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부활절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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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윤석 [drhur] 쪽지 캡슐

2005-03-28 ㅣ No.155

 

+ 찬미예수님!


저에게 이번 사순절은 무척이나 우울하고 무거웠습니다.


본당이 아닌 수도원에서 사순절을 보내면서 지난날의 분주했던 사순절이 아닌 이곳 영원하신 성모님의 슬하에서 그리고 가슴에서  깊게 성모님과 함께 주님의 수난을 묵상할수 있어서 처음에는 행복하였습니다.


하지만 하루 하루 사순절을 보내면서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이 얼마나 소중하고 고귀한 사제직인가? 이 신앙이 얼마나 하느님의 피와 땀이 응고된 총화가 아닌가라는 깨달음은 하루 하루 그리스도의 사제로 사는 제자신이 얼마나 부당한 사람인가에 대한 성찰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내가 입고 있는 이 제의며 수단이 저에게는 부당하고 무거운 십자가로 느껴졌습니다. 


이러한 우리 주 그리스도의 수난과 사랑에 대한 묵상은 저의 영적인 감각을 민감하게 하였고 마치 오래된 저의 죄와 게으름 그리고 늘 완벽하고 흠없는 사제가 되어야겠다고 남을 의식하는 교만의 먼지가 성모님의 지혜의 털이개로 저의 영혼안에서 털이울때 저는 심한 영적인 호흡곤란을 이르켰습니다.


나의 본모습은 빌라도와 베드로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런 저의 모습을 본순간 심한 실망감과 함께 저는 처음으로 저의 사제직에 대한 굳은 의지와 희망이 그리스도께서 넘어지신 것 처럼 함께 넘어졌습니다.



이렇듯 완고하고 집착어리게 굳어버린 죄의 먼지! 내영혼의 화석과 같은 마음!

예수님의 무덤을 로마 병사들이 막았던 그 커다란 돌이 바로 저의 모습이었습니다.


성금요일에 저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비애감과 실망감에 빠져 십자가의 길의 가대소의 그림자속에서 저의 모습을 가린체 숨어서 참여하였습니다.


가대소에서 그리스도의 수난의 장면들을 바라보면서 저는 가슴이 너무 아파서 울었습니다.


뜨거운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 이유는 언어의 영역에서는 표현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저미는 가슴과 제 자신에 대한 죄책감 그리고 앞으로 사제직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감이 저를 엄습하였습니다.


순간 저는 우연히도 제단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가대소의 구석에서 영원하신 성모님의 이콘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제가 저 이콘을 바라보는 그순간 수난의 영화에서 예수님과 성모님께서 서로 만나셨고 예수님과 성모님은 동시에 어렸을때 어린 예수님이 넘어지신 것을 어머니의 가슴으로 안아주시며 괞찮다, 아가야 괞찮다라고 말하십니다.


예수님은 세 번이나 넘어졌지만 세 번다 일어나셨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일어서신 그 힘은 바로 예수님의 힘만이 아니었습니다. 마치 슬하에 있는 아기가 넘어지면 어머니의 시선과 가슴으로 다시 일어서듯이 어머니의 기도 어머니의 시선이 예수님의 의지와 만나 기적을 이르켰던 것입니다.


저 이콘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과 그 아드님의 모습을 바라보십시다.


저는 이번 사순절 저 이콘을 통해 많은 깊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저 이콘은 기적의 성모님,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그리고 수난의 성모님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저 그림은 또한 부활의 성모님과 예수님이라는 제목을 붙여야 합니다.


성모님과 예수님의 갈바리아산에서의 수난이 없다면 부활이라는 기적이 없었을 것이며 이 부활의 기적이 없다면 우리는 영원한 도움을 얻을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 이콘이 수난의 성모님이면서도 빛나는 황금의 배경색을 소유한 것은 이 두분의 십자가의 고통과 수난 그리고 순명을 통해 아담과 이브의 원죄를 씻는 부활이라는 영원한 낙원을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안식일이 지나고 이튿날 막달라 여자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는 부활한 예수님이 아닌 주검이 있는 무덤을 의식없이 보러 갔습니다.


