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나빔(anawim)의 영성 -성서의 가난한 사람들-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베네딕토회 요셉수도원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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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096 김명준 [damiano53] 스크랩 2015-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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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2015.12.15. 대림 제3주간 화요일, 스바3,1-2.9-13 마태21,28-32
아나빔(anawim)의 영성
-성서의 가난한 사람들-
성서의 가난한 사람들이 아나빔입니다.
오랜만에 생각난 반가운 말마디 아나빔입니다.
우리 믿는 이들 역시 깊이 들여다 보면
하느님께 희망과 기쁨을 두고 사는 가난한 사람들의 아나빔입니다.
성서를 관통하고 있는 주류적 영성이 아나빔의 영성이요,
이를 고스란히 이어받고 있는 우리 수도자들입니다.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의 것이다.”(루카6,20)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너희의 것이다.”(마태5,3)
루카는 물론 마태 복음 사가의 산상설교 첫째 번 오는 것이
아나빔에 대한 예수님의 행복선언입니다.
가난의 빈자리에 하느님으로 가득하니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가난한 듯 하나 내적으로 부유한 이들이 아나빔입니다.
가난한 더불어 주님과 내적일치의 통합(integrity)이룬 사람들이 아나빔입니다.
예수님의 가난한 사람들인 아나빔에 대한 사랑은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그대로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을 반영합니다.
오늘날 교회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각별한 배려도 이에 근거하며
여기서 태동한 해방신학, 민중신학입니다.
오늘 제1독서 스바니야 예언자가 아나빔의 정체를 잘 보여줍니다.
“나는 네 한가운데에 가난하고 가련한 백성을 남기리니,
그들은 주님의 이름에 피신하리라.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은 불의를 저지르지 않고 거짓을 말하지 않으며,
그들 입에서는 사기 치는 혀를 보지 못하리라.
정녕 그들은 아무런 위협도 받지 않으며 풀을 뜯고 몸을 누이리라.”
참 순수하고 단순한, 가난하고 겸손한, 당당하고 적극적인 아름다운 사람들이 아나빔입니다.
욕심이라곤 하느님 욕심 하나뿐인 무욕의 사람들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좌파도 우파도 아닌 하느님께만 희망과 신뢰를 둔 하느님파입니다.
누구에 대한 원망도 증오도 미움도 없는 진정 하느님의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물질적인 가난만이 가난이 아니라 영적 가난도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영적, 육적으로 가난하고 불쌍한 아나빔들 천지인 세상 같습니다.
어찌보면 생노병사生老病死의 인생 사고四苦를 벗어날 수 없는 사람 존재 자체가 가난입니다.
특히 오늘날 인간의 존엄한 품위을 잃은 가난은 얼마나 많은지요.
하느님 없는 가난은 재앙이지만 하느님과 함께 하는 가난은 축복입니다.
깊이 들여다 보면 사람은 누구나 하느님을 찾는 가난한 아나빔입니다.
사막같은 세상에서 희망과 기쁨의 원천인 하느님을 모시지 않으면 어떻게 살아낼 수 있을런지요.
필시 괴물이 아니면 폐인이 될 것입니다.
하느님을 찾아 수도원에 온 아나빔의 후예인 우리 수도자들이요
가톨릭 교회의 모든 성인들은 물론 믿는 우리 모두가 하느님의 가난한 이들인 아나빔입니다.
어제 성 오딜리아 동정녀 대축일 시
아침 성무일도 낮기도 후렴 시편구절의 아름다움을 잊지 못합니다.
“주님, 당신 곁에 있는것이 내게는 행복,
이 몸 둘 곳 나의 희망 주 하느님이시니이다.”
독서의 기도. 두 번째 후렴도 좋았습니다.
주님께 대한 사랑때문에 자발적 아나빔의 길을 택한 수도자임을깨닫습니다.
"나는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때문에 세상과 그 영화를 버렸도다."
바로 이런 고백의 사람들이 아나빔입니다.
성서의 시편들 대부분 아나빔의 노래입니다.
가난중에도 좌절하지 않고 찬미와 감사로 끊임없이 하느님을 노래했던 아나빔이었습니다.
하느님을 믿고, 사랑하고, 희망했기에
절망중에도 희망을, 슬픔중에도 기쁨을, 어둠 중에도 빛을,
죽음의 상황에서도 생명을 살았던 아나빔이었습니다.
아나빔의 영성은 그래도 파스카 영성과 직결됨을 봅니다.
바로 오늘 복음의 두 아들의 비유에서 아버지의 명령에 싫다 했지만
생각을 바꾸어 일하러 간 회개의 사람, 맏아들이 가리키는 바 세리와 창녀들입니다.
끊임없이 회개하는 마음이 가난한 겸손한 자가 진정 아나빔입니다.
반면 가겠다 했지만 가지 않은 불순종의 사람이 가리키는 바
수석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입니다.
하느님께 가까이 있는 듯 하지만 가장 멀리 있는,
진정 회개를 필요로 하는 역설적 존재가 이들 종교인들입니다.
그대로 오늘의 교회 현실 같기도 합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
주님의 충격적 폭탄 선언입니다.
세리와 창녀들이 상징하는 바 역시
믿고 희망할 분은 하느님뿐이 없는 하느님의 가난한 사람들인 아나빔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당신의 아나빔인 우리 모두에게 풍성한 행복을 선사하십니다.
오늘 화답송 시편 모두도 아나빔의 기도입니다.
“주님을 바라보아라. 기쁨이 넘치고, 너희 얼굴에는 부끄러움이 없으리라.
가련한 이 부르짖자 주님이 들으시어, 그 모든 곤경에서 구원해 주셨네.”(시편34,6-7).”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