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강론

성령 강림 대축일(나해) 요한 20,19-23; '24/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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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24-04-30 ㅣ No.5760

성령 강림 대축일(나해) 요한 20,19-23; '24/05/19

 

 

우리는 지난 58일 어버이날을 보냈습니다. 어버이날, 부모님을 찾아 뵙고 부모님과 시간을 가지는 풍습은 참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예전에 함께 살던 외국인 신부님이, 우리 민족이 설이나 추석 명절에 부모님을 찾아 뵙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가느라 고속도로를 빽빽이 채우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참으로 대단한 진풍경이라고 감탄하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우리 문화 안에서, 집안에 대소사가 있을 때마다 선영과 부모님을 찾아 뵙는 풍습은 당연하다 못해 우리 몸에 굳어있다시피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끼리는 만나고 싶어 하고, 오래 오래 같이 있고 싶어 하는 것이 인지상정인지라 그런지, 우리를 낳아주시고 키워주신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를 위해 희생하신 부모님을 찾아 뵙는 순간은 우리에게 참으로 기쁨과 위로의 순간입니다.

 

우리 중에 어느 누구도 우리가 왜 부모님을 찾아 뵈어야 합니까?’ 라고 묻는 사람은 없습니다. 부모님이 내게 무엇을 얼마나 잘해주셨는지와 관계없이 부모님은 오늘의 나를 있도록 낳아주신 분이십니다. 오늘 내가 이렇게 살아 숨쉬고 있다는 것을 새삼 증명하지 않아도 내가 나의 존재를 의심하지 않듯이, 내가 부모님의 분신이듯이 부모님도 내 존재의 일부라는 표현은 적절치 않은지 몰라도, 내 존재의 근거이실 뿐만 아니라 빼놓을 수 없고 무시할 수 없는 내 삶의 엄연한 한 부분입니다.

 

이상의 의미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주 하느님을 믿습니다. 그래서 성당에 옵니다. 성당에 와서 우리는 우리를 구하시는 주 하느님을 뵙고 기뻐합니다. 우리가 부모님을 찾아 뵙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를 향한 부모님의 사랑이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좋아서 부모님을 찾아 뵙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성당에 오지 않는다고 해서 오늘 당장 우리 집에 불이 나거나 천둥 벼락을 내치지 않으십니다.

 

부모님이 우리에게 지금 현재 어떻게 해주시기 때문이거나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더 해주시기를 기대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부모님을 찾아 뵙고 싶어서 찾아 뵙습니다. 그렇게 뵈오면 우리 스스로 사람다운 순간이 되고, 또 그렇게 사람 구실을 하게 되어 우리가 기쁘고 행복하기 때문에 부모님을 찾아 뵙습니다.

 

우리가 성당에 오는 이유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는 한 주간 동안 우리가 살 수 있도록 해주신 주 하느님께 감사드리러 성당에 옵니다. 그리고 다가 오는 한 주간을 축복해 주십사 하고 성당에 옵니다. 어쩌면 매일 감사드릴 일이 없을지 모릅니다. 어쩌면 매일 하느님께 새삼 더 받아야 할 것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우리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주 하느님의 섭리와 안배에 힘입어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우치고 또 그렇게 믿기 때문에 성당에 옵니다. 성당에 와서 미사를 봉헌하며 주님께 찬미와 영광을 돌려드리고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그런 마음으로 주 하느님을 뵈오러 성당에 오기 때문에, 우리 마음이 기쁘고 행복하며 참평화를 누리게 됩니다. 주 하느님도 우리를 만나서 기뻐하실 것입니다.

 

더군다나 우리는 성당에 와서 미사를 봉헌하면서 말씀과 성체성사를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선사해주시는 새생명과 그 생명을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우리는 성당에 와서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생명을 주는 말씀을 얻습니다. 그냥 그렇게 사는 것이 아니라, 생생하고 의미있게 살아있도록 하는 말씀을 얻습니다. 그 말씀은 또한 마지막 날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요한 14,6) 말씀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씹고 또 씹어 우리 가슴에 새기면, 그 말씀은 우리 영신 생명의 맛있고 영양가 있는 음식이 되고 음료가 됩니다.

 

아울러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비그리스교적 비인격적 사회 안에서도 그 말씀을 이룰 수 있는 힘을 성체성사에서 얻습니다. 우리는 성체성사를 영함으로써 주님의 말씀을 이룰 힘을 얻습니다. 주님께서는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18-20) 라고 약속하신 대로,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이루고자 할 때 우리와 함께해주시며, 그 말씀을 이룰 수 있는 힘을 주시고, 마침내 그 말씀이 열매 맺을 수 있도록 해주십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말씀을 가슴에 새길 수 있도록 해주십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읽고 들을 때 그 뜻을 헤아리게 해주십니다. 그래서 주님을 우리 생명의 주인으로 모시게 해주십니다. “성령에 힘입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님은 주님이시다.’ 할 수 없습니다.”(1코린 12,3)

 

성령은 주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서로 다른 장점과 특질이 무엇인지를 우리 각자가 깨우치도록 해주십니다. “은사는 여러 가지지만 성령은 같은 성령이십니다.”(4) 그리고 서로 다른 은사와 직책과 활동을 통해 주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직분은 여러 가지지만 주님은 같은 주님이십니다. 활동은 여러 가지지만 모든 사람 안에서 모든 활동을 일으키시는 분은 같은 하느님이십니다.”(4-6) 그리고 우리가 주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그 은사들을 공동체를 위해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인도해 주십니다. “하느님께서 각 사람에게 공동선을 위하여 성령을 드러내 보여 주십니다.”(7)

 

오늘 성령강림 대축일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우리가 주님의 자녀가 되기 위한 첫 번째 기본 조건을 일러주십니다. “성령을 받아라.”(요한 20,22) 그리고 그 성령을 받아 우리가 맨 처음 할 일은 우리 마음 안에서 악을 제거하는 일입니다. 아니 우리 스스로 악에서 벗어나는 일입니다. 그 악에서 벗어나는 첫 번째 작업이 바로 용서입니다. 주 하느님께서 우리 죄를 용서해 주심으로써 우리가 살게 되었고, 우리를 위해 목숨을 내어주시고 희생하신 예수님은 생명을 다시 얻어 우리의 주님이 되셨습니다.

 

주 하느님의 자비로우신 사랑으로 우리가 살게 되었듯이, 같은 주 하느님의 사랑으로 성령의 인도하심과 도우심에 힘입어, 우리는 서로 용서함으로써 서로를 살려줍니다.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23) 그러면 나와 우리 가운데 참 평화가 머물 것입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19) 그 평화를 나누도록 주님은 우리를 초대하시고 파견하십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21)

 

성령께서 오셔서, 우리 모두에게 주 예수님을 통한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을 깨우쳐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아멘.

 

성령께서 오셔서, 우리가 주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의 힘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확연히 깨우쳐 감사드릴 수 있게 해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아멘.

 

성령께서 오셔서, 우리 모두가 주 하느님 사랑의 힘으로 서로 용서함으로써 서로 살게 되기를 간구합니다. 아멘.

 

성령께서 오셔서, 우리 모두가 주 하느님의 사랑 안에 머묾으로써 평화를 누리게 해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아멘.

 

성령께서 오셔서, 우리 모두가 주님 사랑 안에서 평화를 누리며 주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을 돌려드리는 참 자녀가 될 수 있기를 간구합니다. 아멘.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요한 20,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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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 강림 대축일 꽃꽂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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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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