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GOOD NEWS 게시판

검색
메뉴

검색

검색 닫기

검색

오늘의미사 (녹) 2025년 7월 8일 (화)연중 제14주간 화요일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가톨릭마당

sub_menu

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영적전투, 영적승리 “주님의 전사, 주님의 일

183311 선우경 [forgod] 스크랩 07:19

2025.7.8.연중 제14주간 화요일                                                                

 

창세32,23-33 마태9,32-38

 

 

영적전투, 영적승리

“주님의 전사, 주님의 일꾼”

 

 

“주님, 

 당신 눈동자처럼 저를 보호하소서.

 당신 날개 그늘에 저를 숨겨 주소서.”(시편17,8)

 

요셉수도원에 정주하기 만 37년 동안, 수도원 앞 들판에 거대한 별내신도시가 들어섰지만 그린벨트 지역에 해당하는 수도원 주변의 자연은 그대로입니다. 그동안 정주하면서 아침마다 산책할 때 마다 대하는 자연은 늘 그대로 이지만 늘 새롭고 좋습니다. 아주 예전 <아침>이란 시도 생각납니다.

 

‘아침의 자연은 늘 새롭다

 살아 있기 때문이다

 밤의 침묵과 휴식 때문이다

 

“아침을 먹었느냐?”

 가 아닌,

“아침을 보았느냐?”

“아침을 들었느냐?”

인사 할 수는 없을까!

 

똑같은 

사람, 환경, 말과 글도

살아 있으면

침묵의 밤이 있으면

늘 새로운 아침일 수 있다’<1997.8.16.>

 

28년 전 글이니 여기 수도원에서 47세때 쓴 시입니다. 그때의 자연은 지금도 계속됩니다만 늘 새롭고 좋습니다. 진정한 변화는 탐욕에 바탕한 개발로 자연을 훼손하는 외적변화가 아니라 끊임없는 내적변화임을, 진정한 발전은 자연과 공존과 균형, 조화의 발전이어야 함을 깨닫습니다. 해마다 반복되는 이때쯤의 담쟁이를 보면 참 많이도 인용했던 <담쟁이>란 시가 생각납니다. 영적전투하면 떠오르는 시입니다. 

 

“이제부터 다시 시작이다

작년 가을 붉게 타오르다 사라져 갔던 담쟁이

어느새 다시 시작했다

 

초록빛 열정으로 

힘차게 하늘 향해

담벼락, 바위, 나무 타오르기 시작했다

 

마침내 붉은 사랑으로 타오르다

가을 서리 내려 사라지는 날까지

또 계속이다

 

해마다 반복되는 

제자리 정주의 삶에도 

지칠줄 모르는 초록빛 열정

 

다만 오늘 하루

하늘 향해 타오를 뿐

내일은 모른다

 

타오름 자체의 과정이

행복이요 충만이요 영원이다

오늘 하루만 사는 초록빛 영성이다”<1998.6.3.>

 

지금도 거기 그 자리 곳곳에 끊임없이 하늘 향해 타오르고 있는 담쟁이들은 영적전투의 빛나는 상징입니다. 수도생활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저를 매료시켰던 주제가 영적전투요 앞으로도 살아 있는 동안 계속될 주제입니다. 평생 영적전투에 평생 제대가 없는, 죽어야 제대인 영원한 현역의 주님의 전사, 믿음의 전사가 우리 정주 수도승의 신원입니다. 

 

물론 혼자이면서 영적전우들과의 더불어의 영적전투이기도 합니다. 싸우다 전사해야 주님의 전사요 객사나 사고사나 병사가 아니길 바라는 소망도 때로 피력하곤 했습니다. 싸움의 전투는 인간현실의 본질이기도 합니다. 젊을 때는 공부와 싸우고, 중년기에는 일과 싸우고, 노년기에는 병마와 싸운다고 합니다. 잡초들이 기승을 부리는 이때의 밭농사는 풀과의 전쟁이라 일컫기도 합니다.

