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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칼럼: 영화 노라 없는 5일 - 떠나보내고서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129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4-11-19

[영화칼럼] 영화 ‘노라 없는 5일’ - 2008년 작, 감독 ‘마리아나 체닐로’


떠나보내고서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1833년, 영국 시인 아서 헨리 핼럼은 22살의 나이에 뇌출혈로 사망했습니다. 그러자 핼럼의 절친한 친구이자 동료 시인인 앨프리드 테니슨은 장장 17년에 걸쳐 그를 기리는 애가를 썼습니다. 1850년 《A.H.H.를 추모하며》라는 제목으로 익명 출간된 이 장편시에서 특히 27편에 나오는 구절이 인상적인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진실로 받아들이리, 무엇이 닥치든/ 나는 가장 슬플 때 깨달으니/ 사랑하다 헤어지는 아픔이 낫다네/ 한 번도 사랑한 적 없는 것보다

 

보통 우리는 사랑하는 이와 함께 살아가며 부대끼는 동안 온전히 알아차리지 못했거나 내 뜻대로 왜곡해서 바라보았던 나에 대한 상대방의 진심 혹은 상대방을 향한 나의 진심을 그 상대가 세상을 떠난 뒤에야 비로소 ‘사랑’으로 여길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맞을 때 후회와 미련의 감정이 가장 크게 밀려오나 봅니다. 그 후회와 미련이 ‘그래도 사랑하길 잘 했다.’는 고백으로 우리를 이끌어줍니다.

 

영화 〈노라 없는 5일〉은 주인공 호세(페르난도 루한 분)가, 자신의 집 건너편에 살고 있는 전 부인 ‘노라’가 오랫동안 앓고 있던 우울증으로 목숨을 끊은 이후 겪게 되는 5일을 보여줍니다. 노라의 장례식은 여러 부분에서 삐걱거립니다. 우선 유다교 신자인 노라의 장례를 유다식으로 치루어야 하는데 파스카 축제일과 안식일이 연달아 겹치는 바람에 당장 장례를 치를 수 없게 됩니다. 또 노라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만큼 이를 씻을 수 없는 죄로 여기는 유다교의 전통에 따라 유다식 공동묘지에 온전히 묻히는 것이 어렵게 됩니다. 무엇보다 노라를 대하는 전 남편 호세의 태도가 장례를 치르는 데 어려움으로 작용합니다. 호세는 노라가 자신에게 골탕 먹이려는 속셈으로 미리 파스카 축제일과 안식일을 염두에 두고, 장례를 온전히 치를 수 없도록 목숨 끊을 날을 정했다고 확신합니다. 심지어 호세는 자신의 지인이자 노라의 오랜 정신과 주치의가 노라와 불륜을 저질렀다는 증거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영화는 이렇게 노라의 장례를 억지로 치르는 호세가 결국 ‘자신을 향한 노라의 진심’과 ‘노라를 향한 자신의 진심’을 함께 깨닫는 과정을 그립니다.

 

위령 성월은 가까이 함께 지내며 자주 마주해서 익숙하게 다가오는 존재들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가다듬는 시기가 되어줍니다. 익숙한 존재들을 향한 그 익숙함이 상쇄되는 순간, 곧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경험하게 될 때 우리는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잊은 채 지내온 시간을 후회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차원에서 영화 〈노라 없는 5일〉은 익숙하게 다가오는 존재들이 이 세상에 부재하게 될 때를 미리 떠올리며, 그들을 이전보다 더욱 소중하게 품어주고자 하는 다짐으로 우리를 이끌어줍니다.

 

[2024년 11월 17일(나해) 연중 제33주일(세계 가난한 이의 날) 서울주보 7면, 구본석 사도요한 신부(국내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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