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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호 5장 레지오 마리애신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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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윤석 [drhur] 쪽지 캡슐

2001-06-09 ㅣ No.7

5장 레지오 신심의 개요

 

5장은 내용상 세부분으로 나눌수 있겠다.

 

첫째, 1. 하느님과 성모 마리아, 4. 우리의 어머니이신 마리아 는 성모님이 신원 즉 하느님과 우리와의 관계성을 풀이하고 있다.

 

들째, 2. 모든 은총의 중재자이신 성모 마리아와 3. 원죄 없으신 마리아는 성모님께서 구원사업을 위해 하느님께 받은 특전에 대해 말하고 있다.

 

셋째, 5. 레지오의 신심은 레지오 사도직의 뿌리, 6. 성모님을 알리자!는 위와 같은 성모님의 존귀하심을 알리고 하느님의 구원사업을 위한 선교사업을 마리아를 통해 이룩하고자 하는 레지오의 선교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위의 첫째와 둘째는 교의 신학에 속하고 셋째는 선교사업과 영성에 해당하므로 실천 신학에 속한다.

 

나는 이 장을 레지오 교본의 가장 중요한 중심축이라고 말하고 싶고 이장에 말하는 내용이 학문적 이론과 인간적 지식과 논리에 바탕되어진것이보다 천상적 지혜와 하느님의 역사하심 위에 새워짐을 믿어의심치 않는다.

 

이장이 내용상의 분류로 3가지 관점에서 레지오 신심의 내용을 개요적으로 기술하고 있으나

실제 하느님의 역사하심과 우리의 믿음생활안에서는 서로 분석되거나 명확히 이해되는 수학의 공식과 같은 것이 아니다.

 

교본은 바로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한 실제적인 경험서이다.

 

이장을 잘 이해 하기 위해 강론을 실고자 한다. 우리는 이 강론에서 5장에서 말한 레지오의 신심이 어떻게 성모님의 은총을 통해 이루어지는지 실제적으로 알수 있다.

강론을 접하기 전에 교본을 먼저 읽어보고 이 강론을 읽으면 좋겠다.

 

" 어머니!

 

이 얼마나 따스하고도 깊은 사랑의 호칭입니까? 그 어떤 말이 이토록 많은 사랑을 담아 낼수 있겠습니까?

 

 어머니는 당신자녀들에게 바다요 영원한 영혼의 휴식처입니다.

 

 어린 아이가 태어나서 처음 발음하게 되는 것이 바로 ’엄마’라는  단어라고 합니다. 아마도 예수님께서도 가장 먼저 발음하신 말이 엄마라는 말일 것입니다.

아기는 배고프거나 춥거나 외로울 때 울며 엄마를 불러 댑니다. 아기에게 엄마는 참으로 모든 것을 이루어 주는 해결사와도 같습니다.

 

우리가 참으로 힘들 때 묵주를 들고 성모님께 기도하면서 울 때 그것은 챙피한 것이나 나약한 것이 아니라 엄마를 부르는 아기의 울음처럼 성모님과 나자신이 바로 모자관계, 모녀관계라는 것을 나타낸다 하겠습니다.

 

어머니의 사랑을 바다라고 표현한 이유는 아마도 바다가 이 세상에서 가장 자신을 낮추어 모든 것을 그 안에 담고 있기 때문인 둣 합니다.

 

우리의 예수님 역시 신성으로는 하느님이셨지만 인성으로는 죄이외에서는 우리와 같이 어린 아이의 시절부터 당신의 삶을 시작하셨습니다. 성모님의 손에 의지하여 거름마를 배우셨을 예수님, 그리고 말역시 성모님의 혀를 따라 흉내내며 배우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공생활전의 생활을 복음은 "예수는 부모님께 순종하였다."고 전합니다.

여기서 우리의 하느님이신 성자의 진정한 모습을 발견합니다.예수님은 바로 효자이셨습니다.

 

예수님의 효도를 받으신 그 예수님의 어머니가 바로 성모님이십니다. 우리가 성모님을 성인 중에서 가장 으뜸의 대열에 모시어 최고의 공경을 드리는 것은 성모님이 단지 이 세상에 예수님을 낳아 주신 그 하나의 사건만을 주목해서가 결코 아닙니다.

