모에게 이야기하여 이 학생이 혼나지 않게 할까? 어떻게 하면 이 아이에게 구체적 도움을 줄 수 있을까?"

 

그 아이는 집으로 돌아가면 아버지의 질책이 두렵다며 그래도 이 추운 겨울 날씨가 아버지께 덜 야단맞는데 도움이 될것이라며 먼저 일어났다.

 

그는 늦은 밤이 되어서야 흰눈을 다시 맞으며 어둠속으로 들어갔다. 추운 날씨가 집으로 들어가기에는 자신에게 좋은 핑계가 된다는 그의 말은 나의 마음에 진한 우수를 남겼다.

 

 어둠속에 내리는 하얀 꽃의 배웅속에서 집으로 돌아간 그 아이는 그 날 저녁 나에게 어린 왕자의 깨달음을 가져다 주었다.

 

 눈 내리는 어둠속으로 살아진 그 아이의 말처럼 진정한 소중함이란 "들어주는 것이었고 자신을 그대로 공감에 주는 존재였다."

 

 그러나 "어떻게"만을 생각하는 나의 작은 존재수준을 그 어린 왕자는 변화시켜주었다.

 

변화는 공감이 있을 때 시작되는 것이다.

 

  그와의 대화중에 "어떻게"만을 생각한 나는 "안타까움"이라는 감정을 마음에 간직하게 된 반면 자신의 처지를 솔직히 "고백"한 그 아이의 영혼은 다시 돌아갈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되었다.

 

어린왕자라는 책의 어디에선가 이런 문장을 읽은적이 있는 것 같다. "소중한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다. 소중한 것을 바라볼수 있고 들어줄수있는 마음이 필요하다."

 

 나는 그날 밤 잠들기 전에 그 아이에게 다음에 만나면 꼭 해줄 말이 생각났다. "너는 가출을 한 것이 아니라 세상과 자신을 성숙시키기 위해 잠시 출가한 것이다."

 

그는 나에게 어린 왕자의 깨달음을 전해준 작은 어린 왕자였다.

 

 한 달이 지났다. 봄기운이 움트는 늦겨울의 주일날  성당 뒷편에 말끔히 차려 입은 한 학생이 눈에 띄었다. 바로 그 학생이었다. 그는 나를 보고 웃고 있었다. 나를 보고 환하게 웃어주는 그 미소를 통하여 나는 그 어린 왕자가 그 날의 어둠을 눈꽃으로 승화시켰음을 직감할수 있었다.

 

"신부님 저 그 날 잘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께 야단 많이 맞지는 않았습니다! 날씨가 추운게 정말 다행이었어요! 그날! 그 눈많이 온날!"

 

"벌써 봄이네요!  올해는 참 눈이 많이 와서 도로가 꽁꽁얼었었는데 ......... 이젠 다 녹고!"

 

그의 말에 그 어린 왕자를 걱정했던 나의 마음이 저 눈처럼 녹는 듯하였다.

 

어느덧 그를 통해서 올 봄에는 "듣는 사랑"이라는 씨앗이 내 마음에 새롭게 싹트게 될 것 같다. 물론 "말하는 사랑! 행동하는 사랑!"도 잘 가꿔야 하겠다.  

 

 사실 그 싹을 심어준 것은 그 어린 왕자의 출가였다.

 

출가와 가출은 그 의미가 사뭇다르다. 출가는 어느 현자나 성자, 혹은 수도자가 깨달음을 얻기 위해 그리고 도를 닦기 위해 자신의 가족을 떠나거나 자녀가 성장하여 결혼하므로써 독립하여 새로운 가정을 일구기 위해 집을 떠나는 것을 말한다.

 

 가출은 그러나 미성숙한 자녀들이 부모의 동의 없이 집을 나가게 됨으로써 부모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해본다. 부처님이나 예수님이나 그분들의 부모 이외의 사람들에게는 출가의 의미였지만 그 부모님들에게는 가출이 아니었겠나?하고 생각 볼수 있겠다.

 

예수가 어렸을때 가출(?)을 해서 성당에 가서 당시의 사제들과 율법학자들과 대화를 나누셨다고 한다.

 

 몇일을 잃어버린 아들을 찾아 헤메인 마리아는 이렇게 말한다.

 

"너는 왜 우리의 속을 이토록 태우느냐? 나와 너의 아버지가 너를 얼마나 찾았는지 아느냐?"

 

그러자 예수는 대답한다.

 

"제가 아버지의 집인 이 성전에 있을 줄 왜 모르셨습니까?"

 

그리고  어린 예수는 부모에 말씀에 순종하고 다시 부모님을 따른다.

