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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ㅣ성모신심
교본 다시 읽기: 십자가의 표지는 희망의 징표

1026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6-09-02

[교본 다시 읽기] 십자가의 표지는 희망의 징표

 

 

우리는 레지오 활동에 있어 오해받고 좌절할 때 교본 제39장(“레지오 사도직의 주안점”)의 24번(“십자가의 표지는 희망의 징표”) 내용을 기억해야 한다. “주님의 일에는 언제나 주님의 고유한 표지가 남아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 표지는 바로 십자가의 표지이다. 이 표지가 없다면, 그 일이 과연 하느님의 일인지 의심할 수밖에 없으며, 참된 열매도 기대하기 어렵다.”(교본 453쪽 새 번역)

 

성모 마리아는 아기 예수님을 성전에 봉헌할 때 이러한 십자가의 표지를 희망의 징표로서 받아들인다(루카 2,22-39 참조). 마리아와 요셉은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성전에서 주님께 봉헌한다. 그런데 의로운 노인 시메온은 그들에게 말한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루카 2,34-35)

 

이 복음 말씀을 묵상하며, 우리는 ‘하느님께 봉헌된 자’가 겪어야 할 십자가의 고통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된다. 이와 관련해 필자의 생생한 체험이 하나 있다. 오래전 필자가 신학생 때의 일이다. 필자와 동료 신학생들은 여름방학 중 사회적으로 소외된 이들의 현장에 가서 2주간 직접 살며 체험하는 프로그램을 계획했다. 농촌과 탄광 지대 등 여러 장소를 섭외하고 나서 그룹을 나누어 가게 되었는데, 내가 다른 몇몇과 함께 선택한 곳은 서울의 난지도였다.

 

거의 40년이 흐르며 탈바꿈했지만, 나는 당시의 난지도 모습을 잊을 수 없다. 현재의 상암동 높은 공원이 세워진 그곳이다. 당시 서울의 모든 쓰레기가 모여져 버려지는 장소였던 난지도에는 상당수 주민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쌓여 있는 쓰레기 더미 사이에서 구역을 나누어 담당하며, 재활용 물품들을 수거해 판매하며 생계를 유지하였다. 요즘 일반화된 쓰레기 분리수거를 그때에는 그분들이 한꺼번에 모아서 대신 담당하고 있던 셈이다. 주민 중 많은 분은 실패와 파산을 거듭한 끝에 난지도로 들어오게 되었고, 어떻게든 열심히 일해서 기반을 마련한 후 다시 난지도를 빠져나가는 것이 그들의 목표였다.

 

우리는 밤이면 그곳 어린이 공부방에서 잠을 자고, 낮에는 거기에 자녀들을 보내는 각 가정에 배당되어 종일 일하게 되었다. 나 역시 어느 한 가정과 함께 그들이 맡은 구역의 쓰레기 더미에서 재활용 물품을 수집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필자가 일하는 구역에는 어느 유흥가에서 나오는 음식 쓰레기들이 버려졌다. 한여름의 태양 아래 종일 허리를 굽히고, 며칠 묵어 썩어버린 음식 쓰레기 더미를 뒤지며 나무젓가락이나 냅킨, 종이컵 등을 수거하는 일은 참 힘들었다.

 

