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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어떤, 교회: 교회 안에서 신앙을 살아 낸다는 건

842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4-08-13

[어떤, 교회] ‘교회’ 안에서 ‘신앙’을 살아 낸다는 건

 

 

같은 지역에 있는 보좌 신부들을 만나거나 동기 신부들을 만나면 “너희 본당은 주일학교 학생 몇 명인데?”, “청년회 몇 명인데?”라는 물음이 자주 오갑니다. 사람들이 북적이는 곳에 가면 아이들도, 청년들도 많은데 성당에는 점점 보이지 않기 때문이겠죠.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이 지면에서 그 원인을 상세히 분석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학술적으로 많은 학자들이 연구하고 있고 노력하고 있지만, 전통적인 의미에서 종교(교회)는 계속 매력을 잃고 있죠.

 

종교(宗敎)란 말 그대로 으뜸이 되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불교는 자비, 이슬람은 평화처럼 그리스도교도 으뜸이 되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바로 ’희생’을 통한 ‘사랑’입니다. 보통 그리스도교 사상의 핵심을 사랑으로 알고 있지만, 희생이 빠지면 온전한 답이 아닙니다. 반대로 희생만 있어도 안 되겠죠. 사상으로서의 그리스도교는 우리네 삶에서 희생을 통한 사랑이 어떻게 실현되고 있고 실현할 수 있는지 고민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이 우리 삶에 들어와 보여 주시고 살아 내신 게 그것이기 때문이죠. 그 사랑은 삶의 깊은 차원에서 우리의 온 존재를 건드립니다. “깊이에 대해 아는 사람은 신에 대해 아는 사람”(폴 틸리히, 『흔들리는 터전』)이라는 말처럼 삶의 심오한 차원을 고민하고 살아 내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 교회인데, 지금의 교회가 매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말은 표층적인 면에 머물고 있다는 말이기도 할 겁니다. 

 

전통적 종교는 쇠퇴하고 있지만 사람들의 종교적 관심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제도 종교 아닌 곳에서 정신 건강을 찾고 위안을 얻고 있죠. 혼자 성경을 읽고 공부하는 나홀로 신앙도 많습니다. 교회 공동체 특유의 문화에서 벗어나기 위해 교구에서 주최하는 신앙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사람도 많습니다.(파스카, 비다누에바, 선택 등) 사회운동이나 과학에서 답을 찾는 이들도 있죠. 인문학 강화나 독서 모임, 템플스테이, 문화체험(요가, 명상)도 기존 종교의 대체재 역할을 합니다. 그런 것들이 더 재미있고 의미 있다고 느껴집니다. 

 

사실 겉으로만 보면 위에서 언급한 것과 그리스도 교회의 사상적 가르침이 같은 결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을 한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요? 사상으로서의 그리스도교를 뒷받침하는 건 바로 실천으로서의 교회입니다. 교회는 무조건적인 환대로서의 사랑을 지향하죠. 가장 첫째 가는 계명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예수님은 ‘너의 마음과 목숨과 정신과 힘을 다해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라고 답합니다.(마르 12,30-31 참조) 더 나아가 원수도 사랑해야 한다고 하니, 거의 불가능한 사랑을 촉구하는 일이기에 그리스도교는 위대한 실천이 됩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보통의 사랑이 아닙니다. “사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그것은 세리들도 하지 않느냐? 그리고 너희가 자기 형제들에게만 인사한다면, 너희가 남보다 잘하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그런 것은 다른 민족 사람들도 하지 않느냐?”(마태 5,46-47) 이 말씀처럼 교회 안에서 신앙을 살아 낸다는 건 겸양과 자기 변화이고 궁극적으로는 타인 되기입니다. 쉽게 말해 자신을 버리고 언제나 상대방(타자)이 되는 삶이 신앙의 방향이죠.

 

따라서 교회 안에서 신앙을 살아 낸다는 것은 포근하게 정신적인 위안을 받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세속적 정신은 가닿을 수 없는 깊은 차원에서 실존의 의미를 좇는 것이고, 종교의 단순한 면(마음의 평화와 안정, 축복)만 보고 온 사람들은 감당하기 어려운 이타적인 삶을 살아 낸다는 의미입니다. 나의 생활, 나의 가치관, 나의 일과 취미처럼 ‘나’를 위한 맞춤형 프로그램이 넘쳐 흐르는 시대입니다. 나를 소중히 여기고 사랑한다는 건, 중요하죠. 예수님도 나를 사랑할 수 있을 때 이웃을 사랑할 수 있다고 하셨으니까요. 하지만 교회는 거기서 멈출 수 없습니다. 언젠가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이런 연설을 했던 게 기억납니다. 모든 것을 자신의 리듬에만 맞춰가면서 나머지는 귀찮아하는 것은 계획된 신앙’(scheduled faith)이라고 말이죠.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을 내 마음대로 맞춰 가는 사람이 늘어난다면 교회는 세상에서 매력을 잃어가지 않을까요. 물론 우리가 아무리 간절히 타인이 되고자 노력해도 진정으로 그 사람에게 가닿지는 못할 겁니다. 하지만 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고,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을 읽어 내고, 함께 아파하고 슬퍼하며 나를 내어놓는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이 교회라면 그곳에서 한번 함께 살아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거라 믿습니다. 신앙을 살아 내는 사람들을 통해 매력적인 교회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월간 빛, 2024년 8월호, 박태훈 마르티노 신부(성김대건성당 보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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