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성당 게시판

신앙 vs 경제적 원리

인쇄

이재화 [Lanselmo] 쪽지 캡슐

1999-12-14 ㅣ No.1852

 경제적 효율성을 가장 크게 하기 위해서는

 가장 적은 투자를 통해서 가장 많은 이익을 거두어야 한다

 

정확하게 옮겼는지 모르겠지만 고등학교 경제시간에 배웠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경제 원리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효율성, 가시적 성과,

이익 등이다.

한마디로 손해보는 짓은 하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리라.

 

2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 사회에서 태동했던 비판주의 사회철학자들은

인간 이성의 도구적 기능(경제, 과학기술)이 인간의 일상과 인간관계를

지배하게 되면 비인간적인 사회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었다.

 

딱딱한 이론을 들먹거리지 않더라도 요즈음 우리 사회의 현실은

이러한 경고를 피부로 느끼게 해준다.

소위 IMF 시대를 거치면서 우리 사회의 중심적인 축은 경제적인

원리로 완전히 넘어가지 않았던가!

 

판공성사를 위한 성찰을 하면서 나의 신앙 생활과 사목에 있어서도  

경제적 원리가 깊이 자리잡고 있음을 발견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토록 신앙인의 생활은 철저히 복음적 원리에 의해 움직여야 한다고 강조했건만, 정작 나의 삶의 모습이란,,,

 

주일학교와 청년 공동체의 사목에 있어서 가시적인 성과가 나와야

한다는 초조함, 노력한 만큼 알아주지 않고 호응이 적다는 섭섭함,

불편하거나 내게 도움이 되지 않을 사람들은 멀리하고 싶은 이기심,

한마디로 손해보는짓은 절대로 하지말자는 나 중심적인 삶의 모습이다.

 

성탄은 경제적인 입장에서 볼때는 한마디로

비효율적이고 손해보는 짓이다.

신이 인간이 되어 왔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그런데 그 어리석은 행동이 세상을 구원하는 힘이되었다.

세상의 그 어떤 경제적, 정치적, 군사적, 과학적 힘도 할 수

없었던 것을 사랑이라는 이름의 손해보는 선택은

능히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성탄을 준비하면서 다시 한번 고백해본다.

 

이 세상을 복음적인 원리로 산다는 것은

때론 손해를 보고, 비효율적이며,

지름길을 두고 멀리 돌아가는 듯이 보이지만

결국 그 삶만이

우리를 참으로 변화시킬 수 있고

우리를 참으로  행복하게 할 수 있고  

우리를 참으로 하나될 수 있게하고

마침내 우리를 참으로 구원할 수 있다고.

                                     



67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