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목하는 곳은 자그마한 시골 본당이다.
넉넉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부족함을 느끼는 것도 아니다.
열심한 신자분들의 신앙심으로 꾸려가는 그런 소박한 신앙 공동체다.
그런데 요즘 사는 것이 힘들다 보니
이 작은 시골 본당에도 어려움을 호소하고
물질적 도움을 청하러 오시는 분들이 많아진다.
얼마 전에는 무전여행을 하고 있다는 한 청년이 와서
하룻밤 잠자리를 청한 일이 있다.
몇몇 신자 분들이
어떻게 모르는 사람을 사제관에 재울 수 있느냐 며 반대했지만
난 잠자리와 더불어 저녁 식사까지 대접해 주었다.
그 다음날이었다.
청년이 보이지 않았다.
아침 일찍 떠났구나..! 라고 생각하고 본당 업무를 시작했다.
그런데 오후 늦게 그 청년이 다시 나를 찾아왔다.
그리고는 돈을 좀 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그 청년을 한참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은근히 신경질이 났다.
그래서 그 청년에게
육신 멀쩡한 사람이 왜 일을 하지 않고 공돈을 바라느냐?
몸이 불편한 분들도 열심히 일해서 먹고 사는데
왜 그렇게 사느냐? 고 다그쳤다.
다시 한번 사정하는 그 청년을 난 그냥 보냈다.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는 모습이 괘씸했다.
저녁 미사 후 평소 습관대로 성당에서 묵상을 했다.
그런데 자꾸 귓가에 무엇인가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그냥 주지...!
나도 아무 조건 없이 따지지 않고 주었는데......,
그냥 주지...!"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을 하시는 듯 했다.
그냥 주지!
그랬어야 했다.
그냥 주었어야 했다.
아무것도 따지지 말고......,
고개 숙여 부탁했던 그 모습을 받아들였어야 했다.
강론 때 아무리 사랑을 이야기하면 뭐하나!
실천하지 않는 사랑은 공허한걸......,
또 한번 주님께 용서를 구한다.
그리고 그 청년에게도 용서를 구한다.
신앙인으로 산다는 것!
그것은 예수를 지금 여기서 사는 것임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어느 책에서 읽었듯이
예수처럼 살기 위해 나는 내 안에 죽은 예수를 살려야 한다.
내 생각, 내 욕심, 내 변명 때문에 죽은 예수를 다시 살려야 한다.
내가 상처 주었던 그 청년에게서 다시금 깨닫는다.
내 안의 예수를 살리는 것이 매일 삶에서 부활을 사는 것임을......,
사제로 살면서 부족했던 많은 모습들이
이제는 사랑 안에서 채워지기를 기도한다.
더 이상 따지지 않고, 조건 없는 사랑을 주님에게서 다시 배운다.
주님께서 그러하셨듯이 나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
주님! 이젠 따지지 않고 그냥 줄게요!
- [사목일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