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4일 (화)
(홍) 성 마티아 사도 축일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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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을 믿는다면, 주님을 사랑한다면』_송영진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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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2024-04-29 ㅣ No.171965

 

 

“‘내 계명을 받아 지키는 이야말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 나 자신을 드러내 보일

것이다.’ 이스카리옷이 아닌 다른 유다가 예수님께, ‘주님,

저희에게는 주님 자신을 드러내시고 세상에는 드러내지

않으시겠다니 무슨 까닭입니까?’ 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 그러나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내 말을 지키지 않는다.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다.

나는 너희와 함께 있는 동안에 이것들을 이야기하였다.

보호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다.’(요한 14,21-26)”

 

1) “주님, 저희에게는 주님 자신을 드러내시고 세상에는

드러내지 않으시겠다니 무슨 까닭입니까?” 라는 질문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왜 사도들과 신자들에게만

나타나시고, 세상 사람들에게는 안 나타나셨을까?” 라는

초대교회의 의문이 반영되어 있는 질문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안 믿는 사람들에게도 나타나셨다면

선교 효과가 대단히 컸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정말로 그렇게 되었을까? 그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사도들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 유령을 보는 줄로

생각했으니(루카 24,37), 안 믿는 사람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자마자 유령이라고 생각하면서 모두 달아났을 것입니다.>

그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 나 자신을 드러내 보일 것이다.” 라는 21절의 말씀과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 라는 23절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답변을 다시 정리하면, “나를 사랑하고,

아버지를 사랑하는 사람만 나를 알아보게 된다.”,

즉 “나는 모든 사람에게 나를 드러내는데 믿는 사람과

믿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만 나를 알아본다.”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러 오신 분이고,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선포하신 분이기 때문에, 부활하신 다음에도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일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당연히 ‘모든 사람’에게 당신 자신을 드러내시는데,

안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여기서 ‘사랑’이라는 말을 ‘믿음’으로 바꿔서 생각하면

예수님 말씀의 뜻이 더욱 분명해집니다.

사실 예수님에 대한 믿음과 예수님에 대한 사랑은 하나이기

때문에, 사랑을 믿음으로 바꿔서 표현해도 됩니다.

어떻게 표현하든지 간에, 예수님을 믿고 사랑하는 사람만

‘부활하신 예수님의 현존’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지도 않고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은

아무것도 체험하지 못하고, 아무것도 알아보지 못합니다.>

 

2) 안 믿는 사람들은 안 믿으니까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예수님의 현존을 체험하지 못하는데, 그러면 믿는 사람들은

전부 다 예수님을 알아보고, 예수님의 현존을 체험하는가?

실제 현실을 보면, 그렇다고 대답할 수가 없습니다.

믿는 사람들 가운데에도 아무것도 체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왜 그럴까?

믿는다고 생각만 하거나, 또 믿는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그 사람을 신앙인이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믿음’은 생각이나 말이 아니라 ‘삶’이어야 합니다.

이 말을 다시 ‘사랑’으로 바꿔서 표현해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예수님을 사랑한다.” 라고 생각만 하거나, 말만 하는

것은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내 계명을 받아 지키는 이야말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또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라는

말씀을, “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이 곧 나를 사랑하는

것이다.”로 읽을 수도 있고, “나의 가르침을 실천함으로써

나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여라.”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가장 큰 계명’에 적용하면 이해하기가 좀 더 쉬울 것입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마르 12,30).” 라는

말씀을, “너의 마음과 목숨과 정신과 힘을 다 바치는 것이 곧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다.”로 읽을 수도 있고, “하느님을

정말로 사랑한다면 너의 마음과 목숨과 정신과 힘을 전부 다

바치는 것으로 그 사랑을 표현하여라.”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니까, 우리는 우리의 모든 것을 주님께 바칩니다.

만일에 주님을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다 바친다면,

그것은 그냥 위선일 뿐입니다.

다 바치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랑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제 다시 사랑을 믿음으로 바꿔서 표현해도 똑같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믿으니까, 주님께 모든 것을 다 바칩니다.

만일에 믿지 않으면서도 다 바친다면?

안 믿는 사람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치는 경우가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그런 경우가 있다면, 그것은 뭔가

불순한 의도가 숨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3) 믿음이든지 사랑이든지 간에, 믿음과 사랑의 진실함과

순수함을 겉으로 드러내는 표지는 바로 ‘정성’입니다.

참으로 주님을 믿고 사랑하는 사람의 신앙생활은

온갖 정성을 다하는 생활, 목숨을 걸고 하는 생활입니다.

만일에 기도나 전례나 봉사활동 등을 그냥 대충대충 한다면,

그것은 믿음도 사랑도 많이 부족하거나 없다는 것을

드러내는 표지가 됩니다.

<신앙생활을 마치 취미생활 하듯이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경우에 흔히 그렇게 정성도, 간절함도 없는 모습이 됩니다.>

 

[출처] 부활 제5주간 월요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출처: 평화의 사도들 원문보기 글쓴이: 정루시아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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