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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think so. 4

232192 조병식 [goodactor] 스크랩 2024-09-14

Written by Urban Zo

 

사람이란 자신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스스로가 잘 알아야 진정으로 인간다운 삶을 세상 속에서도 살아갈 수가 있다

사람에게 자신이란 존재는 하느님으로부터 주어진 유일무이한 Only One이다
그러한 신원과 정체가 이마고 데이의 실체적 진실이기도 하다
한 존재로서 두 분이신 하느님이 없듯이 자신이 둘인 사람도 없다
사람들이 그런 진리의 진실을 모른 체 살아가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세상의 잣대와 저울질로 다소 차이가 나는 개인적인 성격들이나 됨됨이들, 삶 속에서 이룬 결과들로 인간들을 달리 보는 관점은 온갖 차별의 근원이 되기도 하지만 그런 역사를 만드는 동인이 되기도 한다
그 차별의 역사를 말이다
그러함은 단지 역할과 포지셔닝을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병원에 가면 소아병동에 심장이 아픈 아이들도 많이 있다
그 심장을 살리기 위해 간이나 콩팥같은 장기를 소홀히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신체의 장기들은 서로가 서로를 대체할 수 없는 그것만의 고유한 기능들을 가지고 자리한다
역할이란 그런 것이고 기능이란 그런 부분들의 유기적 조화로 전체를 살리게 되어 있다
그런 데에는 어떤 차별도 존재하지 않는다
누가 더 중요한 사람이고 누가 덜 중요한 사람인가를 가리는 것은 인류의 오래된 담론이기도 하다
어찌 보면 자연 속에서는 불가능한 쓰레기들과 기레기들의 생존은 인본주의 속에서만 가능하다
인간들 간에, 인간들 사이의 많은 처이들을 차별로 이끄는 것은 오랜 역사의 어둡고 부정적인 필요악 같은 관습이자 관행이기도 하다
운전면허시험의 커트라인은 60점이며 대부분의 기능사 커트라인도 대체로 60점이다
보다 난이도를 높이는 종목들은 그만큼의 전문성과 기술력을 요하기 때문에 그런 실력이 필요한 부분에만 한정한다
60점
열 문제 중에서 여섯 문제만 맞추면 되는 정도이다
60점만 되도 그 기능을 쓰는 직종에서 아무런 문제도, 하자도 없다고 주관기관이 판단해서 정해 놓은 커트라인이다
그런 이해를 사람들이 언젠가부터 잊고 서로에게 모질게 굴고 험악하게 구는 경우들이 많은 것은 다들 제 세상살이가 힘들어서일 것이다

내가 자신을 먼저 사랑해야 한다는 말을 천주교 신자에게 처음 들었을 때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나는 사랑이라는 것을 무조건적인 이타성에 가까운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느님이 자신을 사랑한다
모든 계명들을 아우르는 사랑의 두 계명도 분명히 나 아닌 다른 존재들을 절대적으로, 일방적으로 향하는 것처럼 들렸던 것이다
한 편은 하느님, 또 한 편은 이웃, 그렇게 말이다
그런 계명 속에는 나를 사랑해야 한다는 느낌도, 뉘앙스도, 분위기도 없었다
그리고 정작 그렇다면 나를 실체적으로, 실제적으로 어떻게 사랑해야 진정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인가도 막연하고 멀게만 느껴졌다
그 모든 것을 몰랐기 땨문이다
차가운 어둠의 집에서 죗가를 치르고 있을 때 교정사목을 하러 온 천주교 신자에게서 그런 말을 들었기에 더욱 어려웠다
사랑에 대한 고정관념이 누군가를 향해서만 존재하는 사랑으로 굳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향한 사랑도 정작 자신이란 존재가 자신으로 살아 있지 않는한 그 사랑의 성격도, 정체도, 실체도, 주소도 모르는 그런 것이 된다는 데에 그 깊은 아이러니가 있기도 하다
나 자신이 없는데 하느님은 어디 있고 이웃은 어디 있겠냐는 말도 같은 의미이다
때론 헌신이란 말이, 투신이라는 말이 사랑을 어느 정도 대리하는 말로도 여겨지는데, 그것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나 자신이 있어야 나의 헌신도, 나의 투신도 있는 것이다
나란 존재는 없고 그 어떤 맹목과 신념만이 살아있는 헌신과 투신은 대체로 인간답지 않고 인격적이지 않을 때가 많다
신도 고뇌하고 번민했다는 복음의 증언은 그런 중요한 성격을 말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 모든 순명이 나라는 존재는 살아있지 않고 어떤 맹목성과 신념화된 동기로만 움직이는 것이 되어 그것이 마땅하고 당연하다는 식으로 부려진다면 그리고 그 사후댓가만을 목적화한다면 과연 그 과정 속에서 그 무엇이 되고 그 무엇이 이루어질지는 끔찍할 수도 있다
세상의 많은 일들이 그렇게 되어지기도 하고 세상의 많은 종교들이 그런 식으로 굴러가기도 하지만 진정 그래서만은 안될 일이다
동양쪽의 종교들은 대체로 그 모든 것이 마땅하다는 식의 논리들을 펴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함은 체제의 확립과 유지를 위해서 그런 구조적인 체계를 만들 필요를 권력자들이나 지배자들이 먼저 필요로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카르마와 라이프(인간삶과 사회생활)를, 카스트와 라이프를 같게 보기도 하는 관점을 그런 세상 속에서 고착시킨다
그러나 복음은 양심과 신앙심에 따라 모든 것이 실현가능해지며 영원한 생명과 하느님 나라도 다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친다
여덟가지 참된 행복도 그러한 진실을 가르치는 것이다
카톨릭 신자라면 그러한 복음의 가르침에 따라 본인들의 양심과 신앙심에 따라 스스로들이 성인도, 순교자들도 될 수 있음을 잘 알고 삶을 살아야 할 일이다
다른 종교들이 삶을 현세적 입장으로 묶어 두고 그 위에서 군림하고 지배하려는 종교적 위상과 위력을 만들어 그 종교적 세계관과 세계성을 만드려고 할지라도 말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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