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도] 교회의 기도: 기도, 자비로운 아버지의 얼굴과 비참한 나의 실존이 마주하는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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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57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6-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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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기도] “기도, 자비로운 아버지의 얼굴과 비참한 나의 실존이 마주하는 자리”
지난 시간에는 창세기에 등장하는 아브라함의 기도를 묵상하며, 기도가 하느님의 마음속으로 들어가는 문임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오늘은 루카 복음 15장의 ‘되찾은 아들의 비유’를 통해 우리의 신앙생활, 곧 기도생활을 다시 바라보고자 합니다.
루카 복음 15장에 등장하는 이 비유는 두 아들을 둔 아버지의 이야기입니다. 그 가운데 작은 아들은 자신을 낳아 길러준 아버지에게 잔인한 태도를 보입니다.
“이 아들에게 아버지는 마치 죽은 사람과 같습니다. 더 잔인한 점은, 아버지의 존재가 그의 마음 안에서 부정당하고 있는데 이는 곧 아버지를 내적으로 살해한 것과 같습니다. 그에게는 오직 아버지의 유산만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큰 마음의 고통을 겪으면서 아들을 떠나보내야만 했습니다”(『오늘의 기도』,68).
하느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우리가 하느님께 자주 보이는 모습도 이와 닮아 있지 않을까요? 우리는 때때로 하느님보다 그분의 ‘선물’에 더 마음을 두고, 사랑보다 은총을 앞세우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작은 아들의 뜻대로 삶은 흘러가지 않습니다. 그는 가난과 비참함 속에서 자신의 처지를 직면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의 회개는 아직 완전하지 않습니다. 아버지께 드린 상처에 대해 깊이 성찰하지도, 양심의 가책에 사로잡히지도 않습니다. 그저 먹고 살기 위해, 더 이상 버틸 수 없기에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려 합니다.
그런데 바로 그 지점에서 놀라운 반전이 시작됩니다. “그가 아직도 멀리 떨어져 있을 때에 아버지가 그를 보고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달려가 아들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루카 15,20). 루카 복음사가는 아버지의 사랑을 우리의 상식과 계산을 넘어서는 행동으로 드러냅니다. 체면도, 조건도, 설명도 없이 먼저 달려 나가는 사랑입니다.
- 돌아온 탕자그 사랑은 흘러넘쳐 작은 아들의 굳어 있던 마음 안으로 스며들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복음은 우리의 시선을 다시 옮깁니다. 이미 집 안에 들어와 사랑 안에 머물고 있는 작은 아들에서, 잔치를 보고 분노하는 큰 아들로 초점을 이동시킵니다. 하인에게 사실을 전해 들은 큰 아들은 아버지에게 화를 냅니다. 그의 마음 역시 상처 입기 쉬운, 그래서 자비롭지 못한 연약함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아버지는 그런 큰 아들의 완고한 마음에도 다가가 밖으로 나와 그를 타이르고 위로합니다. 작은 아들뿐 아니라 큰 아들에게도 먼저 다가가시는 분, 그분이 바로 아버지이십니다.
어쩌면 우리의 신앙생활은 이 두 아들의 모습 사이를 오가며 반복되는 여정인지도 모릅니다. 어떤 날에는 하느님을 떠난 작은 아들처럼 살고, 또 어떤 날에는 공로와 의로움에 기대어 마음을 닫는 큰 아들처럼 살아갑니다.
그러나 참된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완전함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과 자비가, 부서지기 쉬운 우리의 연약함을 어루만지는 자리에서 시작됩니다. 기도란 우리가 먼저 하느님께 다가가는 행위이기 이전에, 우리를 향해 달려오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자리입니다. 그 순간, 하느님의 사랑의 강이 우리 마음 안으로 흘러들어옵니다. 위로자이신 성령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우리는 비로소 하느님으로 충만해집니다. 사순 시기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여전히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는 아버지의 자비를 기억하며, 그 사랑 안으로 한 걸음 더 돌아가는 은총의 시간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26년 3월 29일(가해) 주님 수난 성지 주일 가톨릭마산 4-5면, 이승언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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