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9일 (일)
(홍) 성령 강림 대축일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성령을 받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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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진 신부님_<내가 너희를 사랑하는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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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2024-05-05 ㅣ No.172144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것처럼,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무를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 15,9-13).”

 

 

 

1) 이 말씀을 뜻에 따라 다시 정리하면, “기쁨이 충만하기를

 

바란다면(구원과 생명을 얻기를 바란다면)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내 사랑 안에 머무르는 방법은 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다. ‘서로 사랑하여라.’가 나의 계명이다.”입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이라는 말씀과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라는 말씀은

 

‘사랑하는 방법’에 관한 말씀이고, ‘기쁨의 충만’은 ‘사랑

 

실천을 해야 하는 이유’에 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의도를 생각해서, “사랑하신 것처럼”은

 

“사랑하시는 것처럼”으로, “사랑하였다.”는 “사랑하고 있다.”로,

 

또 “사랑한 것처럼”은 “사랑하는 것처럼”으로 조금 바꾸면

 

뜻이 더욱 분명해집니다.

 

하느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사랑은 언제나 항상

 

‘현재 진행 중인 사랑’입니다.

 

즉 ‘지금 이 순간에 하시는 일’입니다.

 

번역문의 표현만 보면 ‘과거의 일’로 오해하기가 쉬운데,

 

하느님과 예수님의 사랑은 영원히 ‘현재의 일’입니다.>

 

 

 

2) 요한 사도는 예수님 말씀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당신 목숨을 내놓으신 그 사실로

 

우리는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아야 합니다. 누구든지 세상

 

재물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기 형제가 궁핍한 것을 보고

 

그에게 마음을 닫아 버리면, 하느님 사랑이 어떻게 그 사람

 

안에 머무를 수 있겠습니까? 자녀 여러분, 말과 혀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진리 안에서 사랑합시다(1요한 3,16-18).”

 

요한 사도는 “궁핍한 형제에게 재물을 나누어 주는 것”을,

 

형제를 위해서 목숨을 내놓는 일의

 

구체적인 예로 들고 있습니다.

 

사람들 가운데에는 “재물을 나누어 주는 것이 목숨을 내놓는

 

것과 같을 수가 있나?” 라고 물을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사랑은 주는 쪽이 아니라 받는 쪽이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죽을 상황에 있는 사람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 주는 것은, 받는 쪽의 입장에서는 목숨을 나누어 받는

 

것과 같습니다.

 

 

 

3) 사실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라는 예수님 말씀은, 형제들(친구들, 이웃들)을 위해서

 

죽으라는 뜻은 아니고, 목숨을 나누어 주듯이

 

‘모든 것’을 나누어 주라는 뜻입니다.

 

그 ‘나눔’은 모두가 함께 살기 위한 일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과 죽음은 분명히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당신의 목숨을 내놓으신 ‘큰 사랑’인데, 예수님 혼자서

 

죽고 끝나버린 일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의 십자가가 예수님 혼자만의

 

죽음으로 끝나버린 일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생명력을

 

나누어 준 일이고, 예수님과 모든 사람이 다 함께 살기 위한

 

일이었음을 나타내는 일입니다.

 

다시 정리하면, 목숨을 내놓는 큰 사랑은,

 

함께 살기 위해서 생명력을 나누어 주는 일입니다.

 

사랑을 실천하는 그 사람 혼자만의 희생으로

 

끝나버리는 일이 아니라......

 

 

 

4) 요한 사도의 “말과 혀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진리 안에서 사랑합시다.” 라는 말은, “말로만 사랑한다고 하지

 

말고, 진실하게 행동으로 실천하는 사랑을 하자.” 라는 뜻인데,

 

이 말은 ‘야고보서 2장’에 있는 다음 말에 곧바로 연결됩니다.

 

“나의 형제 여러분, 누가 믿음이 있다고 말하면서 실천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러한 믿음이 그 사람을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어떤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그날 먹을

 

양식조차 없는데, 여러분 가운데 누가 그들의 몸에 필요한

 

것은 주지 않으면서, ‘평안히 가서 몸을 따뜻이 녹이고 배불리

 

먹으시오.’ 하고 말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믿음에 실천이 없으면 그러한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야고 2,14-17).”

 

<아파서 누워 있는 사람에게, “그렇게 아프면 병원에 가지

 

왜 그렇게 누워만 있는가?” 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정말로 사랑한다면, 아파서 누워 있는 그 사람을 업고

 

병원에 갈 것입니다. 병원에 가라는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바로 진리 안에서 행동으로 실천하는 사랑이고,

 

진짜 사랑입니다.

 

실제로 아파서 누워 있어 본 적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일입니다.>

 

 

 

5)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라는 말씀을 하신 것은,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고” 라고 설명하십니다.

 

여기서 ‘기쁨’은 하느님 나라에서 얻게 되는 생명, 구원,

 

행복, 평화 등을 총체적으로 뜻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기쁨이 충만하다.’는

 

“하느님 나라에서 구원과 생명을 얻다.”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 말씀을 단순하게 요약하면, “구원받고 싶으면

 

사랑을 실천하여라.”인데, 가르치는 예수님 입장에서는

 

‘서로’ 라고 표현하셨지만, 실천하는 우리 입장에서는

 

‘내가 먼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사랑 실천’은 ‘나부터’ 해야 하는 일이고,

 

남이 안 하더라도, ‘나 혼자서라도’ 해야 하는 일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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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부활 제6주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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