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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칼럼: 영화 당신을 기다리는 시간 -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루카 2,19)

119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4-05-21

[영화칼럼] 영화 ‘당신을 기다리는 시간’ - 2015년 작, 감독 ‘피에로 메시나’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루카 2,19)

 

 

성경에 드러나지 않은 성모님의 삶을 헤아려봅니다. 아들 예수님을 잉태한 이후부터 겪은 어려움들을 함께 버티고 이겨낸 남편 요셉이 세상을 떠났을 때, 이전에 겪은 어려움들 이상의 깊은 절망을 느꼈을 것입니다. 천사가 전했던 예고와 달리 공생활 전 평범하게 살아가는 아들의 모습에 예고의 신빙성을 의심했을지도 모릅니다. 십자가에 달린 아들을 똑바로 서서 바라보았다고 하지만, 어쩌면 어머니는 그 자리에 주저앉고 싶으셨을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성모님의 삶은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는 증언으로 대변되며, 이는 성모님의 삶이 기다림의 연속이었음을 보여줍니다. 성모님은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나 어미로서 받아들일 수 없는 아들의 모습 앞에 논리나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모든 것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기 때문입니다.

 

피에로 메시나 감독의 영화 <당신을 기다리는 시간>은 자녀가 부모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는 일인 ‘참척(慘慽)’을 진중하게 담은 작품으로, 성모님의 심경을 함께 읽어내도록 이끕니다. 그리고 그 심경 안에 담긴 기다림의 정서를 관객과 공유합니다. 영화는 아들 주세페(지오바니 안젤로 분)를 잃은 어머니 안나(쥘리에트 비노슈 라쥬 분)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꾸립니다. 아들이 세상을 떠난 이후 시름에 빠져있던 안나에게, 어느 날 주세페의 죽음을 알지 못하는 주세페의 여자 친구 잔(루 드 라주 분)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옵니다. 주세페와 연락이 닿지 않아 집으로 전화를 걸어온 것입니다. 안나는 주세페의 죽음을 언급하지 않고 잔을 시칠리아에 위치한 자신의 저택으로 초대합니다. 고통스러운 비밀을 품은 안나와, 애인의 무소식에 상심해하는 잔은 주세페가 돌아오기로 약속했던 부활 대축일을 앞두고 함께 지내게 됩니다.

 

영화는 여러 장면에서 안나를 성모님의 모습에 빗댑니다. 영화가 시작됨과 동시에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의 발에 입을 맞추는 여인이 등장하는데, 이 여인은 자연스럽게 성모님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후 영화 속 안나의 모습은 성모님이 어머니로서 겪었을 인간적인 슬픔을 가늠하도록 이끕니다. 일꾼이 집에 못을 박는 소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을 상기시키고, 창문들을 암막으로 가려서 햇빛이 전혀 들지 않는 저택의 모습은 예수님의 죽음을 목전에 두고 펼쳐진 암흑의 상황과 맞닿아있어 보입니다.

 

시메온의 예언(루카 2,35 참조)에서 드러나듯 성모님이 감내한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고통은 곰곰이 생각하며 마음 깊이 새기는 성모님의 태도에 힘입어 고귀한 기다림으로 승화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차원에서 성모 성월은 우리에게 밀려오는 사태를 두고 즉각적으로 반응하기보다 긴 호흡으로 마주할 수 있는 태도를 일깨우는 시기일 것입니다. 그렇게 영화 속 안나가 잔에게 주세페의 죽음을 곧바로 알려주지 않은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2024년 5월 19일(나해) 성령 강림 대축일 서울주보 7면, 구본석 사도요한 신부(행당동성당 부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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