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오마리에-old

6.2 성모님의 겸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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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윤석 [drhur] 쪽지 캡슐

2002-03-02 ㅣ No.17

6.2 성모님의 겸손을 본받음은 레지오 활동의 뿌리이며 수단이다.

 

 그 나라의 군사력은 국력의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아무리 경제력이나 외교력 기타 의 선진국의 요소를 갖추었다고 해도 자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할수 있는 군사력을 갖지 못한다면 그 나라의 미래는 보장받을 수 없다.

우리나라는 지정학적등의 요건으로 많은 전쟁을 겪어왔으며 오랜 시간을 군사독재의 그늘아래 고통을 당한 경험으로 "군대"와 군대에 관련한 용어에 대해 다소 부정적이며 편견적 견해를 갖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레지오 마리애는 "성모님의 군대"라는 뜻이다. 세속적 군대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갖고 있는 어떤이들은 레지오 마리애에 세속군대의 부정적 요소내지는 자신이 갖고 있는 세속군대의 선입관를 그대로 투영시켜 아전인수(我田引水)격 으로 이해함으로써 무지(無知)로부터 기인한 여러 오류(誤謬)의 결과를 낳고 있다.

 어떤 철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먹어보고 알고 있는 사과! 그 사과가 단순히 지금 네가 말하는 것과 동일한 것이라 말할수 있나?"

물론 이 질문은 철학의 사조에 있어서 경험주의나 언어철학 내지는 여러 철학 분야에서 중심테마로 다루어 지는 개념에 대한 문제지만 한번쯤 생각해 볼문제이다.

"군대"라고 했을 때 레지오라는 라틴말의 번역으로서의 군대와 지금 현시대의 군대는 다를 것이다.

그리고 같은 요소도 있을 것이다. 로마의 군대라는 레지오라는 라틴말과 또한 레지오 마리애로서의 군대 또한 다를 것이다.

레지오 교본은 어느 신학자가 체계를 갖고 쓴 것은 아니지만 놀라운 신학적 체계와 철학적 안목을 바탕으로 저술된것만은 이책을 깊이 연구하거나 통독한 이들은 의심의 여지 없이 인정할 것이다.

 우리 레지오 단원들은 레지오 교본을 읽을 때(성서를 읽을 때도 마찬가지지만) 그 단어와 문장의 개념을 은총으로 조명된 이성을 통하여 이해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은총으로 조명된 이성이란 단순한 개인만의 생각과 지식이 아니라 성 아오스딩이 시편을 인용해 표현하신 것처럼 "당신 빛으로 빛을 보옵나니!'라는 인식으로 진리를 알아듣는 것이다.

즉 빛이 없으면 빛조차 어둠조차 알수 없는 것처럼 빛이라는 근원적인 매개체를 통해 빛 자신을 포함한 모든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이 빛은 바로 하느님의 은총이기에 은총이라는 빛을 통해 우리의 이성이 밝아져서 낡은 도서관의 사장(死藏)된 지식이 아니라 하느님의 영원한 진리로서 알게 되어지고 나의 영혼과 육신과 생활 등의 삶의 전반에 뿌리가 되고 눈이 되는 지혜를 얻게 됨을 말한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더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영혼과 정신을 갈라 놓고 관절과 골수를 쪼개어 그 마음속에 품은 생각과 속셈을 드러냅니다." (히브리서 4:10-11)

 그러면 이러한 사전(事前)적인 의식을 갖고 교본을 열어보자! 교본의 49페이지에서 55페이지까지의 내용의 주제는 바로 "겸손"이다. 하지만 필자가 페이지의 수를 언급한 것은 매우 역설적인 표현이다. 여기서 말하는 겸손은 교본의 겨우  여섯 페이지에 해당하는 것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겸손은 레지오의 전 교본의 각장에서 피어나는 꽃과 같은 영적인 지식을 낳게하는 뿌리이기 때문이다. 꽃이 여러 꽃송이를 갖을수 있지만 모두 한 뿌리에서 영양을 공급받기에 2항의 제목이 성모님의 겸손을 본받음은 레지오 활동의 뿌리이며 수단이라는 표현으로 설정된것이다. 레지오는 교본은 2항에서 겸손을 설명함에 있어서 레지오 마리애안에서의  겸손의 역할과 의미를 조직적 측면에서 영적측면에서 그리고 단원들과 하느님과의 관계성안에서 신학적으로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이론과 마리아론적으로는 몽포르의 루도비코의 말을 인용하였다. 6장의 2항은 교본에서 손꼽히는 간결하고도 완전한 구조와 설명으로 겸손을 설명하고 있다.