 

어린 영혼으로 현실적인 삶의 어려움을 이기지 못해 집을 나간 그 학생은 따뜻한 잠자리가 마련되고 먹을 것이 보장된 보호시설이나 복지 시설을 찾기 이전에 난방이 꺼진 어두운 성당을 찾아왔다. 왜 그랬을까?

 

 인간에게는 의식주의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사랑이다. 사랑은 어떻게가 아니라 함께 공감함이다. 자신의 입장을 공감해 주는 사랑에 대한  허기짐은 육체적인 배고픔보다 더 커다란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분명 가출(加出)한(?) 예수는 틀림없이 하느님은 바로 사랑이시며 인격적인 사랑으로 함께 고통을 나누시는 분임을 학자들과 나누고 계셨을 것이다. 그리고 성장하신 이후에 예수가 서른살이 되어 출가(出家)한 이유도 그런 하느님의 사랑을 이젠 공간적인 성전뿐만아니라 인간의 모든 영역에서 그 사랑을 함께 느낄수 있게 본인 스스로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출가(出家)하신것이라 믿는다. 바로 움직이는 사랑의 살아있는 성전이 되기위해서 .....

 

종교의 역할과 존재 목적은 바로 여기에 있다. 보이지 않는 다정함이며 공감하는 사랑이다.

 

 나에게도 어려운 학창시절이 있었다. 동생의 병으로 수년간을 아버지를 모시고 혼자 생활하고 있는 사춘기의 한 시절에 힘든 친구하나가 어느 날 밤 가출을 하여 우리 집에 함께 지낸적이 있었다. 나는 가출한 그 사실을 비밀로 해주었고 그래서 그 밤을 함께 지내게 되었다. 그는 편히 잠들지 못하고 나에게 자신의 처지를 밤새도록 이야기하였다. 나는 그 친구의 말을 듣고 너무나 속이 상해 함께 밤을 꼬박 지샌 적이 있었다.

 

밤이 새도록 그 친구의 이야기는 멈추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도시락 두 개를 싸서 함께 학교에 갔다. 학교에서는 가출한 사실이 드러나 그의 부모님이 점심시간에 오셨다. 나와 함께 먹던 점심도시락을 다 먹지 못한 체 그는 그의 집으로 가야만했다. 나 역시 아버지에게 커다란 꾸중을 들었다.

 

그 날 저녁 나와 그의 반씩남은 그 도시락을 설거지하며 한참을 그 도시락을 씻었다.

 

얼마 뒤 그는 학교를 그만 두었고 그만 두는 날 나에게 짧은 편지 한 장을 써서 주었다. "고마웠어 그때" 그는 자기를 집에 재워주어서가 아니라 도시락을 싸주어서가 아니라 그때!라는 말을 하였다. 그 당시에는 그때를 무슨 말인지 정확지 몰랐지만 지금은 알 것 같다. 그때 함께 들어주고 공감해 주어서!

 

 

 

감수성 많던 나의 고등학교 시절에 사실 나는 이 세상에 필요하고 도움이 되는 행복한 길을 걷고자 신부가 된다고 출가를 결심하였다. 그러나 부모님은 무척이나 서운해 하셨다. 부모의 입장에서는 분명 가출로 느껴졌을 것이리라.

 

나도 나이가 차서 이젠 어느 가정의 아버지의 연배가 되었는데 어머니는 아직도 나를 집나간 철부지 아들 마냥 걱정하신다.

 

어떻게 보면 평범하게 가정을 일구고 사는 행복을 포기하고 봉사직을 수행하기 위해 독신을 길을 걷는 것이 출가로 보이지만 어머니의 깊은 마음 한 부분에는 늘 안따가운 가출로 느껴지는 아쉬움과 걱정이 서려있는 것이다.

 

 

 

그 어린 왕자가 나에게 온 그 밤에 나는 신부가 되겠다고 신학교에 들어간 아들을 생각하시는 어머니의 마음을 생각해 보았다.

 

어머니께서 신학교때 신부가 되는 수업을 받는 동안 보내신  사랑과 염려가 담긴 그 편지들을 다시 꺼내 보았다. 나는 출가와 가출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이제는 열심히 자신의 길을 걷는 그 어린 왕자에게 나는 이렇게 말하였다.

 

 

 

"너는 그날 가출한 것이 아니라 출가한 거야! 확실히!"

 

 

 

 

 

그와 함께 걸어간 그 겨울의 거리는 벌써 봄기운이 가득했다.

 

 

 

나는 언제 눈꽃을 맞으며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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