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평/봄날에 읽는 명상의 기쁨을 주는 책/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잠언집 <믿는 자는 혼자가 아니다>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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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512 지요하 [jiyoha] 2007-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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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봄날에 읽는 명상의 기쁨을 주는 책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잠언집 <믿는 자는 혼자가 아니다>를 읽고
전 세계의 모든 가톨릭 신자들은 주일미사든 평일미사든 미사 때마다 사제의 기도를 통해 교황의 이름을 한 번씩은 듣는다. 미사의 핵심인 '축성례' 후 '전구(轉求)' 부분에서 사제는 "주님, 온 세상에 퍼져 있는 교회를 생각하시어 교황 베네딕토와 저희 주교 000와 모든 성직자와 더불어 사랑의 교회를 이루게 하소서"라고 기도한다.
이처럼 교황은 전 세계 모든 가톨릭 신자들과 매일같이 미사를 통해 '일치'를 이룬다. 이것은 교황이 최고 영적 지도자의 의미를 넘어 사랑과 일치의 '구심점'임을 의미한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대리자이며,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천국의 열쇠'를 받은 베드로 사도의 265번째 후계자로 그리스도 교회 안에 존재한다.
이런 그리스도 교회의 신성한 대표성 때문에 교황은 수많은 무종교인과 갖가지 종교인들이 어울려 사는 세상에서 누구보다도 큰 영향력을 지닌다. 교황의 권위는 세계 최대 종교의 수장이라는 물리성에서 오는 것이기보다는 그리스도 교회의 핵심이며 생명인 사랑과 일치의 신성함에서 나오는 것임이 명백하다.
2005년 4월 2일 요한 바오로 2세의 뒤를 이어 독일 출신 요제프 라칭거 추기경이 새 교황으로 선출되었을 때 필자는 솔직히 말해 조금 아쉬운 마음을 가졌다. 연세가 너무 많은 점과 전임 교황 측근으로서 오랫동안 확연히 드러내온 보수성이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보수성이라는 것은 '기본'이라는 것과 좀더 밀접하고, '정통'이라는 것과도 긴밀히 연결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서 하느님께서 연로하신 새 교황을 잘 지켜주시기를 기도했다.
그리고 새 교황이 많은 사람들의 예상과는 달리 요한 바로오 3세라는 이름을 갖지 않고 베네딕토 16세라는 이름을 가졌을 때 그 배경에 대해 관심을 기울였다. 그는 평소 18세기 교황 베네딕토 14세를 가장 닮고 싶어 했다고 한다.
베네딕토 14세는 이성의 이름으로 신앙이 위협받던 계몽주의 시대를 살았다. 박학다식했던 그는 가톨릭의 위기를 논리와 대화, 그리고 설득으로 극복하고자 했다. 라칭거 추기경은 종교 상대주의와 세속주의로부터의 위협을 직시하면서 자신이 교황 자리에 오른 21세기를 또 다른 '가톨릭의 위기'로 간주했다.
그는 '베네딕토 수도회'를 창설한 베네딕토 성인과 가장 최근에 베네딕토라는 이름을 사용한 교황 베네딕토 15세도 닮고 싶어 했다. 베네딕토 성인은 기도와 묵상, 노동과 금욕의 엄격한 규율을 가르쳤다. 또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재위한 베네딕토 15세는 반전과 평화론자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그들 역시 베네딕토 16세의 마음속에서 계속 '다짐'으로 존재할 것이다.
40여 권의 저서를 펴낼 정도로 해박한 신학자이기도 한 현 교황이 베네딕토 14세처럼 교회의 위기를 논리와 대화로 풀어가겠다는 의지를 그 이름으로 천명한 셈이기도 한데, 그것은 어느 면으로는 보수성의 확실한 표방일 것도 같다. 그런 점으로 본다면 여러 가지 험로가 예상되는 가운데서 일말의 우려도 갖지 않을 수 없다.
베네딕초 16세의 잠언집' <믿는 자는 혼자가 아니다>
▲ 책 표지 사진
ⓒ 지요하
베네딕토 16세 교황에 대한 관심, 기대와 우려가 아직은 알게 모르게 계속되는 가운데서 최근 출간된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잠언집' <믿는 자는 혼자가 아니다>(바이북스)라는 책을 손에 쥐게 되었다.
베네딕토 16세의 여러 저서들 속에 들어 있는 수많은 글들 가운데서 간단명료하면서도 심원한 뜻이 담겨 있는 구절들을 뽑아 엮은 책이다. 독일인 신학자 부르크하르트 멩케가 엮은 책을 서울대를 졸업하고 한신대 대학원에서 공부한 다음 독일 프랑크푸르트대학교에서 조직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조순씨가 번역을 했다.
확실한 사항일지는 모르지만 현재 한신대 강사와 연구교수로 활동하고 있는 조순씨는 개신교 신자로 여겨진다. 개신교 신자가 번역한 교황 관련 책이기에 용어 하나하나에도 세심하게 신경을 썼을 것으로 여겨지고, 오히려 어떤 신뢰와 미더움을 더욱 크게 안겨주는 것 같다.
