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오병이어(五餠二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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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윤석 [drhur] 쪽지 캡슐

2005-08-18 ㅣ No.179

 

 제목: 오병이어(五餠二魚)


오늘복음의 사건은 성체성사에 예표가 되는 사건이 됩니다.

초대교회때부터 성체성사, 그리스도의 상징물로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는 예수님의 사랑과 희생을 나타내 줍니다.

희랍어로 물고기를 잌수스라고 합니다. 이 단어는 하나의 단어 처럼 보이지만 하느님의 아들, 구원자,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단어의 첫 철자를 따서 한단어를 만들면 암호처럼  잌수스라는 단어 즉 물고기가 됩니다. 따라서 잌수스라는 말은 오늘 어린 소년이 예수님께 봉헌한 그 착하고 소박한 나눔의 봉헌물 물고기인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의 신원 즉 정체성을 나타내주는 것이며 나아가 앞으로 당신이 세우실 교회의 성체성사의 예표가 됩니다.

따라서 초대 박해 시대때의 신자들은 자신들을 알아보는 표로 이 물고기 그림안에 희랍어로 잌수스라고 적은 표식을 보여주었다고 합니다.


 로마 근교에 가면 까따곰바라는 지하묘지가 넓게 있습니다. 그리고 깊은 묘지에 들어가 불을 밝혀보면  까따곰바의 성당 주위에는 이 물고기와 빵의 그림이 많이 그려져 있습니다.

까따곰바의 성당은 지금 우리가 보는 화려하고 커다란 성당이 아닌 까벨리노 즉 작은 경당 수준의 동굴입니다. 로마 근교의 이 지하성당은 응회암으로 되어 있는데 응회암(凝灰巖)이란 습기를 먹으면 부드러운 흙이 되고 다시 말리면 철처럼 강하게 굳어지는 특징이 있어 쉽게 지하 묘와 성당을 팔수 있다고 합니다. 제가 이 까따곰바에 세 번갔었는데 물을 뿌리고 조금을 팠는데도 과연 쉽게 팔 수 있었습니다.

수백년간의 박해에서도 우리는 빛이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체험하였습니다. 바로 성체성사안에서입니다. 까따꼼바의 성당벽에는 7성사의 그림과 성모님의 그림, 그리고 성모님이 아기예수님께 수유(授乳)하시는 그림도 잘 그려져 있습니다.

저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참으로 애절하리 만큼 따뜻하고 정이 많으신 모습을 만났습니다.

제자들은 너무 많은 군중이 몰려있고 이곳은 외딴 곳이니 제작기 헤쳐 마을로 돌려 보내라는 매우 합리적인듯 보이는 말을 합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그들을 보낼 것 없이 너희가 먹을것을 주어라.”

하지만 우리에게 있는 것이라고는 이 빵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 뿐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이리 가져오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참 많은 것을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아직도 제자들은 깨닫지 못하고 군중을 돌려보내라고 합니다.

우리는 주님과 함께 먹을 것을 주려고 애쓰는 시도도 하지 않습니다

현실이라는 것을 우리 임의로 판단해 실망하거나 책임을 회피하는 아주 교만과 불신앙으로 포장된 이기주의에 빠져있지나 않은지?


진정 아기를 사랑하는 엄마는 초인적인 힘과 용기를 낸다고 합니다. 엄마는 아기에게 현실을 강요하거나 체념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한계를 넘어 목숨을 걸고 아기에게 헌신합니다.

우리가 신앙(信仰)이라고 하는 이말 어원을 보면 사람이 하늘을 믿고 하늘을 향해 두팔을 벌려 달라고 애원하고 그 것을 꼭 얻어 감사의 기도를 두 팔을 벌려 봉헌하는 자세를 그림으로 그린것이라고 합니다.


"못해주어서 안달“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부모의 마음을 나타낸 통속적인 말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측은한 마음이라고 한 예수님의 마음이 바로 그런 마음입니다.


측은한 마음!


이것은 사제의 마음!

 그리스도인의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의 상황에서 주님 은 “너희가 먹을것을 주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무엇을 줄수 있을까?”라는 것보다는 “뭐 정말 주고 싶은데 어디 줄것이 없나?”

하고 주기 위해 애쓰는 마음이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풍요로워서 나누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작은 것들을 나눌 수 있는 그 자체가 감사! 그자체가 미사의 정신입니다

나눔의 의미를 모르는 자는 감사의 기도를 봉헌할수 없습니다. 오늘 예수님은 나누어 주시기 전에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봉헌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은 나눔이 되기 전에 그리스도를 통한 기도로 승화될 때 또한 풍요로움의 기적이 일어납니다.

사랑하지 않는자는 결코 나눌  수 없고 나눌수 없는 자는 결코 기도할수 없고 기도할수 없는 자는 결코 풍요로울수 없으며 진정하느님안에서 이와 같은 풍요를 경험하지 못한자는 기적을 경험할수 없습니다.

우리는 미사때 감사송을 봉헌합니다.

나눔이전에 이 기도를 사제가 봉헌합니다.

처지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마음으로 즉 측은한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이 중요한것입니다.

우리는 매 미사때 마다 저 작은 성체안에 얼마나 큰 자비와 사랑이 있는지를 감탄해야 하며 늘 이 작음이 가장 무한한 사랑임을 신앙의 도량형으로 잴수 있을 것입니다.

“일단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다음에 당신이 원하시는 것을 무엇이든 하십시오!” * 성 아오스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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