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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교리
교회상식 더하기35: 시복시성에 가경자 단계는 없다?

7589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6-09-07

[교회상식 더하기] (35) 시복시성에 가경자 단계는 없다?


영웅적 성덕이나 순교 공식 인정돼야만 칭호 부여

 

 

-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의 초상. 순교하지 않고 ‘증거자’로서 시복 절차에 오른 하느님의 종은 영웅적 성덕이 인정되면 가경자라고 호칭한다. 배론성지 제공

 

 

교회사에 관심을 둔 분이라면 ‘가경자(可敬者)’라는 말을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지금 한국교회가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을 부르는 호칭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실 오늘날 시복시성 절차에는 ‘가경자가 되는 별도의 단계’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가요?

 

가경자는 ‘공경할 만한 (사람)’이라는 뜻의 라틴어 베네라빌리스(venerabilis)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과거에는 시복 안건이 교황청에 접수된 하느님의 종을 가경자라고 부르는 관행이 있었지만, 이는 현재의 공식 절차와는 다른 방식이었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시복 안건이 교황청에 올라갔다고 해서 하느님의 종을 가경자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종 신상원 보니파시오 사우어 아빠스와 동료 37위도, 하느님의 종 이벽 요한 세례자와 132위도, 하느님의 종 홍용호 프란치스코 보르지아 주교와 동료 80위도 교황청 시성부에 시복 안건이 올라갔지만 여전히 하느님의 종이라는 호칭만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가경자 호칭의 사용이 변화한 것은 1913년 성 비오 10세 교황이 가경자 칭호 사용에 관한 규정을 변경하면서부터입니다.

 

당시에는 가경자라고 부르는 관행 때문에 신자들이 마치 교회가 그 하느님의 종의 성덕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공경을 허락한 것처럼 오해하는 일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에 성 비오 10세 교황은 가경자 칭호에 관한 교령을 통해 “사도좌가 영웅적 성덕 또는 순교에 관한 교령을 발표한 이후가 아니면 하느님의 종들에게 가경자라는 칭호를 부여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습니다. 

 

즉, 하느님의 종이 교황청에 시복 안건으로 올라갔다고 해서 가경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영웅적 성덕이나 순교가 공식적으로 인정된 뒤에야 가경자라는 칭호를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1983년에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교황령 「완덕의 천상 스승」을 통해 시복시성 절차를 전면 개편했습니다. 이때 과거처럼 ‘가경자가 되는 절차’는 사라지고, 영웅적 성덕 또는 순교를 인정하는 교령 발표 여부가 가경자 칭호 사용의 기준이 됐습니다.

 

예를 들어 순교자의 경우 순교 사실이 인정되면 시복되기 때문에 가경자라고 불릴 별도의 과정 없이 바로 복자가 됩니다.

 

다만 순교하지 않고 영웅적 성덕으로 시복 절차를 밟는 ‘증거자’의 경우에는 여전히 가경자라는 칭호를 사용합니다. 영웅적 성덕이 인정되면 그때부터 하느님의 종을 가경자라고 부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최양업 신부님도 2016년 영웅적 성덕을 인정하는 교령이 발표되기 전까지는 하느님의 종으로 불렸습니다.

 

시복재판을 통해 영웅적 성덕이 인정된 가경자는 기적 심사를 통해 복자로 선포됩니다. 가경자의 전구를 통해 일어난 기적이 의학적·신학적 심사를 거쳐 최종적으로 인정되면 시복이 이뤄집니다.

 

올해 3월 26일 교황청 시성부 의학자문위원회 심사에서 최양업 신부님의 전구로 이뤄진 치유 사례가 기적적 치유임이 인정됐습니다. 이는 기적 심사의 첫 단계를 통과한 것입니다. 현재 한국의 성인과 복자들은 모두 순교자였기 때문에 한국교회 시복시성 역사에서 교황청의 기적 심사 통과는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남은 심사들도 무사히 통과돼 최양업 신부님을 ‘복자’로 부를 수 있는 날이 빨리 다가오길 기도해 봅니다.

 

[가톨릭신문, 2026년 9월 6일, 이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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