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의 광장

가시는 걸음걸음 편안히 안녕히 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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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성희 [seongangela] 쪽지 캡슐

2009-02-17 ㅣ No.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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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여 당신 종을 맞아 주소서!
 비록 잃는 슬픔은 한이 없으나
이제 모든 걸 마치고 쉬게 하시니
그 누가 당신의 명을 거역하리오리까?
 
가난한 이들,
나약한 이들의 편에서
함께 하며 당신 닮은 눈물을 흘리셨던 그를
당신 곁에 부르시고
당신께로 오라 명하셨으니
천사들을 보내시어 맞이하시리라 굳게 믿습니다!
 
 
 
 
 
 
 
존경하는 김수환 추기경님!
이제 세상 소풍 마치셨으니 안녕히 가십시오,
 
십자가 위에서의  예수님처럼,
어지러운 세상에 남겨두고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저희들을 아버지께 맡기고 가시는
걸음걸음 부디 평안하시길 빕니다.
 
사람답게 살고자 하셨던 소박한 꿈을 겸손하게
봉헌하시며 그리스도의 모습을 좀 더 가까이
보여 주시려 애쓰시느라 더러는 뽀족한 고독의 물살을
아프게 맞기도 하시며 외로운 별처럼 살아주신
나날들에 한없는 감사와 존경을 드립니다.
 
맞습니다.  추기경님,
갈팡질팡 다듬어지지 않은 백성을 끌고 멀고 먼
탈출의 여정에서 길을 밝혀 주시느라 모세처럼
기도하시고 눈물 흘리신 당신은 진정
고독한 별로 삶을 봉헌해 주셨습니다.
 
작은 자들이 보내준 보잘 것 없이 부끄러운 격려와
간청의 글들에도 일일이 손수 답해 주셨으니
낮은 자들의 앞에서나 보이지 않은 집무실,
뵐 수 없었던 병실에서도 결코 다르지 않으셨을
당신의 진솔하신 삶이 주님 앞에서도 자랑스러운 것이리라 
굳게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몸 져 눕기 얼마 전에는 자식같이 믿었던 사제에게
활을 맞으시고 필경 괴로움으로 눈물 지으셨을 걸
생각하면 한없이 가슴이 아픕니다.
 
세월이 지나서 익어가는 연륜의 지혜로 바라보면
싸움과 대결보다는 화합과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셨던 당신의 깊은 의도를 깨닫고
필경 회한의 눈물을 흘리겠거니 여겨집니다.
 
40여 년 전, 궁핍했던 나라가 가난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면서 생활 수준이 수직으로 향상 되어가는
여파로 갑작스럽게 쏟아진 각종 합성세제들의 하얀 거품이
한강을 숨막히게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부활절을 앞 둔 어느 사순절 특강에서 저희에게 간곡히 청하시며.
하느님의 선물인 이 땅을 위해 희생 하나씩 해보자고
요청하셨던 추기경님, 당신의 잔잔한 말씀으로 우리는
아니 저는 샴푸 안 쓰기를 약속하였습니다.
 
물론 개인적으로가 아니고 공적으로 하셨던 말씀이었지만
그 약속은 생활 속에 익어 들어 각질의 이상반응으로 가려움을 
치료 할 때를 제외하고는 당신의 나라사랑, 지구사랑 기도에
함께하는 마음으로 여전히 지키고 있습니다. 
병원에 계실 적에 힘내시라고 이 말씀을 꼭 들려드리고 싶었었는데…
 
그 후, 명동을 떠나 함께 인생길에 동반한 옆 지기와
머나먼 이국 땅에 와서 더러는 이웃의 달갑지 않은 웃음을
사면서도 떳떳이 저와 같이 작은 지구사랑
샴푸 안 쓰기를 함께 지켜주고 있으니
하늘 나라에서도 기뻐해 주시리라 믿으며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답게 작은 일에 충실하며 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제 무겁게 짓누른 십자가,
세상을 위한 모든 근심걱정을 내려 놓고 부디 편안히 가십시오. 
김수환 추기경님 사랑합니다!
 
아버지, 당신의 충실한 종을 맞아 주소서!
비록 잃는 슬픔은 한이 없으나 이제 모든 걸 마치고
쉬게 하시니 그 누가 당신의 명을 거역 하오리까?
 
가난한 이들, 나약한 이들의 편에서 함께 하며
당신 닮은 눈물을 흘리셨던 그를 당신 곁에 부르시고
당신께로 오라 명하셨으니 천사들을 보내시어
맞이 하시리라 굳게 믿으며 아버지의 손에
외로웠던 한 사제의 고귀했던 삶을 맡겨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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