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강론

부활 제3주일(나해) 루카 24,35-48; ’24/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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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24-03-29 ㅣ No.5724

부활 제3주일(나해) 루카 24,35-48; ’24/04/14

 

 

 

 

통계청에서 발표한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2014년에 3.3%에서 2016년엔 2.8%, 2023년엔 1.4%였고, 국제통화기금(IMF)에서 잡기로는 2024년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을 2.2%로 전망했었습니다. 2017년 우리나라 전체 실업율이 3.7%, 청년실업율 9.8%에서, 202310월에는 전체 실업율이 2.1%, 청년실업율 5.1%였습니다.

 

202365세 이상 고령인구는 우리 나라 인구의 18.4%950만명에 육박하여, 202520.6%초고령사회로 진입하고, 2035년엔 30%, 2050년에는 40%를 넘길 전망이라고 합니다. 202265세 이상 노인고용율은 36.2%OECD 국가 중, 25.1%인 일본, 19.2%인 스웨덴, 18%인 미국에 비해 높은 편이지만, 노인빈곤율은 202166세 이상 은퇴연령층의 상대적 빈곤율이 39.3%OECD 주요 국가에 비해 적게는 2배 많게는 10배 가량의 높은 치수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노인 일자리의 질이 낮은 편이라고 평가됩니다.

 

국민들이 느끼는 상대적 빈곤율이 201617.6%에서, 2022년엔 14.9%로 낮아진 반면, 가구처분가능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2016162.3%에서, 2022년에는 203.7%로 증가되었습니다. 이 두 가지 통계만 단편적으로 살펴보면, 우리가 빚으로 사는 사회처럼 비춰지기도 합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발표에 따르자면, 낮은 출산율과 빠른 고령화 진행으로 인한 인구위기가 우려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2016623일을 기점으로 인구 5천만이 돌파함으로써, 선진국 중에 7번째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가임기 여성의 출산율이 19606.0명 출산에서 19832.06명이었다가, 2001년부터는 1.3, 20161.17명에서 2022년에는 0.78명으로, 한 여성이 한 명의 아이도 낳지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최근 2030세대 청년들의 결혼에 대한 긍정적 태도 역시 남성이 30%, 여성은 25.4%로 감소되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2020년부터는 베이비붐 세대의 고령인구 편입으로 평균 고령화율이 심화되어 사회경제적 위기를 맞고, 2059년에는 생산가능인구 100명당 부양 인구 100명 이상이 되어, 2060년경에는 40.1%의 고령화율로 세계 최대가 될 예정이랍니다. 이와 관련하여 노후소득 감소와 그로 인한 노인빈곤이 노인질병 및 노인자살률을 부추겨 이미 지난 2009년부터는 노인자살률이 낙태율과 함께 OECD 국가 중 1위라고 합니다.

 

이러한 조사결과와 통계수치를 보면 답답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그리고 우리의 미래에 대한 아쉬움은 물론 걱정마저 됩니다. 이런 우리에게 예수님께서는 오늘 부활하시어 평화가 너희와 함께!”(루카 24,36) 라고 말을 건네십니다.

 

걱정거리뿐인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평화를 주신다고 하시는가?

 

어쩌면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과 우리가 처한 이 상황은 우리에게 암울한 감정을 가지게 합니다. 그러나 늙어간다는 것, 노인이 된다는 것이 죄는 아니지 않습니까? 그리고 죽음이 가까워진다고 해서 슬퍼하거나 억울해할 일도 아닙니다. 자연스러운 것이 좋다면, 늙어가는 것도 자연스러운 것이니 좋을 수 있습니다. “왜 놀라느냐? 어찌하여 너희 마음에 여러 가지 의혹이 이느냐?”(38)

 

언젠가 어느 노인 한 분이 이런 말을 하셨습니다. “노인이 된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은 부끄러워하고 우울해하기도 하지만, 서쪽 하늘로 태양이 지는 노을을 바라보면 참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이 감탄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활활 타오르는 태양일 수 없지만, 그 대신 우리의 원숙하고 성스러운 삶으로 주님의 거룩하심을 증거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노년의 문제를 이야기하며 위기감을 느끼고 이에 대처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다가오는 위험을 예상하고, 준비해야 합니다. 그러나 노년은 위험을 맞이하는 순간만이 아니라, 우리가 원숙해지고 더욱 더 거룩하여질 순간이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주님과 맺었던 아름다운 추억들이 마침내 우리의 삶에 각인되는 순간이며, 우리를 통해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순간이 될 수 있습니다. “내 손과 내 발을 보아라. 바로 나다. 나를 만져 보아라. 유령은 살과 뼈가 없지만, 나는 너희도 보다시피 살과 뼈가 있다.”(39)

