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일)
(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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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 강림 대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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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2024-05-18 ㅣ No.172527

전임 사목회장님들과의 만남이 있었습니다. 가장 연장이신 분이 87세 이었습니다. 가장 젊으신 분이 77세 이었습니다. 77세 회장님이 막내로서 역할을 다 해 주었습니다. 음식도 주문하고, 술도 주문해 주었습니다. 77세면 어디 가서도 대접을 받을 수 있는 나이인데, 그날은 형님들을 위해서 수고를 많이 해 주었습니다. 저는 전임 회장님들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갔습니다. 경험과 연륜이 높으신 회장님들은 제게 좋은 말씀을 많이 해 주었습니다. 경청의 자리였지만, 어찌 보면 제가 면접을 보는 것도 같았습니다. 회장님들은 제게 몇 가지 질문을 해 주었습니다. 신부님이 가지고 있는 비전은 무엇입니까? 저는 단기, 중기, 장기의 플랜을 이야기 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저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질문도 있었습니다. ‘신부님은 이곳에 희망이 있다고 보십니까?’ 저는 희망이 없는 것을 희망하는 것이 신앙인의 길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람만이 희망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사람만이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서울대교구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 좋겠다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저는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고 말하였습니다. 서울대교구와 관계가 좋기 때문에 서울대교구에서 멋진 사제들을 보내 주셨다고 이야기하였습니다. 저와 부주임 신부님은 서울대교구에서 최상급의 사제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본당 교우들의 전체 세대수를 파악하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우선 구역미사를 함께 하고, 다음에는 가정 방문을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오래 전부터 성당을 지켜 오신 분들에게 새로 온 신자들이 조금을 낯설게 느껴지는 것 같았습니다. 성지순례도 가고, 본당 체육대회도 하고, 전 신자 여름 캠프도 가고, 송년모임도 하면서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만들자고 하였습니다. 본당 신자들의 주소록을 만들자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저는 그 의견에 동의했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본당 사제로 있을 때는 신자수첩을 만들었습니다. 신자수쳡에는 본당의 사목방침을 수록했습니다. 본당의 조직도를 넣었습니다. 기도문을 수록하였습니다. 본당 신자들이 운영하는 사업체를 넣었습니다. 전임 사목회장님들과 만나면서 느낀 점이 있습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 한 것이었습니다. 87세의 연세에도 교회를 사랑하는 열정은 20대의 청년과 같았습니다.

 

제게 성령강림은 하늘에서 성령의 은사가 내려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게 성령강림은 전임 사목회장님들과의 만남이었습니다. 저는 그분들에게서 성령 7은의 은사를 볼 수 있었습니다. 이제 60을 갓 넘은 사제에 대한 존중과 애정이 있었습니다. 온 몸과 마음을 다해서 지켜왔던 본당에 대한 열정과 사랑이 있었습니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을 찾으려는 희망과 믿음을 보았습니다. 오랜 이민 생활에서 축적된 삶의 지혜와 용기를 보았습니다. 77세 막내 회장님께서 이런 모임을 자주 갖자고 하였습니다. 저는 동감한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음에는 부부동반으로 만나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 시간은 굳이 저녁시간이 아니어도 좋다고 하였습니다. 예배의 장소가 굳이 예루살렘이 아니어도 되듯이, 만남의 시간이 굳이 저녁이 아니어도 좋다고 하였습니다. 중요한 것은 만남의 장소와 시간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만남을 통해서 소통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성령강림의 진정한 의미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소통하는 것입니다. 성부이신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성자이신 예수님을 보내 주셨습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죽으셨지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진리의 협조자이신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이렇게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모든 것을 기꺼이 내어 주셨습니다.

 

성령강림의 커다란 의미는 하나 됨이라 생각합니다. 분열과 불신의 벽을 허무는 것, 신분과 지역의 벽을 허무는 것, 화합과 일치를 이루는 것, 바로 이것이 성령 강림의 진정한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사도행전은 이것을 담담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도들이 모여서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께서 임하셨습니다. 그곳에 모인 많은 사람들은 각자 자신들의 언어로 사도들의 이야기를 이해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들의 상식으로는 이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함께 하셨기 때문에 그런 놀라운 일이 가능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평화를 주시며, 성령을 주셨습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주님은 자신을 배반한 제자들을 용서하셨고, 평화를 빌어주셨습니다. 자신을 십자가에 매단 사람들을 용서해 달라고 청하였습니다. 오늘 성령 강림 대축일을 지내면서 나는 나의 이웃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돌아보았으면 합니다. 그 관계가 분노와 미움, 욕심과 질투입니까? 아니면 평화와 기쁨, 용서와 사랑입니까?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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