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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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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ㅣ세계 교회사
[한국] 한국 교회 그때 그 순간 40선 (41) 연재를 마치며

1750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4-10-30

[가톨릭평화신문 - 한국교회사연구소 공동기획] 한국 교회 그때 그 순간 40선 (41·끝) 연재를 마치며


선교사 없이 자발적으로 세워진 교회, 초기 ‘복음의 영성’ 되찾을 때

 

 

 

- 1984년 5월 6일 한국 순교 성인 103위 시성식이 거행되는 서울 여의도광장(현 여의도공원)에 모인 100만 가톨릭 신자들이 태극기와 교황기를 흔들며 상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을 환영하고 있다.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 제공



1984년 5월 6일 한국 순교 성인 103위 시성식이 거행된 서울 여의도광장(현 여의도공원)에 모인 100만 가톨릭 신자들.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 제공

 

 

240년 전 평신도 신앙 공동체로 출발

 

올해 2024년 갑진(甲辰)년, 한국 천주교회사 240년을 돌아보며 마무리해본다.

 

지금부터 꼭 240년 전 갑진년에 이승훈은 연행사의 일원으로 북경에 방문했다가 ‘베드로’라는 세례명을 받고 돌아왔다. 그리고 한양 수표교 인근 이벽의 집에서 세례식을 거행하며 이른바 세례 공동체, 기도하는 공동체를 탄생시켰다.

 

한국 천주교회는 한문으로 쓰인 복음 말씀을 나누며 신앙 공동체를 형성한 이때를 시작이라고 보고 있다. 한국 교회의 이 특별한 기원을 두고 학계는 ‘선교사 없이 자발적으로 세워진 교회’ ‘문서 선교의 모범 사례’라는 평가를 하고 있다. 그러나 천주교를 받아들이도록 한 서적들, 곧 한문서학서(漢文西學書)는 선교사들이 만든 교리이고 복음이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평신도 신앙 공동체로 출발한 한국 교회는 참된 성사(聖事)가 사제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점을 깨닫고, 성직자 영입을 위해 북경의 선교사들에게 밀사를 보내 요청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당시 교황청의 입장이었던 동양의 제사 의식에 대한 금지 조처를 구체적으로 알게 됐고, 교회 규율을 지키고자 한 윤지충·권상연이 사형을 받고 순교했다.

 

그 후로 교회 공동체를 주도한 양반 출신 많은 신자가 겉으로는 신앙을 버리면서, 그 교리가 하층민까지 더욱 퍼져나갔다. 1795년 중국인 주문모 신부가 첫 선교사로 입국하면서 한국 교회는 참된 성사를 거행하게 됐고, 북경 주교를 통해 지속적인 연락을 취했다. 을묘실포사건(乙卯失捕事件), 즉 1795년 주문모 신부 체포 실패 사건을 통해 교회는 성직자가 있으나 더욱 조심스러운 지하 교회 활동을 통해 성장했다. 주문모 신부의 6년간의 성무활동을 통해 신자들은 4000명에서 1만여 명까지 증가했다.

 

그러나 황사영 「백서」에 의하면, 그 가운데 여인이 2/3이고, 하층민은 1/3이며, 양반은 천주교를 통해 받을 화(禍) 때문에 극히 드물게 입교하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1801년 신유박해 때 양반·중인 순교자들은 이미 온전히 복음을 받아들이고 죽음을 각오한 이들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밖에 평민과 노비들이 보여준 용맹한 신앙의 증거는 한국 교회의 초기 17년간의 활동이 얼마나 강렬하고 순수한 믿음에서 출발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 1981년 한국을 방문한 성녀 마더 데레사 수녀(오른쪽)를 안내하는 김수환 추기경.

 

 

열정적인 신자 노력으로 ‘조선대목구’ 설정

 

주문모 신부의 순교로 한국 교회는 다시 목자 없이 35년여간 교우촌을 이루며 ‘살아남은 자들의 신앙의 삶’을 이어갔다. 그들 가운데 한문에 능통한 몇몇 교우들이 북경에 편지를 보내 한국 교회의 실상을 전하고, 다시 선교사를 요청하기 시작했다. 살아남은 신자들은 찢긴 기도문을 통해 신앙생활을 이어갔고, 그나마 한글로 전해지는 「주교요지」 등의 교리서들이 신입 교우들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었다.