성모님은 단지 예수님을 낳아주시기만 하신 대리모가 아니라 참으로 성모님은 가장 당신의 아들을 깊고 넓은 사랑으로 길으시고 예수님은 지극한 효성으로서 공경하신 효자이셨습니다. 일찍이 그렇게 사랑 가득한 어머니, 일찍히 그렇게 효성지극한 아들이 없었습니다. 그분의 효심은 바로 십자가상의 마지막 유언을 통해 알수 없습니다. 그 고통의 절정순간에 그분은 "어머니 이 사람이 당신의 아들입니다. 이분이 바로 너의 어머니이시다"라고 말씀하시며, 그 이후로 제자들이 성모님을 모셨다고 합니다. 그 고통의 순간에 바로 어머니를 생각하는 그 아들의 마음! 자신은 죽어가면서도 어머니의 거처를 걱정하는 그 효심을 우리는 참으로 깊게 묵상해야 겠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가장 사랑하시던 당신의 어머니를 부족한 우리에게 우리의 어머니로 주셨으며 우리를 또한 당신 어머니에게 자녀로 삼으시게 하시여 당신을 돌보던 그 사랑으로 우리를 돌보게 하셨습니다. 즉 우리는 예수님의 유언으로 당신의 어머니를 우리의 어머니로 모시면서 동시에 당신이 하신 그 성모님께 대한 효도를 우리가 이어나가도록 사명을 주셨습니다. 이얼마나 크시고 벅찬 효성이십니까? 우리역시 성모님께 효도를 할 수 있게 하신 예수님께 깊이 감사드려야 겠습니다.

이 세상의 그 어떤 종교나 교회가 이토록 아름다운 분 하느님의 어머니를 어머니로 모신 데가 있습니까?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자격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어려운 자격을 갖기 위해 미리 기술을 가르쳐 주는 학원도 없고 준비도 없는 참으로 어려운 자격이 있습니다. 그 것은 무엇입니까?

 

그 자격은 바로 어머니가 되는 것입니다. 사실 어머니가 되는 것처럼 힘들고 또 내자신이 어머니이기 때문에 자녀들 때문에 짓게되는 죄와 십자가는 이루말할 수 없습니다. 고백성사와 면담을 저는 하면서 어머니들이 자녀들로 인해 받는 그 상처와 걱정을 많이 듣게 되며 또 주일학교 학생들을 통해서는 자신을 위해 그렇게 종처럼 일하시고 염려하시는 어머니에게 짜증내고 거짓말 하게되는 자녀인 자신들의 송구함을 들을 때면 저는 어머니들의 삶이 바로 수도자의 삶 이상의 고난과 기도와 자기를 버리는 삶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저는 얼마전 한 교우의 요청으로 암 말기의 젊은 대학생에게 세례를 주러갔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예비자였습니다.  어머니가 그 아들의 세례를 요청한 그 대학생의 이모와 함께간  저에게 그 대학생은 세례 받을 것을 거부하였습니다.

 

"왜 저에게 이런 암을 허락하셨습니까? 싫습니다. 하느님이 밉습니다!"

 

그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럼 세 번 묻겠습니다. 형제님! 정말 세례를 거부하겠습니까?

 

어머니!와 친척의 사랑과 정성을 보아서라도 한번 신중히 생각해 보시죠?

 

그는 세 번을 연달라 믿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성모상을 치우라고 했습니다.

 

함께간 봉사자들과 친척들은 매우 당황하고 낙담하였습니다. 세례를 준비하는 그 젊은 어머니의 얼굴 역시 사색이 되었습니다.

 

저 또한 이 난감함에 얼굴을 들수 없었습니다. 예상치 못했던 상황이었습니다.

 

새신부인 저로서는 어떻게 말해야할지도 모르고 제자신의 무능력이 너무나 느껴졌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사제는 의연하고 모든 것이 잘되는 것만 생각했던 저로서는 커다란 어려움과 실패감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마음을 진정하기 위해 자리를 옮겼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성모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기도를 드리면서 정말 안타까움에 그의 어머니는 울고 있었고 이모도 우셨습니다.

 

젊은 나이에 암이라는 고통으로 어머니 먼저 죽는 저 육신이 너무나 불쌍해 보였지만 더 슬픈 것은 세례를 거부하는 저 영혼의 비참함과 더 더욱이 슬픈 것은 바로 사제인 저와 친척들의 무능력이었습니다.

 

기도를 하면서 눈물이 자꾸났습니다. 그러던중 참으로 제 영혼이 밝아지는 생각이 났습니다.

 

친척들과 어머니를 위로하면서 저는 그 생각을  말씀드렸습니다.

