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 장엄미사(Missa Solemnis) D-dur op.123 1818년 여름, 베토벤의 친구이자 후원자, 또한 가장 고명한 제자이기도 하였던 루돌프대공(Archduke Rudolf)이 오르미츠(Olm tz) 교구의 대주교가 된다는 소식을들은 베토벤은 대공의 취임 미사에서 연주할 미사곡을 쓰겠다는 계획을 굳히게 된다. 그의 취임은 1820년 3월 9일로 예정되어 있었다. 베토벤이 이 미사곡의 스케치를 시작한 것은 1819년 부터였다.
그러나 작곡의 진척은 의외로 늦어졌고, 결과적으로 베토벤은 이 작품의 완성을 위해서 무려 5년간이라는 긴 세윌을 씨름해야만 했다. 1819년 8월, 안톤 쉰들러(Anton Schindler,당시의 빈 궁정악장)와 그의 친구 요한 호르자르카는 뮈들링에 있는 베토벤을 방문하였다. "그때가 오후 4시였다. 우리는 집에 들어서자마자 이미 아침나절에 하인들이 도망가 버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두 하녀가 베토벤을 위해서 음식을 준비했지만 베토벤이 곧 식사를 들지 않는 바람에 그만 둘은 잠들고 말았고, 뒤늦게 식사를 하려던 베토벤이 음식 맛이 형편없다 고해서 심한 말다툼이 있었던 것이다
(음식이란 제 때에 들어야 제 맛이 있는 법인데).
우리는 출입문을 잠근 거실에서 베토벤이 크레도(Credo)의 푸가(Fuga)절을 노래하고 외치고 박자를 맞추는 소리를 들었다. 이 무서울 정도의 소리에 장시간 귀를 기울인 다음 그 자리를 떠나려 했을 때, 문이 열렸다.
베토벤이 공포가 날 정도의 험하게 일그러진 얼굴로 우리들 앞에 섰다. 그는 우리들이 엿듣고 있었다는 것이 불쾌했다는 듯 얼굴을 붉혔다. 그러나 그는 곧 이날의 사건에 관해 침착한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큰 소동이었습니다. 모두들 도망갔지요. 나는 어제 낮부터 아무 것도 먹지 못했으니까요". 나는 그를 달래고 옷을 갈아 입혔다. 호르자르카는 배가 극도로 배고픈 거장에게 뭔가 요리를 대접하기 위해 식당으로 갔다. 그는 대위법이나 그의 영원한 음악적 숙적들과 치열한 정신적 전투를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이토록 어려운 상황 아래서 저 위대한 장엄 미사는 쓰여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1830년이래 지금까지 수많은 전례에서 연주되어 왔으며, 이를 통해서 그 어느 미사곡보다도 훌륭한 전례음악이라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실제로 미사 전례에서 이 작품이 얼마나 놀라울 만큼 일치되고 있는가 하는 것은, 마지막 악장이 그의 세속적인 음악과는 달리 전혀 다른 방법으로 종결되고 있다는 사실(주지하는바 처럼 베토벤의 마지막 악장의 코다는 예를 찾기 어려울 만큼 역동적이지 않은가?),
싼뚜스 악장에서 <호산나>부분이 갑자기 끝나고 고요한 전주곡이 그것에 계속되고 있는 사실, <베네딕뚜스>가 그토록 황홀하게 노래되고 있는 사실들이 입증 하고 있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베토벤이 얼마나 전례와 음악의 일치를 위해서 고심하였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