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밀레의 만종과 구유

인쇄

허윤석 [drhur] 쪽지 캡슐

2006-12-14 ㅣ No.340

밀레의 만종 그림의 진실을 아시나요?

저는 우연히 인터넷 기사로 최근에야 그 진실을 알게 되었습니다...그 기사를 읽으며 만종에 나온 농부들이 한 없이 슬퍼보이고...하늘을 나는 새가 까마귀 같고... 음침하기도 하고...

 

그러다가...

빨갛게 물들어 가는 하늘과 두손을 고이 접고 기도하는 그 모습을 보며 예전에 느꼈던 것과 다른 평안과 고요함이 느껴지더군요...

현실의 굴레 속에서도 하느님의 역사하심 속에 살아가는 존재감이랄까...

기도 안에 담긴 희망이랄까... 뭐 그런 걸 생각하면서요...

 

 

 

 

이 그림은 이삭줍기와 더불어 많이 알려진 그림 중 하나다.

그림을 보면 하루 일을 마치고 농부 부부가 교회종 소리를 들으며 기도하는 평화로운 그림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이 그림에는 슬픈 이야기가 숨어 있다.

 

   농부 부부가 바구니를 발 밑에 놓고 기도하고 있는데 사람들은 그 바구나가 감자씨와 밭일 도구를 담은 바구니로 알고 있다. 사실은 그 바구니에는 씨감자가 들어 있던 게 아니라 그들이 사랑하는 아기의 시체가 들어있다. 그 시대 배고픔을 참고 씨감자를 심으며 겨울을 지내면서 봄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아기는 배고픔을 참지 못해 죽은 것이다.

죽은 아기를 위해 마지막으로 부부가 기도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 만종이다.

 

   그렇다면 왜 그림 속의 아기가 사라졌을까? 이 그림을 보게 된 밀레의 친구가 큰 충격과 우려를 보이며 아기를 넣지 말자고 부탁을 했다. 그래서 밀레는 고심 끝에 감자를 넣어 그려 출품했다. 그 이후 이 사실이 알려지지 않은 채 그저 농촌의 평화로움을 담고 있는 그림으로 유명해졌다.

 

사람이든 그림이든 음악이든 어떤 존재나 상황에서 우리는 그 본질과 사연을 그냥 지나쳐 버리기 쉽고 대부분 사람들은 지나쳐 버리는 듯 보인다.

 

미술관에서 정찰제 제도를 도입하였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어떤 작가의 미술품을 사기란 그리고 감상하기란 아직도 특권층의 전유물 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런제도로 많은 사람들이 좀더 미술에 다가갈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사실 나의 꿈은 매우 긴시간 동안 화가였다.

 

그림을 이해하기 위해선 그시대의 사상과 작가의 영혼과 교감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 세계사 그리고 그나라의 역사와 문화까지도 자연히 익히게 되는데 우리는 이것을 단지 따로 따로 공부하였다. 역사에 대한 공부는 사건의 연대를 줄줄 외우고 미술은 누가 그렸는지 작가의 이름을 외우고 음악도 감상하기 보다 시험위주였다.

 

그래서 음악이나 미술을 이해하고 감상하고 그시간으로 여행을 가는 그런 여행이 불가능하다.

 

문화를 모르면 그 무엇을 올바로 이해하기 어렵다.

 

나는 밀레의 만종을 보면서 잠시 예수님의 구유를 생각했다.

 

굶어죽은 아기를 감자소쿠리에 담아 바라보는 정말 비참하게 가난한 소작인 농부의 모습안에서 한참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구유에 누워있는 아기예수의 모습이 오버립(overap)되었다.

 

삼종기도! (주님의 천사가 마리아께 아뢰니 성령으로 잉태되었도다!)

 

그 부부는 죽은 아기를 바라보며 마리아와 아기예수를 생각한다.

 

우리를 위해 우리 죄를 사하기 위해 태어난 한아기 그 아기가 30년을 살다 십자가의 희생제물로 죽지만 어른청년이 된 그아이를 붙들고 우시는 성모님의 시야엔 그 아들은 아직도 아기이다.

 

자식은 아무리 나이를 먹었어도 어머니에겐 아기이듯이 나도 그렇고......

 

하지만 신앙의 신비는 그 소작인 부부를 기도하게 한다.

 

그 소작인 부부가 신앙이 없었다면 그 아이를 바라보는 영혼안에는 저주와 어둠과 고통만으로 가득하였을 것이다.

 

아기를 잃은 슬픔을 아기를 하느님께 온전히 맡기는 삼종기도의 정신으로 승화시킨 이 장면은 실제상황이다.

 

몇해전 태어난지 얼마안된 아기가 죽을때 나에게 아빠는 이런 원망어린 말을 하였다.

"신부님 왜 하느님은 이 아기를 우리 부부에게서 태어나게 하셨나요?

왜 이아기를 우리에게 주셨나요? 이렇게 갈거면서...?"

 

나는 대답하였다. "이 아기를 우리에게 주신것이기 보다 두분을 이아기의 부모로 주셨던 것이구요 ! 이렇게 하늘나라로 가게 된거라면 오히려 죄를 짓고 사는 우리가 그 아기를 부러워해야 할것 같네요! 이별은 슬프지만 떠나는 이가 어디로 가는지 안다면 그 슬픔의 성격은 전혀다른것일것입니다."

 

 

 

 



165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