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강론

연중 제4주간 월요일 '24/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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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24-01-11 ㅣ No.5648

연중 제4주간 월요일 '24/01/29

 

처음으로 시편을 접할 때, 눈물로 읽었던 구절이 떠오릅니다. “인간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기억해 주십니까?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돌보아 주십니까?”(시편 8,5) 아마도 이스라엘은 고슴도치도 자기 새끼가 이쁘다.”고 한 말이 나올 정도로 자기 자식을 아끼는 자연계를 보면서, 인간을 끔찍이도 사랑해 주시는 주 하느님의 은총을 겪으면서, '하느님께서 사람을 만드셨다.'고 고백할 수 있었는가 봅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군대라고 하는 더러운 영들에게 걸려 그야말로 막무가내로 날뛰는 사람을 구하십니다. 그런데 그 구하시는 과정에서, 그 사람을 사로잡고 있던 더러운 영들이 나가기를 거부하고 협상을 하다가, 예수님께 저희를 돼지들에게 보내시어 그 속으로 들어가게 해 주십시오.”(마르 5,12) 하고 청합니다. 예수님께서 허락하시자, 마귀들이 돼지들 속으로 들어가 호수를 향해 달려가 죽게 됩니다.

 

그런데 정작 예수님께서는 그 지방의 돼지를 다 포기하시면서까지 사람 하나를 구하시는 데 반해, 동네 사람들은 예수님께 저희 고장에서 떠나 주십사고 청하”(17)여 결국 예수님께서는 그 고장을 떠나시게 됩니다. 아마도 사람들에게는 사람의 생명이 중한 것을 모르거나 거부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자신들의 소유를 손상시켜가면서 사람을 구하시는 것까지는 원하지 않는가 봅니다.

 

똑같은 주 하느님의 피조물이건만, 주 하느님께서는 사람 한 사람을 구하시기 위해 동네 사람들의 돼지 전체를 맞바꾸십니다. 주 하느님께서 한 사람의 영혼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시는가를 느끼게 해주시는 기사입니다. 주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를 올려 드립니다. 나같은 사람도 있고, 우리 주위에 수 많은 사람들이 있어서, 인간의 존엄성과 그 귀중함을 깊이 새기지 못하고 그냥 그렇게 살면서 자기 생각대로 아무렇게나 해도 되는 것처럼 살고 있는 우리 자신이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인간 생명 하나를 구하시기 위해 온 세상과 바꾸시는 주 하느님의 인간 생명을 향한 사랑을 경이스럽게 바라보며, 나와 너의 생명의 존귀함을 다시 한번 고개 숙여 되새기게 합니다. 재물에 눈이 멀어 생명을 귀하게 여기지 못하는, 물질적 배금주의에 빠져 있는 부끄러운 우리의 자화상을 고백하며, 주님 사랑의 기적으로 회개의 새로운 여정을 내딛게 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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