2항에 첫 문장은 레지오는 당원들에게 말할 때 레지오 마리애는 전투 용어를 자주 쓰고 있다는 표현으로 군사적 개면으로 부터의 설명을 시작한다.

즉 레지오가 군대라는 측면을 강조하면서 군대의 유일불변의 필수 요소인 굳센 정신과 불굴의 의지를 강조한다. 이러한 정신의 강조는 바로 일치를 위한 것이다.

1항에서 우리는 성모님께 대한 신심을 묵상하는 것은 바로 하느님과 일치하고 동료단원들과 일치하는 것임을 알았다.

겸손은 바로 이러한 일치를 이루기 위한 묵상을 시작하는 발판이다.

레지오의 우수성은 기도와 활동 그리고 이론과 실제의 천상적인 조화라고 말할수 있다.

성모님의 겸손은 단지 한 여인의 숨겨진 미덕으로서의 인내가 아니었다.

바다와 강과 시냇물과 저수지가 하느님 앞에 처음 나아갔다.

하느님이 말씀하셨다. "너희들 넷만이 생명의 원천인 물을 담아낼수 있게 되었다. 그러면 너희 들의 소원이 무엇이냐?"

첫째로 막내인 시냇물이 말했다. 저는 하늘에 가장 가까이 있게 해주셔요? 산에 제일 높은 데 있으면 나무도 많아서 외롭지 않고 새소리도 듣을 수 있죠! 그리고 산아래로 갈수록 물이 오염되니 전 산위의 폭이 작은 곳에 있을래요!

둘째로 세침떼기 우물이 말했다. 저는 흐르는 물이 싫어요. 산위에 있는 시냇물에게 1

물을 받아서 내안에 담고 싶지 않아요 내안에 물을 가득 담고 필요한 사람에게 퍼주고 싶어요!

셋째로 뽐내기 강이 말했다. 저는 넓은 폭을 가지고 싶어요. 그래서 저를 건너려면 다리를 건설하지 않으면 안되서 모든 사람이 저의 위대함을 알게 하고 싶어요!

넷째로 장남인 강이 말했다. 글쎄요! 저는 동생들이 자리를 모두 차지해서 땅에서는 자리가 없네요! 산자락은 시냇물이 땅속은 우물이 그리고 경치좋은 대지 옆에는 셋째가 차지 하였으니! 저의 자리는 당신이 마련해 주시지요?

하느님은 흐믓한 미소를 지으며 말씀하셨다. 그럼 자리가 하나 밖에 남지 않았구나! 이세상에서 가장 낮은 데 밖에 없는데 괜찮겠니?

"네!"

바다는 그래서 가장 낮은 곳에 자리 잡았다. 세상에 첫비가 왔다.

시냇물은 맑은 물을 처음으로 받는 은총을 우물은 여름에 시원한 물을 주는 자기만의 능력을 그리고 강에 물이 차자 건널수 없어서 사람들은 그 강이 범람하지 못하도록 건축이라는 것을 시작했다. 강의 어깨는 으쓱대었다.

그러나 바다에는 그런 자랑 거리가 없었다. 시냇물의 첫 순간의 아름다움도 우물물의 자기만의 시원함도 그리고 바다에는 다리도 없었다.

맨 아래에 있기에 더러운 물이 다모였다. 하지만 그것을 밤새도록 정화해야했다.

얼마뒤 첫 가뭄이 있었다. 엄청난 가뭄이었다. 시냇물이 말랐다. 시냇물이 있던 자리는 추하게 땅이 갈라지게 되었다. 물고기도 강으로 떠나고 그는 외로워졌다.

우물은 후회했다. 물이 없어지자 자신의 가슴을 삽과 곡갱이로 계속 팠다. 가슴이 아팠다.

자신을 계속 비워해 했다. 그러나 한계가 있었다. 물이 다떨어지자 남은 것은 자신의 깊이 구멍난 가슴뿐이었다. 우물가의 소담스런 이야기 소리도 이젠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강역시 말라버렸다. 강위로 놓인 다리는 그리 위대해 보이지 않았다. 다리가 없어도 다릴수 있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지나자 그는 길이라는 새로운 친구에게 자리를 내어주었다.

이젠 다리아래에 강이라는 표지판이 아니라 길이라는 표지판이 붙었다.

그런데 바다는 변하지 않았다. 가뭄이 들어도 물들은 시냇물에게 강에게 우물에게 다시 거슬려 돌아가지 않았다. 물들은 모두 바다에게만 갔다.

동생들이 불행해지는 것을 보고 바다는 하느님께 기도하며 울었다.

