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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백) 2025년 5월 15일 (목)부활 제4주간 목요일내가 보내는 이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맞아들이는 것이다.

가톨릭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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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송영진 신부님_<“그래서 어렵다.”가 아니라, “그래도 믿는다.”입니다.>

182209 최원석 [wsjesus] 스크랩 10:13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고, 파견된 이는 파견한 이보다 높지 않다. 이것을

알고 그대로 실천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내가 너희를 모두

가리켜 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뽑은 이들을 나는 안다.

그러나 ‘제 빵을 먹던 그가 발꿈치를 치켜들며 저에게

대들었습니다.’ 라는 성경 말씀이 이루어져야 한다. 일이

일어나기 전에 내가 미리 너희에게 말해 둔다. 일이 일어날

때에 내가 나임을 너희가 믿게 하려는 것이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가 보내는 이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맞아들이는 것이고, 나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맞아들이는 것이다(요한 13,16-20).”

1) 이 말씀은, 제자들 가운데 하나가 당신을 배반할

것이라고 예고하시는 말씀이고, 그런 일이 생겨도

흔들리지 말라고 격려하시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실 때,

예수님께서는 배반자 유다의 발도 씻어 주셨습니다.

복음서 저자는 그때 이미 유다가 마음속으로 예수님을

팔아넘길 생각을 하고 있었고, 예수님께서도 배반자가

누구인지 알고 계셨다고 기록했습니다(요한 13,2.11).

예수님께서 유다의 배반을 알고 계시면서도 그의 발을

씻어 주신 것은, 그의 배반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예수님의 사랑이 변함이 없었음을 나타냅니다.

배반을 당해도 변함이 없는 것이 ‘참 사랑’입니다.

물론, 보통 사람들에게는, 또 실제 현실에서는

대단히 실천하기 힘든 일이기는 합니다.

그래도 신앙인은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사람입니다.

유다의 배반에 초점을 맞춰서 생각하면,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고, 파견된 이는 파견한 이보다 높지 않다.

이것을 알고 그대로 실천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라는 말씀은, “낮춤과 섬김으로써 사랑을 실천하여라.” 라는

단순한 가르침이 아니라, “배반자도 사랑하여라.

내가 한 것처럼 너희도.” 라는 가르침입니다.

<이 말씀은, 산상설교의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마태 5,44).” 라는 가르침에 연결됩니다.>

“너희는 행복하다.” 라는 말씀의 ‘행복’은, 구원받은

사람들이 얻게 되는 ‘참 행복’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너희가 구원받을 것이다.” 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원수든지 배반자든지 간에,

그런 사람들도 사랑해야 사랑이 완성됩니다(마태 5,48).

‘사랑의 완성’은 구원의 필수 조건입니다.

2) “일이 일어나기 전”은, “제자들 가운데 하나가

나를 배반하기 전”이고, “일이 일어날 때”는,

“제자들 가운데 하나가 나를 배반할 때”입니다.

“내가 나임을”은, “내가 메시아라는 것을”입니다.

제자의 배반을 미리 예고하시는 것은, 당신이 메시아라는

것을 제자들이 믿게 하기 위해서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데, 이 말씀은, 당신의 수난과 죽음은

‘힘이 없어서 당하는’ 일이 아니라, 당신이 스스로

당신의 목숨을 내주시는 일이라는 가르침입니다.

<모든 일의 주도권은 당신에게 있다는 가르침입니다.>

또 이 말씀은, 제자들 가운데 하나가 당신을 배반하는 일이

생기더라도, 당신이 메시아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성경 말씀이 이루어져야 한다.” 라는 말씀은,

“모든 일은 하느님의 섭리 안에 있다.” 라는 뜻입니다.

그렇지만, 유다에게 배반의 책임이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내가 보내는 이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맞아들이는

것이고, 나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맞아들이는 것이다.” 라는 말씀은, 제자들 가운데에서

배반자가 생기더라도 당신이 사도들에게 주신 직무와 권한은

변경되거나 취소되는 일이 없음을 보증해 주신 말씀입니다.

3) 실제로 예수님의 수난 때에, 사도들은 자기들 가운데

하나가 예수님을 배반했다는 것 때문에,

크게 낙담했을 것입니다.

신자들 쪽에서 생각하면, 사도단 안에서 배반자가 생겼다는

것은, 사도단의 위신이 크게 추락하는 일이었습니다.

엠마오의 두 제자의 경우에, 그들은 메시아이신 분이

그렇게 허망하게 돌아가셨다는 것에 크게 실망해서

예루살렘을 떠났는데, 아마도 그들의 실망감은 사도단

안에서 배반자가 생겼다는 것 때문에 더 컸을 것입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두 사람에게 나타나셔서

‘메시아의 고난’에 대해서 설명해 주실 때, 아마도 제자의

배반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셨을 것입니다.

어떻든 일이 그렇게 될 것을 예수님께서 미리 알고 계셨다는

것과 그 모든 일이 하느님의 섭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라고 확인해 주셨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사도들은 다시 힘을 내서 일어섰을 것입니다.

4) 예수님의 말씀은, 신앙인들의 신앙생활에도,

또 인생살이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신앙인은 모두 하느님의 섭리 안에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신앙인들이 겪는 고난과 불행을

다 알고 계십니다. <알고 계시니까 보호해 주십니다.>

우리가 겪는 고난과 불행 가운데 어떤 일은 ‘십자가’ 라는

것이 분명해서 힘들어도 받아들이고 인내하지만,

어떤 일은 십자가라고 생각하기도 어렵고 이해할 수도

없어서 받아들이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모든 일이 다 ‘하느님의 섭리’ 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때는, 거의 항상, 그 일이 진행되는 과정에서가

아니라 모든 일이 끝난 다음입니다.

“그래서 어렵다.” 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데,

신앙인은 “그래도 믿는다.” 라고 고백하는 사람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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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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