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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백) 2025년 9월 23일 (화)피에트렐치나의 성 비오 사제 기념일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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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상징 속 성인 읽기: 사도들의 상징 (5) 성 바오로

2423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5-09-04

[상징 속 성인 읽기] 사도들의 상징 (5) 성 바오로

 

 

교회에서 ‘사도’는 복음을 선포하는 사명을 수행하도록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선발되고 파견된 이를 말한다. 예수님의 주요 제자 12명이 그이이다. 또한 교회 초기에 예수님에 의해 직접 선발되지는 않았지만, 복음이 널리 선포되는 데 큰 역할을 한 이들도 교회는 사도라고 부른다. 성 바오로와 성 바르나바 같은 이들이다. 그런가 하면 부활하신 예수님을 처음으로 뵌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는 그분에게서 이 소식을 사도들에게 전하라는 사명을 받았기에 ‘사도들에게 파견된 사도’라고 일컬어지기도 한다. 이제 12사도에 포함되지 않았어도 사도라 불리는 이들의 상징에 대해서 알아본다.

 

 

칼 : 성 바오로 사도

 

성 바오로는 흔히 유다인이 아닌 사람들, 곧 이방인이라 불리던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파견된 사도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런 바오로가 애초에는 예수님을 적대시하며 그분을 믿고 따르는 이들을 세상 끝까지라도 찾아가서 없애겠다는 기세로 그리스도인들을 탄압하던 사람이었다.

 

바오로는 서기 5년 무렵에 오늘날의 튀르키예 중남부에 있는 타르수스에서 벤야민 지파의 후손으로 태어났다. 어려서 예루살렘으로 옮겨갔고, 당대의 유명한 랍비인 가말리엘 문하에서 율법을 공부했다(사도 22,3 참조). 본래는 ‘기도에 담아 청원 된’ 큰 사람이란 뜻에서 사울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으나, 그리스도인이 된 뒤로는 ‘작은, 낮은’이란 뜻의 바오로(그리스어로는 ‘파울로스’, 라틴어로는 파울루스)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다.

 

바오로는 열성적인 바리사이 중 한 사람으로 살았고, 예루살렘 일대에서 그리스도인들, 특히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유다인들을 박해하는 데 앞장섰다. 교회의 첫 순교자인 스테파노가 죽은 얼마 뒤에 바오로는 다마스쿠스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붙잡아서 예루살렘으로 끌고 오기 위해 길을 나섰다. 그리고 다마스쿠스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놀라운 체험을 했다. 환시 중에 그리스도를 뵙고 그분의 말씀을 들은 것이다.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박해하느냐? …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 이 일을 계기로 바오로는 회심하여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그러고는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구세주시라고 온 세상에 선포하기 시작했다(사도 9,1-22 참조).

 

이러한 선포 여정은 서기 40년대 중반부터 50년대까지 이어졌다. 바오로는 뜨거운 열정으로 당시 세상의 전부라 여겨지던 로마제국의 판도 안에서 아프리카 북부를 제외한 소아시아와 유럽의 주요 도시들을 다니며 복음을 선포했고, 발길 닿은 곳곳에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들을 세우고 관리했다. 숱한 여정들 가운데 크게는 3번에 걸쳐서 선교 여행을 계획하고 실행하며 20,000km에 이르는 거리를 두루 다녔다. 그러는 사이에 여러 차례 매질을 당하거나 돌로 맞았고, 타고 가던 배가 파선되는 일도 몇 차례 있었다. 그러한 고초를 마다하지 않은 바오로는 마침내 로마제국의 중심지인 로마에까지 이르렀다.

 

로마 시민권자로서 공정하게 황제에게 재판받겠다는 명목으로 로마에서 가택연금까지 당한 처지에서도 바오로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사도 28,30-31 참조). 그러던 중, 네로 황제가 통치하던 때인 서기 64년에서 68년 사이의 어느 시기에 참수형으로 순교했다. 그 죽음에 대해 명확하게 말해 주는 기록은 없지만, 교회 역사가 에우세비우스를 비롯한 몇몇 사람들은 네로 황제가 베드로 사도는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고, 바오로는 로마 시민권자라 십자형에 처할 수 없어서 칼로 목을 잘라 죽였다고 말한다.

 

그리고 전해 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바오로는 로마의 어느 나지막한 언덕배기에서 참수형을 받았다고 한다. 이때 바오로의 잘린 머리가 땅으로 떨어지면서 세 차례 튕겨 올랐는데, 머리가 땅에 닿은 세 지점에서는 각각 물이 솟아올랐다고 한다. 그리하여 이곳은 트레 폰타네(Tre Fontane, ‘3개의 샘 또는 분수’라는 뜻)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바오로는 자신이 세운 그리스도인 공동체들, 곧 교회를 이끌고 관리하기 위해 편지들을 써서 보내곤 했다. 이러한 편지 중 상당수가 신약성경에 포함되어 있다. 신약성경은 모두 27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한때는 이 가운데 14권이 바오로의 작품이라고 여겨지기도 했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7권이 바오로가 직접 구술한 것을 기록자가 받아 적은, 그러니까 바오로의 작품이라고 본다(로마서, 코린토 전서와 후서, 갈라티아서, 필리피서, 테살로니카 전서, 필레몬서). 나머지 7권 중 6권은 바오로의 작품이라고 하기엔 다소 논란의 여지가 있고, 히브리서 1권은 확실히 바오로의 작품이 아니라고 한다.

 

어쨌든 바오로가 지역의 교회들에게 써서 보낸 편지들은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과 그리스도인으로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그러니까 그리스도교 영성이 무엇인지를 말해 주는 최초의 기록이자 진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만큼, 바오로는 초기 그리스도교회에 엄청나게 큰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그 뒤로도 4~5세기의 교회학자 히포의 성 아우구스티노, 이단 운동을 벌인 2세기의 마르키온, 16세기에 종교개혁을 이끈 루터와 칼뱅, 20세기의 개신교 신학자 칼 바르트를 비롯한 수많은 이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한편, 바오로는 에페소서에서 그리스도인은 악마의 간계에 맞설 수 있도록 하느님의 무기로 완전히 무장해야 한다고 권고하며(에페 6,11-12 참조) “성령의 칼을 받아 쥐십시오. 성령의 칼은 하느님의 말씀입니다.”(에페 6,17)라고 말한다. 이에 긴 칼[劍]과 ‘성령의 칼’(Spiritus Gladius)이라는 라틴어 문구가 새겨진 책, 또는 X자 모양으로 교차된 2자루의 긴 칼은 성 바오로 사도의 상징이 되었다.

 

[성모님의 군단, 2025년 8월호, 이석규 베드로(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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