그의 머릿속에는 주님께서 3일 만에 부활하리라는 약속은 십자가상의 고통과 자신의 죄에 대한 송구함으로 까마득하게 잊혀졌을 것입니다.

저의 모습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큰 지진이 일어나면서 하늘에서 주의 천사가 내려와 그돌 바로 죄의 돌을  예수님을 가두었던 돌을 굴려 냈다고 했습니다.


저는 영원한 도움의 이콘안에서 부활을 경험하였습니다. 저 빛나는 황금의 빛 배경은 바로 부활의 빛이었습니다.


늘 자기의 나약과 죄와 게으름에 홀로서기를 다시 해야할 제 자신의 가슴속에 화석처럼 굳어진 돌을 굴려내는 동트는 빛이었습니다.


동트는 빛은 어느새 온세상을 삽시간에 대낮으로 만들 듯이 주님의 사랑 그리고 성모님의 사랑은 우리를 부활의 광명으로 이끄십니다.


우리가 저 기적의 이콘 수난의 이콘안에서 갈바리아의 고통을 잊지 않고 저 황금의 빛안에서 성모님과 예수님의 사랑과 부활의 조명과 온도를 영적으로 육적으로 느낄때 우리는 여자들이 느꼈던 무서우면서도 기쁨에 넘치는 이 부활의 감정으로 이젠 빈무덤을 떠나 급히 달려 갈수 있습니다.


여자들에게 예수님은 “두려워 하지 마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들은 거기서 나를 만나게 될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갈릴래아가 어디 입니까? 그 넓은 갈릴래아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요?

그 구체적으로 누구의 집입니까?


여기서 갈릴래아란 바로 갈릴래아에 있던 사도 요한의 집!

즉 성모님을 모신 이제는 사도요한의 집이 아니라 엄마를 잃고두려움에 떨고 있는 아기와 같은 사도들을 위해 기도하고 계신 성모님이 계신 집!

지금 성모님이 기도하시고 있는 그 집을 말합니다.

이집을 저는 작년에 참배하였습니다.


바로 이 사도요한이 성모님을 모신 이 집을 2000년 동안 우리 교회는 가르쳐 오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바로 이 부활의 메시지를 정말 깊이 새겨야 합니다.


“두려워 하지마라. 가서 내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그들은 거기서 나를 만가게 될것이다.”


그렇습니다. 바로 부활한 예수님의 지시사항은 십자가상의 유언 어머니 이사람들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라고 말씀의 완성으로 모든 형제들이 부활한 그분을 당신의 모친의 집 바로 기도의 집 그리고 겸손과 사랑의 어머니의 집!을 택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갈릴래아는 어디일까요?


바로 이곳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의 시선이 머무는 바로 우리의 삶의 자리입니다.


우리는 오늘 예수님의 말씀처럼


“그 무엇으로 부터의 두려움에 싸여도 우리는 얼른 부활하신 예수님의 말씀처럼 힘든 나자신과 형제들과 함께 갈릴래아 즉 성모님에게로 가야 합니다.” 왜냐면


거기서 바로 예수님은 만나주시겠다고 하셨으니까요!


저는 이러한 깨달음을 영원한 도움의 이콘을 통해 얻었습니다!


우리의 이콘은 바로 사순의 완성이요 부활의 영원한 영속성을 가진 기적의 완전한 표지입니다.


우리가 온전히 무덤을 떠나 급히 달려가야 할곳!


그곳은 바로 성모님의 기도와 도움이 있는 바로 이 성모님과 예수님의 이콘아래입니다. 






하늘 냄새


사람이 하늘처럼

맑아 보일때가 있다.


그때 나는 그 사람에게서

하늘 냄새를 맡는다.


엄마의 가슴이 바다처럼 넓어 보일때가 있다.

그때 나는 엄마의 가슴에서

부활의 향기를 맡는다.


엄마의 냄새가 그리울때 나는 울컷 엄마에게

달려가고 싶다.


그때 나는 하느님의 냄새를 맡는다.

부활의 냄새를 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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