 

영적전투의 빛나는 모범이 오늘 제1독서 창세기의 야곱입니다. 주님의 꿈쟁이이며 주님의 전사 야곱입니다. 어제 에사우를 피해 도주했던 야곱이 장인 라반의 집에서 혁혁한 성과를 거둔후 식솔들을 이끌고 금의귀환하는 모습이나 에사우의 보복이 두렵고 무서워 일행들을 먼저 떠나 보낸후 하느님과 마지막 일전을 치루는 절체절명의 기도 장면입니다. 

 

바로 밤새 하느님과 결전을 치루는 장면은 옛 교부들이 기도는 물론 영적전투의 빛나는 상징으로 여겼습니다. 얼마나 치열한 하느님과의 싸움의 기도인지요! 에사우 형과의 만남이 그토록 두려웠던 것이며 주님과의 대결로 내적힘을 키우기 위한 영적전투의 기도시간이었던 것입니다. 하느님과의 대화가 재미있습니다.

 

“동이 트려고 하니 나를 놓아다오.”

“저에게 축복해 주시지 않으면 놓아 드리지 않겠습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야곱입니다.”

“네가 하느님과 겨루고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으니, 너의 이름은 이제 더 이상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라 불릴 것이다.”

 

마침내 야곱의 영적승리입니다. 하느님께 이기고 무엇보다 자신에게 이김으로 두려움의 공포에서 해방된 것입니다. 야곱의 고백과 하느님과의 치열한 밤샘기도의 영적전투에 승리한 후 떠나는 장면이 참 아름답습니다.

 

‘야곱은 “내가 서로 얼굴을 맞대고 하느님을 뵈었는데도 내 목숨을 건졌구나.”하면서, 그곳의 이름을 ’프니엘(하느님의 얼굴)’이라 하였다. 야곱이 프니엘을 지날 때 해가 그의 위로 떠올랐다. 그는 엉덩이뼈 때문에 절뚝거렸다.‘

 

마치 태양이 하느님께 대한 야곱의 영적승리를 축하하는 분위기입니다. 태양빛 가득 받으며 절뚝거리며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며 걷는 하느님의 꿈쟁이요 불세출의 하느님의 싸움꾼, 주님의 전사 야곱입니다. 이 장면의 아름다움을 극찬하던 50년전 제가 27세쯤 개신교 신학강좌시 감리교 신학대 구약학 교수였던, 지금은 타계한 <민영진 목사>의 강의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합니다. 

 

우리가 사랑하고 따르는 예수님 역시 하느님의 꿈쟁이이자 불세출의 하느님의 전사입니다. 예수님은 평생 하느님 나라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온갖 영적전투를 마다하지 않은 분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마귀들려 말못하는 사람에게서 마귀를 쫓아내신 주님은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주십니다. 다음 착한목자 예수님의 가엾이 여기는 마음은 그대로 하느님의 마음이요 주님의 전사가 지녀야 할 마음입니다.

 

‘그분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었기 때문이다.’

 

예나 이제나 여전히 반복되는 현실이 목자 없이, 길과 꿈을 잃고 방황하는 사람들입니다. 옛 현자의 가르침도 좋은 도움이 됩니다.

 

“우리는 눈앞의 것을 좇느라 원대한 계획을 잊어버린다.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과 꾸준함이다.”<다산>

“서두르지 말고 작은 이익을 도모하지 마라. 서두르면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작은 이익을 좇으면 큰 일을 이루지 못한다.”<논어>

 

착한목자 주님을 따르는 제대로의 방향에 우보천리의 자세가 절실합니다. 이어 당대의 제자들은 물론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수확할 것은 많은 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착한 목자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 은총으로 우리 모두 충만케 하시어, 당신의 일꾼이자 당신의 전사로 세상에 파견하십니다. 

 

“주님, 

 저는 의로움으로 당신 얼굴 뵈옵고,

 깨어날 때 당신 모습에 흡족하오리다.”(시편17,15). 아멘.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7 43 1

추천  7 반대  0 신고  

TAG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로그인후 등록 가능합니다.

0 / 500

이미지첨부 등록

더보기
리스트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