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고통을 주고 받는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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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윤석 [drhur] 쪽지 캡슐

2001-07-21 ㅣ No.105

나나 남이 고통을 주고 받는 관계라면 그들은 남이 아니라 한몸이다.

 

 

 

그들이 한몸이기에 아픈 것이다.

 

 

 

 

 

나나 남이 기쁨을 주고 받는 관계라면 그리 기뻐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한몸이 아니기때문이다.

 

 

 

입이 손이 밥을 떠 먹여준다고 기뻐서 고맙다고 늘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한몸이기에...... 그 영양분이 모두 몸에 미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의 손이 나의 입에 쌈을 싸주면 그 성의에 대해 우리는 이렇게 말한다.

 

"감사합니다."

 

 

 

그러나 자기가 쌈을 싸먹으면서 나의 손에 감사하는 이는 없다.

 

 

 

"형제 여러분, 몸은 하나이지만 많은 지체를 가지고 있고 몸에 딸린 지체는 많지만 그 모두가 한 몸을 이루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몸도 그러합니다.

 

몸은 한 지체로 된것이 아니라 많은 지체로 되어 있습니다. 발이 ’나는 손이 아니니까 몸에 딸리지 않았다.’하고 말한다고 해서 발이 몸의 한부분이 아니겠습니까? 또 귀가 ’나는 눈이 아니니까 몸에 따리지 않았다.’하고 말한다 해서 귀가 몸의 한부분이 아니겠습니까? 만일 온 몸이 다 눈이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뜻대로 각각 다른 기능을 가진 지체를 우리의 몸에 두셨습니다. 눈이 손더러 ’너는 나에게 소용이 없다.’하고 말할수 없고 머리가 발더러 ’너는 나에게 소용이 없다.’하고 말할수 없습니다."고린토 1서 12.12-20 참조

 

 

 

중병에 걸린 아버지를 둔 딸이 말했다.

 

"신부님 저는 아버지를 늘 사랑했고 편찮으시기 전에도 늘 아버지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큰 병에 걸려 고통스러워 하시니까. 기도를 하고 싶어도 할수가 없어요.

 

저는 불효자나 봐요. 저렿게 이웃분들은 기도를 해주시는데......"

 

 

 

나는 이렇게 말했다.

 

"그것은 바로 너희 아버지와 너는 한몸이기 때문이다. 남이 아니고......

 

그러나 저분들은 남이잖니 만약 저들의 가정의 아버지가 아프다면 여기와서 너희 아버지를 위해 기도하지 않을 것이다.

 

너는 아버지의 딸이다. 즉 아버지와 너는 하나이기에 아버지가 힘들어 하실때 너의 마음이 아픈 것이다. 신부님은 아버지의 고통을 너의 고통으로 실제로 느끼는 너의 사랑의 애닮은 마음이 가장 커다란 기도 그 자체라고 생각한다."

 

 

 

구정이다! 가족 먼 친척까지 다 모인다. 모이다 보면 꼴보기 싫은 친척과 가족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명심해야한다. 서로 상처를 준 관계 줄수 있는 관계지만 늘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바로 우리가 한몸이기 때문이다.

 

 

 

미운 동서간의 관계, 고부간의 관계, 부부관계, 그리고 잔소리와 반항이 오가는 부모와 자식관계라 할지라도 우리는 그것을 부정적으로만 볼것이 아니라 그 상처를 줄수 있는 관계란 결국 식구라는 한몸의 관계라는 것이다. 가족 중에 환자가 있어서 명절이 병치레와

 

그로인해 서로에게 십자가를 지우는 상태가 되는 슬픈 가정이 많다.

 

하지만 그것 역시 나중에 깊게 기도해 보면 주님말씀대로 우리는 한몸임을 알수 있다.

 

 

 

"우리는 몸 가운데서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부분을 더욱 조심스럽게 감싸고 또 보기 흉한 부분을 더 보기 좋게 꾸밉니다. 이렇게 하느님께서도 변변치 못한 부분을 더 귀중하게 여겨 주셔서 몸의 조화를 이루게 해 주셨습니다. 한 지체가 고통을 당하면 다른 모든 지체도 함께 아파하지 않겠습니까? 또 한 지체가 영광스럽게 되면 다른 모든 지체도 함께 기뻐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신앙안에서 성체와 성혈 그리고 생명의 말씀을 나누고 살아가는 한 식구이다.

 

 

 

우리가 죄를 지을 때 우리의 머리이신 예수님은 그 고통을 가장 먼저, 가장 깊게 느끼신다.

 

 

 

그러나 고통과 상처를 받고 주는 것을 너무 두러워할 것은 없다.

 

 

 

 

 

모든 평화의 끝은 고통없는 평화를 추구하는 그 순간에서 시작한다.

 

 

 

걸음말를 깨우치기 위해 아기의 무릎에 있는 그 검은 피딱정이는 마르는 날이 없기 나름이다.

 

 

 

스키를 잘 타기 위해서는 엉덩이가 파스와 늘 붙어다녀야 한다. 한동안.....

 

 

 

 

 

상처좀 받으면 어떠한가?  또 상처 좀 주면 어떠한가?

 

 

 

 

 

나도 상처도 받고 상처도 좀 주는 한해를 살것이다. 자신있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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