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약] 다시 만난 신약 성경: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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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78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6-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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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난 신약 성경]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
“다시 만난” 신약 성경이라는 제목이 오늘따라 눈에 크게 들어옵니다.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에 대해 말하는 코린토 1서 8장이 30년 전 제가 신학교 편입 시험을 치를 때 영어 시험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지난주에 보았던 것처럼, 코린토 1서에서 공동체의 일치는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바오로 사도는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을 먹는 문제를 말합니다. 우상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리낌없이 그 제물도 먹을 수 있지만, 믿음이 약한 사람에게는 마음에 걸리는 일이니 그를 위해서는 먹지 않는 편이 낫다는 이야기입니다. 30년 전 이 본문을 읽을 때는 실제로 경험해 본 일이 떠오르지 않았는데, 이제 “다시” 만나고 보니 두 가지 사례가 떠오릅니다.
첫 번째 사례는 무당집에서 수녀원에 과일을 선물로 보낸 일이었습니다. 아주 좋은 과일이었지만, 그 과일은 사도직에서 만나는 아이들에게는 주지 않고 공동체 안에서만 먹었습니다.
두 번째 사례는 어떤 행사에서 떡을 하는데, 신부님이 일부러 팥시루떡은 하지 말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귀신을 쫓기 위해 떡을 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기 위해서였지요.
사실 그냥 먹어도 아무 문제 없습니다. 그러나 바오로 사도는 “다만 여러분의 이 자유가 믿음이 약한 이들에게 장애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1코린 8,9)라고 말합니다. 내가 믿는 바가 옳다고 해서 다른 사람을 죄짓게 하거나 공동체를 분열시키면서 내 소신을 관철해도 되는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바오로 사도에게 공동체의 일치가 얼마나 중요했기에 자신이 옳다고 알고 있는 것까지도 양보할 수 있다고 했던 것일까요? “지식은 교만하게 하고 사랑은 성장하게 합니다”(1코린 8,1). 로마서에서도 바오로 사도는 “믿음이 강한 우리는 믿음이 나약한 이들의 약점을 그대로 받아 주어야 하고, 자기 좋을 대로 해서는 안 됩니다.”(로마 15,1)라고 말했습니다. 지난주에 읽었던 1장의 말씀들도 생각납니다. 하느님은 세상의 지혜를 통해서가 아니라 십자가의 어리석음을 통해서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내가 정말 옳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결국 나를 내세우게 되고, 내가 남보다 낫다고 여기게 되고, 공동체는 그런 사람들 때문에 분열됩니다. 그렇게 분열된 공동체에는 중심에 그리스도께서 계시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진리 자체이셨지만 그 진리를 강요하지 않으셨고, 죽임을 당하는 어리석음으로 세상을 구원하셨습니다. 다시 한번, “하느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더 지혜롭고 하느님의 약함이 사람보다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1코린 1,25).
서간의 나머지 부분은 다음 주에 읽겠지만, 코린토 1서 10장에서도 바오로 사도는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을 먹는 문제를 이야기하면서 “유다인에게도 그리스인에게도 하느님의 교회에도 방해를 놓는 자가 되지 마십시오.”(1코린 10,32)라고 말합니다. 내가 지식을 갖고 있고 옳은 주장을 하는 것이 교회에 방해를 일으키고 있지 않은지 돌아봅시다. 오늘날의 세상은 너무 똑똑합니다. 이 똑똑한 세상에 필요한 것은 십자가의 어리석음입니다.
* 안소근 실비아 수녀 : 성도미니코 선교수녀회, 저서 「이사야서」 「이사야서 쉽게 읽기」 「예레미야서 쉽게 읽기」 「구약의 역사설화」 등.
[2026년 8월 30일(가해) 연중 제22주일 의정부주보 2면, 안소근 실비아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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