 

정하상·유진길·조신철 등 열정적인 신자들의 노력이 결실을 보아 마침내 교황청은 조선 선교지를 북경교구에서 분리해 ‘조선대목구’로 설정했다. 안타깝게도 조선 선교를 자원해 대목구 설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첫 대목구장 브뤼기에르 소(蘇) 주교는 입국 도중에 선종했다. 다행히 뒤이어 모방·샤스탕 신부와 앵베르 주교가 차례로 입국, 3명의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가 ‘조선대목구’ 시대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모방 신부는 입국하자마자 교우촌을 다니면서 성무활동을 하고, 조선인 사제 양성을 위해 3명의 소년을 선발해 준비시켰다. 1년 후 조선에 들어온 샤스탕 신부는 주로 남부지역 선교를 담당했다. 마지막으로 앵베르 주교가 들어옴으로써 한국 교회는 대목구장이 관할하는 보편 교회의 일원인 ‘대목구(代牧區) 시대’를 열었다. 교우 입장을 먼저 배려했던 앵베르 주교를 통해 한국 교회는 짧은 시간 안에 체계를 갖췄다. 현지인 사제 양성을 위해 뛰어난 회장을 주교가 직접 가르쳤으며 교우촌에서 사용하던 기도문을 수정해 다듬고, 교우촌 회장 제도를 체계화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너무나도 빨리 찾아온 1839년 전국적인 기해박해로 3명의 선교사는 물론, 주요 평신도 지도자들이 순교하게 됐다. 이들 순교자에 대한 기록을 중시했던 앵베르 주교의 기록을 시작으로 훗날 「기해일기」가 완성됨으로써, 이 가운데 70위 순교자와 1846년 병오박해 순교자 9위를 추가해 79위 복자가 탄생하는 중요한 기록이 됐다.

 

 

- 서울 여의도광장에 마련된 103위 시성식 제단.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한국천주교회 200주년 기념 교황 방한 공식화보」(가톨릭출판사)에서 발췌

 


- 미사를 집전하기 위해 명동대성당을 찾은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김수환 추기경과 함께 있다.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 제공

 

 

1984년 200주년·103위 시성 통해 급속 성장

 

한국인 첫 사제 김대건 신부의 수품과 ‘라파엘호’의 출항은 앞으로 바닷길을 통한 선교사 입국 시대를 열었다. 페레올 주교와 다블뤼 신부의 입국은 병인박해까지 지속적인 선교사 입국의 시작점이었다. 그 가운데 너무나도 빨리 체포돼 순교한 김대건 신부와 12년간 발로 뛰는 사목을 보여주었던 최양업 신부의 선종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병인박해 이후 개항기를 틈타 선교사들은 다시 진출했다. 그러나 엄격하게 이야기해 일제 강점기로 넘어가기 전까지 한국 천주교회는 온전한 신앙과 선교의 자유를 누리지 못했다. 일제 치하 교회는 정교분리(政敎分離) 원칙에 따라 출판과 문화사업을 통해 신자들에게 참된 복음을 전하고자 했다. 이후 갑작스럽게 맞은 해방과 함께 북쪽 공산정권의 탄압으로 결국 남한만의 교회로 남게 되었다.

 

1962년 교계제도 설정으로 한국 교회는 비로소 보편 교회의 당당한 부분 교회, 즉 교구(敎區)로 성장했다. 그리고 1984년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과 103위 시성을 통해 급속도로 발전하게 됐다. 양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교회를 향해 일부 학자들은 ‘교회의 중산층화’ 문제를 제기했다.

 

앞서 1970~80년대 한국 교회는 살림이 어려웠어도 가난한 이들을 우선적으로 배려해 소외계층에게 사회복지와 사회사업을 펼쳤다. 그 정신과 실천은 국가를 압도할 정도였다. 국가 민주화를 위한 교회의 노력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이전보다 부유해진 국가가 물량으로 복지를 대신하기 시작했다. 교회도 양적인 성장에만 치중하면서 국가를 압도했던 ‘복음의 영성’이 뒤처지게 되었다. 앞으로만 나가다 보니 근현대 교회사를 돌아보는 데 소홀한 면도 많았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교회는 더욱더 고령화 시대로 들어갔다. 한국 교회 시작 당시 20~30대 양반과 중인이 중심이었음을 생각해보면, 우리 교회는 다시 청년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 동시에 교회를 유지해주고 있는 어르신에 대한 배려도 잊지 말아야 한다.

 

갑진년에 시작된 우리 교회가 다음번 갑진년을 ‘값지게’ 맞이하기 위해서는 지금이 가장 중요한 시점이다. 두 ‘하느님의 종’, 브뤼기에르 주교의 ‘선교 열정’과 김수환 추기경의 ‘인간존중·생명존중’의 교회 영성이 우리 사회를 압도해야 할 것이다. 

 

[가톨릭평화신문, 2024년 10월 27일, 한국교회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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