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지] 순교지: 평양 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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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3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6-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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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지] 평양 감영
평안남도 평양(平壤)은 병인박해(丙寅迫害, 1866년) 때 성 유정률(劉正律, 베드로)이 신앙을 증거하고 순교한 땅이다. 이 성지는 공주 감영이나 황새바위와는 달리 순례자가 찾아갈 수 없는 곳으로, 오늘까지 발길이 닿지 못한 ‘침묵의 성지’로 남아 있다.
평양은 예로부터 대동강(大同江)과 평양성을 끼고 서북의 물산과 사람이 모여드는 큰 고을이었다. 조선시대에는 평안도 관찰사, 곧 평안 감사가 이곳에 감영을 두고 도내의 행정과 군사, 형옥(刑獄)을 총괄하였다.
그러나 관서 지방은 한국 교회의 초기 역사에서 내포(內浦)나 전라도처럼 큰 교우촌이 형성된 곳은 아니었다. 서울에서 멀고 왕래가 드물었던 데다, 박해를 피해 숨어든 교우촌이 주로 충청과 전라, 경상의 산간에 자리 잡았던 까닭이다. 그럼에도 평양 인근에 신앙의 불씨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대동군 율리면의 논재[沓峴里]와 이웃 마을 고둔리(古屯里)에는 작은 교우촌과 공소가 있었다.
병인박해가 일어난 1866년 고둔리 공소에 포졸들이 들이닥치며 회장 유정률과 신자 몇 명이 붙잡혀 평양 감영으로 압송되었다. 유정률은 체포된 이튿날인 2월 17일 곤장 300여 대를 맞고 순교하였다. 그가 순교한 뒤 대동강 변 영명사(永明寺)에는 사학(邪學)을 물리친 일을 기리는 ‘척사기적비(斥邪紀蹟碑)’가 세워졌다.
박해 시대가 끝나고 평양에 다시 신앙 공동체가 서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1881년부터 김기호(金起浩, 요한) 회장이 평안도와 황해도를 돌며 전교하여 새로운 공동체들이 생겨났고, 1895년 가을에는 파리외방전교회의 르 장드르(Le Gendre, 崔昌根) 신부가 평양을 찾아 신자의 집에서 미사를 봉헌하였다. 이듬해 봄 신자들이 돈을 모아 기와집을 사들여 평양 밖 평천리에 평양성당을 세웠고 1898년에는 평양시 관후리(館後里)로 자리를 옮겼다.
이후 1927년 평안도 지역이 경성대목구에서 갈라져 평양지목구로 설정되고 그 사목이 미국 메리놀외방전교회에 위임되었다. 초대 지목구장인 번(Byrne, 方溢恩) 신부는 지목구의 본부를 평양 외곽 서포(西浦)에 두었고 1931년 이곳에 지목구청이 세워지면서 평양성당과 지목구청이 따로 자리하게 되었다. 1934년에 평양성당은 ‘관후리성당(館後里聖堂)’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1939년 평양지목구는 대목구로 승격되었고 1943년 홍용호(洪龍浩, 프란치스코 보르지아) 신부가 대목구장에 임명되어 이듬해 주교로 수품되었다. 이로써 관후리성당은 주교좌성당이 되었으며, 이후 평양의 교세는 지속적으로 확장되었다. 그러나 교세가 가장 번성했던 그 무렵이 곧 시련의 시작이었다. 1944년 2월 일제가 주교좌성당과 부속 건물을 징발하자 대목구는 임시 성당을 마련해 옮겨야 했다. 광복 후 1946년 건물을 되찾은 대목구는 새 성당 신축에 나섰으나, 준공을 거의 앞둔 1949년 성전은 끝내 축성을 보지 못한 채 공산 정권에 몰수되었다.
1949년 5월 홍용호 주교는 서포의 수녀원을 떠나 평양으로 오던 길에 강제로 연행되었고, 이후 주교좌성당의 주임 김필현(金泌現, 루도비코) 신부와 보좌 서운석(徐雲錫, 보니파시오) 신부도 차례로 끌려가면서 성당은 신부와 신자가 없는 빈 공간이 되었다. 오늘날 관후리 성당이 서 있던 장대재 언덕에는 평양학생소년궁전이 들어서 있으며, 평양교구는 서울대교구장이 교구장 서리를 겸하고 있다.
[교회와 역사, 2026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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