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속에 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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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윤석 [drhur] 쪽지 캡슐

2002-02-25 ㅣ No.152

안개 속에 숨다.

 

 

 

나무 뒤에 숨는 것과 안개속에 숨는 것은 다르다.

 

나무 뒤에선

 

인기척과 함께 곧 들키고 말지만

 

안개 속에서는

 

가까이 있으나 그 가까움은 안개에 가려지고

 

멀리 있어도 그 거리는 안개에 채워진다.

 

산다는 것은 그러한 것

 

때로 우리는 서로 가까이 있음을 견디지 못하고

 

때로는 멀어져감을 두려워한다.

 

안개 속에 숨는 것은 다르다.

 

나무 뒤에선 누구나 고독하고 그 고독을 들킬까 굳이 염려하지만

 

안개 속에서는

 

삶에서 혼자인 것도 여럿인 것도 없다.

 

그러나 안개는 언제까지나 우리 곁에 머무를 수 없는 것

 

시간이 가면

 

안개는 걷히고 우리는 나무들처럼

 

적당한 간격으로 서서

 

서로를 바라본다.

 

산다는 것은 결국 그러한 것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게

 

시작도 끝도 알지 못하면서

 

안개 뒤에 나타났다가 다시 안개 속에 숨는 것

 

나무 뒤에 숨는 것과 안개 속에 숨는 것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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