쓰레기를 가득 싣고 온 트럭이 와서 언덕 비탈에 이를 쏟아놓고 가버리면, 그때부터 쓰레기를 ‘파는’ 작업이 시작된다. 쓰레기 더미를 뒤져서 어느 정도 재활용품 수거 작업이 끝나고 나면, 이번에는 흙을 실은 트럭이 와서 그 위에 흙더미를 쏟아부어 쓰레기를 덮어버린다. 이런 작업을 반복하다 보니, 쓰레기 매립 장소는 마치 하나의 산처럼 점점 높아져만 갔다. 그리고 쓰레기 썩는 열기로 곳곳에서 가스가 새어 나왔다. 가장 견디기 어려웠던 것은, 무더운 날씨에 푹푹 썩고 있던 음식 쓰레기가 담긴 봉투를 뜯거나 뒤적일 때마다 맡아야만 했던 지독한 악취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점차 쓰레기를 제법 잘 ‘파는’ 일꾼처럼 되어갔다. 쓰레기 더미를 뒤지다가 점심 식사를 위해서 자리를 펴면, 파리떼가 몰려들었다. 그들을 피하거나 쫓아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가져온 밥과 반찬을 꺼내자마자 거기에 빠져드는 파리들을 건져내며 식사하는 것도 어느새 아무렇지도 않은 일처럼 되어버렸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고 정해진 시간이 되어 우리는 그곳을 떠나야 했다. 떠나기 전날 밤, 함께 일하던 가정의 부부는 자신들의 작고 허름한 임시 주택에 필자를 초대하여 이별의 술잔을 함께 기울이게 되었다. 그날 밤 그들이 필자를 쳐다보던 눈빛을 잊을 수 없다. 정이 들어 헤어지기 아쉽다는 섭섭함으로 그들은 눈물지었다. 그들은 그곳의 일이 아무리 고되고 힘들어도 그것은 별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어려운 일을 대신한다는 자부심도 있다고 했다. 

 

정작 그들을 가장 고통스럽게 만들었던 것은 다른 사람들의 배척이었다. 그곳에 살면서 몸에 깊이 밴 쓰레기 냄새는, 거기를 완전히 떠나지 않는 한 어떻게 해도 없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면 몸에서 냄새가 난다며 놀림과 따돌림을 받았다. 명절 때 목욕을 깨끗이 하고 새 옷을 사서 입고 가도, 친척들이 모인 곳에 가면 몸에 냄새가 배어 있다고 불평하며 눈치를 준다고 했다. 나는 그들의 말을 들으며 함께 눈물지었다. 그들은 이 사회의 쓰레기를 치우는, 누구도 하기 싫어하는 일을 대신하는데, 정작 그들 자신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배척받았다. 나는 그들이 이 세상의 십자가를 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란 생각을 했다.

 

다음날, 나는 동료들과 더불어 그곳을 나왔다. 깨끗이 몸을 씻고 옷을 빨아 말려 입고서, 우리는 거기에서 걸어 나와 혜화동 신학교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오랜만에 다시 보는 거리며 모든 게 새롭게 보였다. 그곳에서의 체험을 함께 나누며 이야기하던 우리가 문득 발견한 것은, 같은 버스 안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우리를 쳐다보는 눈길이었다. 어떤 이는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고, 어떤 이는 손으로 코를 막은 채 우리를 흘겨보고 있었다. 우리의 몸에는 이미 난지도의 냄새가 깊이 배어 있음을 그제야 깨닫고, 우리는 서둘러 버스에서 내려야만 했다.

 

십자가는 무엇인가? 이 세상에서 반드시 누군가는 해야만 하는데 누구도 하기 싫어하는 일을 하는 게 십자가를 선택한 이의 몫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칭찬이나 보상을 받는 것도 아니다. 난지도의 주민들처럼, 오히려 다른 사람에게 배척받고 멸시당하며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는 게 십자가에 봉헌된 이의 운명이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악으로 인한 이 세상의 쓰레기를 치우고 정화하시면서도, 사람들로부터 조롱과 멸시와 반대를 받는 십자가의 삶에 당신 자신을 봉헌하셨다.

 

성전에서의 아기 예수님 봉헌 사건은, 십자가를 통해 이루어지는 헌신의 의미를 드러낸다. 그때, 마리아 역시 예수님과 더불어 같은 운명에 자신을 봉헌한다. 예수님과 함께 걸어가야 할 그 십자가의 길이 앞으로 얼마나 큰 고통을 선사할지는 아직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릴 것’이라는 두려운 예언까지도 주어진다. 하지만 마리아는 변함없이 그 길을 묵묵히 걸어간다. 마리아는 스스로 십자가를 선택하신 ‘그리스도의 어머니’이시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 길을 충실히 걸어가신 마리아께서는 이제 십자가의 표지가 곧 희망의 징표임을 우리에게 알려주시며, 우리를 십자가의 길로 초대하신다. 나는 레지오 단원으로서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

 

[성모님의 군단, 2026년 8월호, 박준양 세례자 요한 신부(가톨릭대학교 성의교정 교수, 전 서울 무염시태 세나뚜스 영적 지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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