바다가 뜨겁게 울자 바닷물이 모두 수증기가 되었다. 다음날 하늘에는 하얀 친구가 떠있었다. 구름이었다. 바다 친구인 태양도 웃고 있었다. 바다가 깨기 전에 구름은 바다의 친구를 세상아래로 보네주었다. 비였다.

시냇물과 강과 우물은 하느님께 물었다. "왜 바다는 마르지 않았나요?"

"응 바다는 세상에서 가장 낮은곳에 있기에 모든 물들이 그곳에 자연스럽게 모이게 된단다.

더러워진 물들이 쉬면서 치료도 받고 아름다운 물들도 사랑받을수 있는곳! 그리고 가장 낮지만 가장 낮기 때문에 하늘이라는 가장 높은 곳에 구름이라는 친구를 만들어 줄수 있는 어머니! 바다는 가쟝 낮기에 모든 물들을 담아내고 돌봐주고 정화해주는 어머니가 되었다."

 성모님을 바다의 별이라고 한다. 바다와 같은 어머니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교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레지오 단원들이여, 여러분의 튼튼한 발판은 성모님이시다. 온전한 신뢰심으로 성모님께 의탁하라. 성모님은 여러분이 반드시 지녀야 하는 겸손의 덕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계시기 때문에 여러분의 기대를 충실히 실천하면 가장 훌륭하고 단순하며 확실하게 겸손에 이르는 방법을 터득하게 될 것이다. 몽포르의 루도비코 마리아 성인은 이 방법이 '널리 알려지지 않은 은총의 비밀이며 자신을 비우려는 작은 노력만으로 자신을 하느님으로 가득해우고 완전하게 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그원리는 다음과 같다. 성모님께로 향하고 있는 레지오 단원은 필연적으로 자기 자신으로부터 멀어져야 한다.

마치 위의 예화처럼 바다는 땅위에서 자신의 위치을 고집하지 않았다. 땅에서 멀어져 가장 낮은 자리에 간 그는 모든 물을 소유한 존재가 되었다.

그는 가장 낮기에 땅에 있는 이들이 바다전체를 볼수 없지만 그가 가장 넓을수 있는 것은 그리고 세상의 그 어느산보다 높은 구름이라는 것을 만들 수 있는 존재가 된 것은 그가 가장 낮기 때문이다. 바닷물을 볼수 있지만 우린 바다의 그 깊이를 가름할수 없듯이 성모님의겸손도 이와 같다.

자신의 노력에만 의지하는 단원은 마치 우물과 같은 존재이다. 고통이나 어려움이 다가오면 자신의 한계를 느끼고 자신을 더 깊이 파내려가야함을 가슴아프게 생각하며 결국 바닥을 들어낸다. 그리고 자기 만족이나 성취감에 싸여 있는 단원은 시냇물이나 강물과 같다.

시작은 좋으나 영적인 메마름이나 만족감이 사라지면 결국 무너지게 된다.

지혜로운 자의 말보다 겸손한자의 침묵이 더 사람들을 뭉치게 하고 움직이게 한다.

겸손한자의 침묵은 지혜를 더 많이 담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원로 단원은 이렇게 말했다. "처음에 활동을하고 돌아오면서 느끼는 성취감에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그것도 살아지고 그것이 살아지자 그러한 행복감 없이 더 활동을 할수 있을까?하는 생각마저 들었죠? 모든게 뻔해 보이고 습관적인 것 같고 사람은 보람된 일 행복한 일을 찾기 마련이지만 지금은 어려운 일을 찾아나섬니다. 성취감 보다는 앞으로 더 잘해야지 하는 반성의 마음이 더 편안해 졌습니다. 만족감에 땅을 바라보는 것보다 감사의 마음에 하늘을 바라보는 것이 활동을 맞치고 잠들기에는 마음편합니다."

 

이세상에 이별하는 슬픔중에 가장 행복한 슬픔은 자기와 이별하는 것이라고 한다.

 진정자기와 이별한 사람은 진정한 사람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진정한 사람은 주님이시다. 자기와의 이별열차의 이름은 겸손이며 그것은 바로 성모님이라는 철로위에서 달린다. 똑똑하고 용감하고 성실한 단원이 되기 전에 겸손의 은총을 청하라! 그러면 이 모든 것을 덤으로 받을 것이다. 좋은 뿌리를 얻으면 좋은 열매란 벌써 얻은것이기 마련이다.

겸손한 이에게 단원들이 몰리기 마련이고 서로 그에게 묻게 되면 그는 겸손을 바탕으로 공부할 수밖에 없고 겸손한 이에게는 단원들과 활동 대상자들이 기도를 부탁하기에 기도가 모이는 바다가 되어 그의 기도는 은총의 구름을 이르켜 그 비로써 많은 이들을 성화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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