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9일 (일)
(홍) 성령 강림 대축일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성령을 받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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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영억 신부님_사랑에는 수고로움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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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2024-05-05 ㅣ No.172145

 

오래전 일입니다. 노인 요양원에 앞을 보지 못하시는 할아버지 한 분이 계셨는데 앞을 못 보시니 거동이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자주 방 한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계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다리가 없으셔서 휠체어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할아버지께서 그 방에 오시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날부터 그 방은 빛나기 시작했습니다. 앞을 보지 못하시는 할아버지가 휠체어를 밀고 외부 출입을 시작한 것입니다. 하반신이 없는 할아버지는 앞을 보지 못하는 할아버지를 통해 혼자서 휠체어를 굴리기 힘들어하는 불편을 이겨내게 되었고, 앞을 보지 못하는 할아버지는 맑은 공기를 마시며 적당한 운동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서로를 위한 소중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일생을 ‘사랑하며 산다’는 것은 말 같이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먼저 사랑하신 예수님이 계시기에 예수님에게서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아니 얻어야 합니다. 독서의 말씀대로 ‘하느님께서 당신의 외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살게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 외아들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은 어떤 모습일까요? 예수님은“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몸소 씻어주시며 끝까지 사랑을 보여주셨고, 당신의 친구로 사랑하셨습니다. 마침내 우리를 위한 사랑 때문에 십자가의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이셨습니다. 바로 그 사랑으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모두를 내어주는 사랑입니다. 다른 사람을 위한 헌신과 희생의 삶은 주님을 닮은 사랑으로 수고로움이 없습니다. 그리고 조금도 피로하지 않고 또 남을 피로하게 만들지도 않습니다. 만일 수고를 느끼고 혹 ‘내가 이만큼 했으니, 너도 이 정도는 해야 한다.’는 생각을 지닌다면 아직 주님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사랑이 어떻게 생겼을까요? “사랑은 남을 돕는 손을 가졌으며,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재빨리 달려가는 발을 가졌으며, 곤란에 처한 사람을 알아보는 눈을 가졌으며, 사람들의 한숨과 슬픔을 경청하는 귀를 가졌습니다”(성 아우구스티노). 사랑은 희생을 전제합니다. 이기적인 마음이 있는 곳에는 진정한 사랑이 없습니다. 작은 배려와 희생이 있는 곳에 하느님이 계십니다. 말로나 혀로 사랑하지 않고 행동으로 진리 안에서 사랑함으로써 사랑이신 하느님을 만날 수 있길 희망합니다. 더 큰 사랑을 담아 사랑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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