"자매님 제가 세례를 주는 것보다 어머니이신 자매님이 아들에게 대세를 주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기도중에 들었습니다. 이렇게 말하십시오. 내가 너를 잉태할 때 나는 너를 선택하여 잉태하지 않았다. 너를 나에게 주신 분은 바로 하느님이시다. 내가 너를 잉태하여 10달을 지극 정성으로 보살 펴 고통중에 기쁨으로 너를 세상에 낳았지만 너는 이제 젋은 나이에 암이 들어 세상을 떠난다. 너 역시 나를 어머니로서 선택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누군들 이 꽃다운 나이에 암으로 죽을 아들로 태어나고 싶겠느냐? 지금 주님을 원망하고 세례를 거부하기 보다 네가 나의 뱃속에서 사람이 되어 이세상에 태어난 것 처럼 이제 하느님의 세례를 너를 낳은 이 엄마가 줄터이니 다시 태어나자. 이제는 육적인 생명의 어머니가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으로 내가 너에게 대세를 주게 되었구나 너가 세례를 받고 곧 죽겠지만 그 시간은 바로 하늘에서 다시 태어나는 준비의 시간인 영혼의 잉태시기이다. 엄마 역시 예비자이지만 정말 열심히 살아 천국에서 보자. 지금 이 세례를 받지 않는다면 우리의 생명은 우리의 모자관계는 끝이 아니겠니?"

 

이 말을 듣고 어느새 그 어머니는 흐르는 눈물을 닦고 있었습니다. 그 눈물을 다닦고 그 어머니는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신부님 오늘은 바로 우리 아이의 생일입니다. 저는 정말 열심히 기도하겠습니다. 이 아이를 위해 이젠 하느님을 원망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왜 이런 암을 주셨는지? 지금은 감사합니다. 만약 이런 십자가를 주시지 않았다면 우리 모녀가 세례를 받아 영원하신 생명의 하느님을 알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그 아들의 병동을 향해 성수를 갖고 힘있게 걸어가는 그 어머니의 모습에서 저는 그 골고타에서 흐트럼 없이 아들의 십자가상 아래에서 꼿꼿이 서서 두손모아 기도하시는 그 성모님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이 순간이야 말로 성모님께서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라고 응답하신 은총과 믿음의 순간이 아니겠습니까?

바로 이러한 순간에 우리 모두의 어머니이신 성모님의 은총이 바로 실현되고 있음을 저는 절실 느꼈으며 예수님이 왜 성모님을 통해 은총을 내리시는 지 진정 알게됐습니다

 

성 프란치스코 성인이 하루는 기도를 열심히 하다가 이루어지지 않자 예수님께

왜 기도를 들어 주시지 않습니까? 여쭈었더니 예수님께서는 "너는 나의 어머니께 먼저 청하였느냐?라고 물으시니 "아니요"라고 대답하자 ""먼저 나의 어머니이신 성모께 먼저 청하라"하시어 그 다음부터는 성인께서는 청원의 기도를 먼저 성모께 하였다고 합니다. 성모님은 지금도 곳곳에서 우리를 위해 일하시는 우리의 어머니이심을 저는 보았고 들었으며 믿습니다.

 

성모님은 모든 성인들중에 가장 공경을 받으시는 성인으로서 성인의 전형이십니다. 성인의 거룩할 성자를 보면 귀이 자와 입구자에 임금왕이 결합되었습니다. 즉 먼저 왕처럼 잘 듣고 왕과 같이 말한다는 의미입니다.

 

그 의미는 루가 복음말씀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성모님의 잉태 사건에 대한 엘리사벳의 칭송의 말 속에 있습니다. "주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이 꼭 이루어 지리라 믿으셨으니 정녕 복되십니다." 마리아는 당신의 성령으로 인한 잉태 이후에도 성전에서 아들을 찾아 헤메였고, 가나안의 혼인 잔치에서, 그리고 당신 아들이 미쳤다는 소문에 그를 찾아 다녔으며, 우리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바로 전지전능한 하느님의 아들의 십자가의 수난을 함께 하셨습니다.

 이 예수님의 생애를 신학자들은 마리아가 100% 다 이해 할 수 없었다고 말합니다. 성서 역시 마리아는 그러한 이해할 수 없는 사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마리아는 이 모든 것을 당신의 가슴속에 곰곰히 간직하시어 새겨 두셨다." 마리아의 가슴은 시므온의 예언처럼 예리한 칼에 찔리듯 아픔의 순간을 겪으셨을 것입니다. 즉 그분은 정말 잘 하느님의 말씀을 들으시고 응답하는 믿음의 모범이 되셨습니다.

 

우리는 믿음을 갖기 위해서 우리는 잘듣고 나의 개미와 같이 작고 미약한 더듬이와 같은 생각으로 판단할 것이 아니라 곰곰히 하느님께서 당신의 권능의 역사하심을 펼치시도록 기다릴 수 있는 응답의 자세를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머니가 맛있는 음식을 하고 있는데 기다리지 못하고 칭얼데는 어린 아이의 나약한 본성이 아니라 더 성숙하게 어머니의 사랑의 음식을 기다리는 성숙된 자녀들의 신앙 태도가 우리 신자들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성모님의 그러한 믿음을 본받기 위해서 우리는 지금부터 성서 말씀을 매일 묵상하고 나의 삶의 터전 가정과 직장 학교에서 매순간을 성모님께 봉헌하는 습관을 들여야 겠습니다.

