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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학 칼럼: 이후의 인간 - 포스트 휴먼

513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4-10-09

[인간학 칼럼] 이후의 인간 – 포스트 휴먼

 

 

인간은 과학과 기술을 이용해 엄청난 문화적 업적을 이룩했습니다. 과학과 기술은 우리를 오늘날과 같은 인간으로 살아가도록 하는 결정적 요인이지요. 과학 · 기술 없이 현대인은 하루도 인간답게 살아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과학·기술에 경탄하고 거의 맹목적으로 추종합니다. 마침내 과학의 지식이 진리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이런 혜택을 적극적으로 누리는 현대인은 분명 문명이 시작되었던 그 옛날 고대인과는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지요. 그런데 그 차이는 어느 정도일까요. 본질적인 변화와 실존적인 현실 사이의 차이는 어떻게 드러나고 있나요. 이런 질문과 씨름하는 새로운 인간 이해의 흐름을 포스트휴머니즘이라고 부릅니다. 이는 과거 및 현재와는 다른, 이후의 인간을 이해하고 해석하려는 철학을 일컫는 말이지요. 한 마디로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는 과학·기술과 인간의 관계를 새롭게 설정하려는 경향입니다.

 

여기에는 명확히 차이나는 여러 흐름이 있습니다. 과학과 기술의 힘을 최대한 활용해서 인간의 모든 자연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조류를 트랜스휴머니즘이라 부릅니다. 이들은 노화나 질병을 극복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우리 몸을 과학 · 기술과 결합시키면 슈퍼맨같은 존재가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참으로 어리석은 생각이지요. 진정 인간은 죽지 않는 존재가 될까요? 그럴 리도 없지만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인간이 지닌 모든 내면적 문제나 영혼의 문제, 인간관계의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나요? 이들은 거기에 대해서는 침묵합니다. 이런 맹목적 주장을 넘어 기술을 인간적인 관점에서 최대한 활용하려는 기술적 포스트휴머니즘도 있습니다. 최소한 5–6가지 이상의 포스트휴머니즘적 경향이 피할 수 없는 과학 · 기술과 인간의 관계를 새롭게 설정하려는 철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그에 비해 지금까지 가장 폭넓게 받아들여지는 인간 이해를 흔히 휴머니즘이라 부릅니다. 이 철학은 17세기 이래 유럽에서 시작된 근대의 문화와 철학의 영향에 따라 인간을 이해하고 규정하는 흐름이지요. 이 사조는 근대 철학에 기반하여 인간을 이해하려 합니다. 근대 철학은 인간을 이성적 존재로 규정하고 그에 따라 이성을 드높이는 계몽을 강조합니다. 인간은 독립된 개체로서 고유한 자유와 권리를 지니고 있으며 누구나 평등한 존재입니다. 이런 인간에 의해 역사는 끊임없이 진보하며 인간은 자연 안에서 가장 독특한 존재, 마침내 존재의 주인으로 자리하게 됩니다. 우리가 보는 현대의 모든 체제는 이런 철학에 기반해 성립되었으며, 그에 따라 형성된 인간 중심의 철학이 바로 휴머니즘입니다.

 

다양한 흐름이 있지만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뭇 생명과 ‘더불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존재로 인간을 자리매김하려는 철학입니다. 현대의 온갖 위기 현상에서 필요한 철학은 과학·기술과 자본주의가 가져다주는 풍요에 함몰되지 않으면서도 그 한계와 폐해를 극복하는 인간 이해입니다. 과학·기술의 놀라운 업적에 매몰되어 인간의 본질적 한계와 실존적 현재를 무시하는 것은 현대인의 오만에 지나지 않습니다.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고 더 높은 문화로 나아가는 길은 인간을 새롭게 이해할 때만이 가능할 것입니다. 이를 감내하며 초월하려는 ‘이후의 인간’은 어떤 존재일까요?

 

[2024년 10월 6일(나해) 연중 제27주일 서울주보 7면, 신승환 스테파노(가톨릭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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