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성당 게시판

[연탄길] 썰렁한 게시판 데우기 1탄

인쇄

김정이 [pear] 쪽지 캡슐

2001-05-12 ㅣ No.4578

저요....

적어도 하루에 두 번 이상 꼭 게시판에 들려봅니다.

그런데 최근 며칠, 그렇지 않아도 심심하던 게시판에 썰렁한 바람소리만 남아있는 듯 하군요.

 

굿뉴스초기부터 지금까지 줄곧 여길 지켜왔습니다.

지금은 좀 지쳤다는 느낌도 있고,

또 찾는 이들이 자꾸 줄어드는 이유가 ’내 탓’ 인 거 같기도 하고,

열 손가락안에 꼽을 정도의 소수의 참여자들이 돌아가며 올리는 글들중

너무 빈번하게 내 이름이 올라오는 것 같은 미안함때문에

기다리다 이렇게  게시판 데우기 작업을 시작합니다.

 

최근 안도현 시인의 연탄에 관한 시 두편이 우리 게시판에 등록되었었습니다.

 

지금은 연탄을 쓰는 이들이 얼마나 될런지 상상이 안 될 정도로 제한되어 있지만,

(연탄이 만들어지기는 하나???????)

한 때는 우리들의 추운 겨울을 따뜻이 녹여주는 연탄을 지고 가는 지게나 수레를 흔히 볼 수 있었지요.

며칠 전 교보문고에 갔다가 가슴 찡한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 ’연탄길’ 이란 책을 구입하였습니다.

그게 아마도 며칠 전이 아니라 한 달도 넘었던 거 같습니다.

그러다 오늘 겨우 다시 펴들었지요.

그리고 여기 옮겨 적어 봅니다.

우리 게시판이 다시 따끈따끈 데워지길 기도하는 마음으로요.......

 

우리들 일상에서 이처럼 조그만 허물을 말없는 미소로 덮어주는 일...

아마도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자그마하지만 위대한 힘이 되겠지요.

 

맨날 불평이나 하고 수그덕거리기 좋아하는 저에게...좋은 약이 될 찡한 미담입니다.

저도, 누군가의 허물을 그저 싸안아 줄 수 있는 그래서 더 초라해 보일지 모르지만....그런 사람이 될 수 있는 용기를 배우고 싶습니다.

 

따지기 좋아하는 저의 찌그러진 모습을 반성하면서요.............

 

 

 

< 너에게 묻는다 >

 

 주문한 설렁탕이 사무실로 배달되자 사무실 사람들은  식사를  하려고 회의실로 모여들었다. 그 때 사무실 문이 열리더니 김대리가 청소하는 아주머니의 팔을 끌며 안으로 들어왔다.

 

 "왜, 거기서 혼자 식사를 하세요? 우리도 식사를 하려던 참이었는데, 같이 하시면 좋잖아요. 어서 이리 앉으세요."

 

 김대리는 도시락을 손에 들고 멋쩍어하는 아주머니를 기어코 자리에 앉혔다.

 

 "아니에요. 저는 그냥 나가서 혼자 먹는 게 편한데..........."

 

 "아주머니 저도 도시락 싸왔어요. 이거 보세요."

 

 정이 많은 김대리는 아주머니의 도시락을 뺏다시피 해서 탁자 위에 올려놓고는 자신의 도시락을 나란히 꺼내 놓았다.

 

 "아니 왜 이 건물엔 청소하시는 아주머니 식사할  곳 하나가 없어!"

 

 "그러게나 말야."

 

 "글쎄 날씨도 추운데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식사를 하시려 하잖아."

 

 김대리는 안쓰러운 표정을 지으며 동료들에게 말했다. 멀찌감치 듣고만 있던 창수도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의 표시를 했다.

 

 아주머니가 싸온 반찬통에는 시들한  김치만 가득했다. 숫기가 없는 아주머니는 자신이 싸온 초라한 반찬이 창피했는지 고개를 숙인 채 조심스럽게 식사를 하고 있었다. 김대리는 아내가 정성스레 준비해준 김이며 장조림이며 명란젓을 몇 번이고 아주머니에게 권해드렸다. 그리고 자신은 아주머니가 싸온 시들한 김치만 먹었다.

 

 ’김치 참 맛있네요. 아주머니."

 

 김대리의 말에 아주머니는 소리없이 미소만 지었다. 다른 동료들도 아주머니가 싸온 김치를 맛나게 먹었지만, 창수는  단 한 조각도 잆에 넣지 않았다.

 

 창수는 왠지 그 김치가 불결해 보였다. 워낙에 시들한 데다가 김치가 담겨 있던 통은 너무 낡아 군데 군데  허옇게 벗겨져 있었고 붉은 물까지 들어 있었다.

 

 밥을 다 먹고 나자 창수는 아주머니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출근할 때 아내가 보온병에 담아준 율무차를 아주머니에게 주었다.   종이컵에 따르면  두 잔이 나오지만 머그잔에 가득 따라 자신은 먹지 않고 아주머니에게만 주었다. 아주머니는 거듭 사양했지만 결국 창수의 성화에 못 이겨   율무차를 마셨다.

 

 대신 창수는 자동판매기에서 커피 네 잔을 뽑아 동료들과 함께 마셨다. 아주머니는 그 자리가 어려웠는지 율무차를 마시는 내내 벽 쪽만 바라보고 있었다.

 

 "정말 맛있게 마셨어요. 근데 제가 다 마셔서 어떻게 하지요?"

 

 "아니에요."

 

 아주머니는 창수가 준 율무차를 조금도 남김없이 다 마시고는 진심으로 고맙다는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머그잔을 씻어다 준다며 밖으로 나갔다.

 

 그 날, 7시쯤 집으로 돌아온 창술르 보자마자 그의 아내가 대뜸 물었다.

 

 "아침에 가져간 율무차 드셨어요?"

 

 "그럼."

 

 "어쩌면 좋아요. 맛이 이상하지 않았어요?"

 

 "왜?"

 

 "아니 글쎄, 율무차에 설탕을 넣는다는 게 맛소금을 넣었지 뭐에요. 저녁을 하다보니까 내가 설탕 통에 맛소금을 담아 놓았더라구요."

 

 창수는 아내의 말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청소부 아주머니가 싸온 김치를 그가 불결하다고 생각할 때, 아주머니는 소금이 들어 있는 짜디짠 율무차를 마셨다. 조금도 남기지 않고 몇 번이고 맛있다는 말을 되풀이하면서...........

 

 그 날밤 창수는 밤늦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의 이불 뒤척이는 소리만이 밤의 고요를 깰 뿐이었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안도현,  너에게 묻는다-

 

 



48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