남을 판단하고 남이 보지 않는다 하여 흉을 보려하는 유혹이 일어나면 성모송을 마음속으로 한번 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이 것이 바로 주님의 말씀을 곰곰히 생각하신 성모님의 생활  태도를 본받는 구체적 방법입니다 또한 집안이나 개인이 어려울 때만 성모님께 기도하고 의지하는 이기적인 자녀들이 아니라 정말 기쁘고 행복한 순간에 더욱 성모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리고 기쁨의 순간에 그분에게 공을 돌려 드리는 효자들이 되어야 겠습니다.

 

우리는 천상 어머니의 자녀로서 또 우리의 돌아가신 조상의 영혼을 위해 성모님께 기도를 열심히 하여야 합니다. 효자를 한문으로 쓰면 노인부모를 아들이 업은 형상입니다.

대희년 전대사를 얻어 돌아가신 부모님과 조상들을 위해 우리는 영적으로 그분들을 엎어드리는 기도로써의 효도를 올리는 것이 우리가 성모님의 자녀요, 조상들에 대한 효도의 생활을 하는 것이기에 참으로 이 은총의 대희년의 성모의 밤을 임하는 우리는 다시한번 돌아가신 영혼을 기리며 성모님의 은총과 전구를 기도하여야 겠습니다. 왜냐하면 성모님은 은총의 수로이시기 때문이며 우리의 나약한 처지를 누구보다 잘 아시는 엄마이시기 때문입니다.

 

엄마와 자녀들은 생명이 생겨 탯줄로 연결되어 어머니의 뱃속에서 성장합니다.

탯줄로 어머니의 영양과 공기가 그리고 사랑이 전달됨으로서 그 바탕으로 뼈와 살과 마음이 생겨나 한 생명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성모성월을 맞이하여 우리의 묵주기도가 바로 성모님과 우리를 연결하는 탯줄임을 명심하여 로사리오기도를 많이 봉헌해야 겠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어른이되도 탯줄의 흔적인 배꼽이 있는 것 처럼 우리의 마음에는 성모님의 은총의 샘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족과 이웃자기 자신을 위해 기도할 때

 

그를 위해 기도하지 말고 지금 부족하고 힘든 사랑하는 그가 되도록 그와 같아지도록 기도해야한다.

 

예수님은 우리를위해 기도하기보다는 우리와 같이 되셔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

 

그분은 바로 우리셨다.

 

오히려 우리가 그분이 되지 못했다.

 

그리스도 우리의 평화이지만 우리는 그분께 기쁨과 평화가 되지 못했다.

 

우리가 그분에게 진정한 자녀가 되기 위해서 성모님의 사랑과 기도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성모님을 우리의 어머니로 맡겨주셨고 우리의 어머니이신 성모님은 우리를 당신의 영적인 자녀로 삼아 지금도 우리가 당신 아들과 같아 지도록 즉 성화 되도록 기도를 받치십니다.

 

그래서 성모님을 은총의 중재자라고 부릅니다.

 

어렸을 때 어머니깨서 성당 성물방에 가서 저 분이 성모님이시다라고 성모상을 가르켜 주셨는데 저는 물었습니다.

 

 

엄마! 어느 분이 진짜 성모님이야?

 

바로 여러분의 성모님은 살아계십니다. 기도하지 않는 성모상은 돌조각 석고에 불과 합니다.

 

우리 기도로서  살아있는 성모상을 우리가정의 성모님으로 정말 기도로써 모십시다.

 

끝으로 성 베르나르도의 시를 묵상합시다.

 

성모님을 따르니 실망지 않고 성모님을 생각하니 헤매지 않네 성모님이 붙드시니 떨어지지 않고 성모님이 감싸주시니 두렵지 않네. 성모님이 이끌어 주시니 지치니 않고, 성모님이 도와 주신 목표에 이르나니."

 

이 강론을 읽으면서 여러분은 무엇을 느끼셨습니까? 교본은 이론이기 보다 실제의 삶입니다. 이 강론안에 제5장에서 말하는 레지오 신심의 개요가 모두 포함되어 있고 실제 하느님이 성모님을 통해 어떻게 활동하시는지 그 실 예를 알수 있을 것입니다.

경험많은 단원들은 위과 같은  비슷한 아니 더 위대한 업적의 활동 경험을 실제적으로 갖고 있을 것입니다.

 다음호에서는 좀더 구체적으로 신학적이며 성서적 차원에서 제5장을 더 풍요롭게 해설하겠습니다.

 

첨부파일: 제5장 완성 제출.hwp(36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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