책은 보통 책들보다는 약간 작고, 포켓용보다는 좀 큰 사이즈다. 페이지도 175쪽 정도여서 전체적으로 무거움을 주지 않는다. 작은 가방에 넣거나 손에 들고 다니며 읽기 좋을 듯한 크기와 모양새다. 하지만 금세 가볍게 읽을 수는 없다. 두 번 세 번 음미를 하며 읽어야 할 책이다. 명상 가운데서 명상과 함께, 명상의 이름으로 읽는다면 더 좋을 책이다.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교회와 사회를 향한 지혜의 메시지'인 책 안의 글들은 '삶, 구원, 신앙, 성서, 교회, 전례, 기쁨, 사랑, 희망' 등으로 구분 지어져 있다. 명상의 지향점을 찾아 책을 펼치는 데서 색다른 묘미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단번에 읽어치우지 않고 여러 번 나누어 틈틈이, 깊이 침잠하여 읽으면서 '잠언(箴言)'이라는 말의 뜻도 새겨보았다. 잠언이란 '훈계·경계의 뜻을 지닌 짧은 말'로 사전에 풀이되어 있다. 또 잠(箴) 자는 '바늘'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그러니까 바늘처럼 가슴을 찌르는 말이라는 뜻으로도 새길 수 있다.
새삼스럽게 잠언이란 말의 뜻을 새기며 잠언집을 읽으니 책 안에 담겨 있는 모든 말씀들이 그야말로 잠언이 되는, 좀더 신선하면서도 질박한 느낌을 얻을 수 있었다.
명상의 기쁨을 얻게 하는 '잠언집'
"하느님과의 관계가 올바를 때에만 인간 상호 간의 관계와 인간과 다른 피조물과의 관계 등 여타 모든 관계들이 올바를 수 있습니다."
어찌 보면 쉽게 들을 수 있는 평범한 말인 것 같지만, 사실은 그래서 더욱 잊고 살기 쉬운 말이기도 하다. 이런 묘한 역설들이 이 책 속에는 따뜻한 봄빛처럼 존재한다.
"신앙은 우리의 경험능력이 스스로는 다다를 수 없는 어떤 것(또는 어떤 분)을 만나는 것에 기초합니다."
이런 말도 역시 흔하게 듣는 말 같지만, 좀더 명료하게 뜻이 되새겨지면서 내가 지닌 신앙의 가치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든다.
"인간은 위로 오르는 것을 배워야 하며, 폭넓어져야 합니다. 또한 인간은 창문가에 서야 하며 밖을 내다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하느님의 빛이 우리에게 닿을 것입니다. 이때 우리는 그분을 인식할 수 있으며 그분으로부터 진정한 비전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런 잠언들의 뜻을 가슴에 새기면서 홀연 봄날의 아지랑이를 보는 듯한 느낌을 가졌다. 봄날의 아지랑이는 분명히 우리 주위에 존재하지만 우리는 흔히들 그것을 보지도, 느끼지도 못하며 산다.
아지랑이는 우리의 고향 속 사물이다. 생명 자체이며, 생명의 아름다운 기운이다. 실체가 잘 보이지는 않지만, 대자연의 엄청난 역동성을 풍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요즘 봄날의 아지랑이 속에서 살고 있다. 우리가 느끼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가운데서도 봄날의 아지랑이는 오늘도 힘차게 피어오르고 있다.
"어느 누구도 모든 것을 알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서로서로의 힘으로 우리는 꼭 필요한 것을 알게 됩니다. 신앙은 서로를 의존케 하는 그물망을 형성하는데, 이것은 동시에 서로 간을 연결시키고 이끄는 그물망이 되기도 합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잠언집 <믿는 자는 혼자가 아니다>를 읽고 깊은 명상을 얻으면서 아지랑이를 느끼는 기쁨은 실로 감미롭다. 아지랑이는 한 가닥의 연기 같은 것이 아니다. 가물가물하는 수많은 가는 기체들이 한데 모여 저 광활한 대지를 감싸 안고 함께 아우르는 신비로운 생명의 기운이며 대자연의 대 향연이다.
그 풍만한 아지랑이 속에서 "하느님의 사랑으로 부름 받는다는 것은 행복으로 초청 받는 것입니다"라는 말씀이 하얀 비둘기처럼 날아오르는 것 같은 명상의 기쁨을 얻는다. 그리하여 이 책을 읽는 분들은 모두 봄날의 아지랑이가 되고, 아지랑이 속에서 힘차게 날아오르는 비둘기들이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오마이뉴스 편집부 '책동네' 담당 최유진 기자로부터 부탁을 받고 쓴 글입니다. 내게 책을 보내주시고 서평을 부탁해주신 오마이뉴스 편집부에 감사합니다.
2007-03-27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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