 

그 동안 우리가 여러 가지 이유로 실현하지 못했던 주님의 좋은 말씀들과 믿음 안에서 이루고자 했던 아름다운 꿈들을 이러저러한 제한과 장애 없이 실현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비록 우리의 육신은 점점 약해지고 더 큰 한계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더 이상 우리가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가족과 삶의 여러 가지 의무들을 뒤로한 채, 우리의 영혼은 더욱 더 자유스러워져 우리가 마음속으로만 간직해 오던 아름다운 꿈들을 실현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내가 전에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말한 것처럼, 나에 관하여 모세의 율법과 예언서와 시편에 기록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져야 한다.”(44)

 

이제 진정 거룩해질 수 있는 순간입니다. 이제 경건한 마음으로 주님께만 집중하고, 주님만을 선택하여 믿고 따를 수 있는 순간입니다. 이제 참으로 올곧은 마음으로 주님만을 따를 수 있는 순간입니다. 이것이 노년을 맞는 우리만이 선택하고 걸을 수 있는 특권이며 희망이 될 것입니다.

 

이제 시간과 장소에 구애 받지 않으면서, 원없이 기도할 수 있습니다.

 

이제 육으로 활발하게 뛸 수는 없어도, 정신과 마음과 영으로 화살기도와 전구기도를 통해 형제자매들을 위해 봉사할 수 있습니다.

 

이제 아무런 이해관계 없이 사람들의 좋은 모습만 바라보고 좋은 모습만 기억해주고, 좋은 말을 해주고 격려해주고 칭찬해주고 믿어주면서 인격적인 덕을 쌓을 수 있습니다.

 

이제 어려서부터 성인전을 읽으며 꿈꾸어 왔던 그 성인 성녀처럼 우리도 매일 매일 성경 말씀을 읽고 묵상하면서 말씀 하나하나를 내 허약한 몸뚱어리로 직접 실현해 봅시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고 사흘 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46) 내가 깨달은 만큼 실천하고, 내가 실천한 만큼 더욱 더 많이 더욱 더 깊이 깨닫게 될 것입니다. 내 마음과 생각 속에 숙제처럼 담고 있던 아름다운 성덕에의 길을 실제로 기적같이 이루어내기 시작하여, 주 하느님과 나와 형제자매들 사이에 하느님 나라를 만들어내는 거룩한 성인 성녀가 됩시다.

 

누군가는 말합니다.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너그러워진다고! 눈에 잘 보이지 않으니까, 먼지가 있는지 없는지. 청소를 잘했는지 안 했는지 확인할 수 없으니, 그저 고맙기만 하다고! 젊은 이들을 봐도 잘하고 잘못하기를 따지기 전에, 그저 내 눈앞에 살아 움직이는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예쁘고 반갑기만 하다고! ‘잃는 만큼 얻는다는 말이 어쩌면 더욱 더 찐하게 다가올 수 있는 순간이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노년은 이념과 주의와 사상만으로 구성된 이론적인 목표가 아니며, 환상적인 꿈이나 허구적인 이미지로는 결코 대신할 수 없는 처절한 현실입니다. 아름답고 곱고 순박한 우리의 거룩한 이상은 하늘에 있지만 우리의 몸은 이 땅을 딛고 있기에, 참으로 우리 인격을 완성할 수 있는 마침내 귀하고 결정적인 기회요, 살아있는 희망이요, 진정한 목표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가 그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되어야 한다.”(47)

 

우리에게는 세상 그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는 결정적인 꿈이 있습니다. 그것은 부활하신 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입니다. 우리는 이 지상의 삶이 끝난 다음 마침내 주 예수님의 자비로 하늘나라의 아버지 집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릴 것입니다.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처할 곳이 많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러 간다고 말하였겠느냐?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같이 있게 하겠다.”(요한 14,2-3)

 

우리가 육신으로는 노쇠의 길을 걷게 되겠지만, 영으로는 주 예수님께서 일러주시고 비춰주시고 펼쳐주신 생명의 말씀의 길로 꿋꿋이 걸어갑시다.

 

아울러 오늘 우리가 한국천주교 주교회의의 결정에 따라, 보편지향기도에서 바치게 되듯이, 세월호 10주기를 맞이하여, 사고 희생자들이 주님 품 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고, 유가족들이 주님 사랑의 위로를 받으시기를 간구합니다.

 

  

너희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알고 있다.”(요한 14,4)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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