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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녹) 2025년 10월 20일 (월)연중 제29주간 월요일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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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무지의 탐욕, 두려움에 대한 답은 <하늘에 보

185702 선우경 [forgod] 스크랩 07:44

2025.10.20.연중 제29주간 월요일                                                           

 

로마4,20-25 루카12,31-21

 

 

무지의 탐욕, 두려움에 대한 답은

<하늘에 보물을 쌓는 ‘하느님 중심의 믿음의 삶’뿐이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5,3)

 

이런저런 나눔으로 강론을 시작합니다. 교황청 교황님 홈페이지에서 눈에 띈 깨우침이 되는 말씀입니다.

“고리대금업은 인간 마음을 부패하게 하고 가난한 자들을 노예화한다.”

결코 믿는 이들이 하지 말아야 할 죄가 고리대금업 활동입니다.

“레오 교황은 ‘전쟁으로 찢어진 땅(war-torn lands), 미안마에 평화를 호소하다.”

새삼 좋은 전쟁보다는 나쁜 평화가 좋다는 생각입니다. 전쟁은 모두를 패배자로 만드는 참 어리석은 일입니다.

“기도하라, 그러면 마음을 잃지 않는다.”

마음을 잃지 않기 위해 한결같은, 끊임없는 기도가 참 절실한 시절입니다.

“성인들은 불타오르는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의 빛을 지킨다.”

시성식때 교황님 말씀입니다. 불타오르는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의 빛을 발산하는 믿음의 삶이면 좋겠습니다. 오늘 현자의 말씀도 좋은 가르침이 됩니다.

“말을 잘하는 것은 유창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때와 장소, 상황에 맞게 하는 것이다.”<다산>

“말할 때가 아닌데 말하는 것을 조급하다 하고, 말해야 할 때 하지 않는 것은 숨긴다고 한다.”<논어>

침묵보다 힘들고 중요한 것이 잘 말하는 것이요 이 또한 지혜입니다.

 

새벽 기상하여 숙소문을 나서면 우선 눈들어 바라보는 가을밤 하늘입니다. 요즘 들어 눈에 띄기 시작한 늘 거기 그 자리 북두칠성이요, 여전히 들려오는 수도원 뒤 불암산 계곡물 흐르는 소리입니다. 생각나는 좌우명 시 한 연입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끊임없이, 한결같이

 하느님 바다 향해 흐르는 강이 되어 살았습니다

 때로는 좁은 폭으로 또 넓은 폭으로

 때로는 완만하게 또 격류로 흐르기도 하면서

 결코 끊어지지 않고 계속 흐르는 ‘하느님 사랑의 강이 되어 살았습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 받으소서.”

 

참 좋은 믿음의 수행 법칙은 “한결같이, 끊임없이”입니다. 평생 훈련의 삶이 믿음의 삶입니다. 새삼 품위있는 삶의 분명한 우선순위는 1.하느님 믿음, 2.건강, 3.돈임을 재확인합니다. 무지에 대한 답은 하느님 믿음의 지혜로운 삶뿐입니다. 믿음이 지혜입니다. 인간 불행과 재앙의 진원지가 무지의 탐욕이요 어리석음이요 두려움입니다.

 

오늘 복음의 <어리석은 부자>와 제1독서 로마서의 주인공 구약의 <믿음의 아브라함>이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어리석은 부자에 대한 답이 바로 아브라함입니다. 어리석은 부자는 하느님 믿음이 없는 인간의 보편적 모습입니다. 어리석은 부자의 축재의 탐욕은 그 원인을 알면 비난할 바 못됩니다. 

 

바로 <탐욕의 뿌리>에는 불안정한 삶에 대한 <두려움>이 또아리 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목숨의 <생존에 대한 두려움>은 인간의 근본적 정서입니다. 어찌보면 탐욕은 이런 두려움에 대한 본능적 자기방어와 같고, 바로 이것이 사람을 탐욕의 어리석은 인간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탐욕이 문제가 아니라 분별의 지혜를 상실한 지나친 탐욕이 문제입니다. 

 

두려움에 기인한 탐욕이요 믿음의 빛이 두려움의 어둠을 몰아냅니다. 하느님 믿음 부재시 인간의 숙명적 한계가 두려움에 기인한 탐욕입니다. 그래서 땅에 보물을 쌓는 탐욕의 삶이요, 하늘에 보물을 쌓는 믿음의 삶은 꿈에도 상상을 못하고 자기착각, 자기도취의 단절고립의 지옥같은 자기감옥의 수인의 삶입니다. 땅에서 많은 소출을 거둔 어리석은 부자의 독백과 하느님의 답변이 실감나게 묘사됩니다.

 

“이렇게 해야지. 곳간들을 헐어 내고 더 큰 것들을 지어, 거기에다 내 모든 곡식과 재물을 모아 두어야겠다. 그리고 내 자신에게 말해야지. ‘자, 네가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재산을 쌓아 두었으니, 쉬면서 먹고 마시며 즐겨라.”

 

잠시 묻고 싶습니다. 이런 혼자를 위한 축재가 두려움을 없앨까요? 천만에! 두려움은 점점 커질 것입니다. 참으로 이런 축재가 마음의 평화, 기쁨, 평화, 자유, 행복을 보장할까요? 아닐 것입니다. 여전히 불안하고 만족하지 못할 것입니다. 내적 영혼의 배고픔과 목마름의 갈증은 여전히 계속될 것입니다. 

 

도대체 이 어리석은 부자는 함께의 공동체가 없는 하느님과 이웃에 완전히 차단된 삶이니, 구원의 필수 요소인 사랑의 찬양과 감사가, 섬김과 나눔이 있을리 없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어리석은 부자는 물론 우리 모두에게 회개를 촉구합니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부자 스쿠르지가 성탄전날 꿈을 꾸고 회개하여 나눴듯이 이게 꿈이라면 어리석은 부자 역시 필시 회개와 더불어 나눔이 뒤따랐으리라 추측합니다. 하느님을 대신한 예수님의 결론 말씀이 시공을 초월하여 우리의 무지를 일깨우며 지혜롭게 합니다.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이 바로 이러하다.”

 

참으로 진짜 하느님 앞에서 부유하고 자유롭고 행복한 사람은 땅이 아니라 하늘에 보물을 쌓는 하느님 중심의 믿음의 삶을 사는 이들임을 깨닫습니다. 땅에 보물을 쌓는 어리석은 무지의 삶에서 아브라함처럼 하늘에 보물을 쌓는 지혜로운 삶으로의 전환을, 즉 삶의 패러다임을 바꿀 것을 촉구합니다. 

 

바로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영적혁명의 회개이겠습니다. 하느님 중심의 믿음의 삶 모두가 진정 하늘 보물을 쌓는 지혜로운 삶임을 깨닫습니다. 아브라함은 물론 성인들이 그 빛나는 모범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본받을 것을 촉구하는 바오로 사도입니다.

 

“아브라함은 불신으로 하느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았을뿐 아니라. 오히려 믿음으로 더욱 굳세어 져서 하느님을 찬양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 이런 믿음을 의로움으로 인정받은 아브라함이요, 우리 주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분을 믿는 우리 역시 아브라함처럼 그 믿음을 의로움으로 인정받을 것입니다.”

 

무지의 탐욕, 어리석음에 대한 답은 단 하나, 아브라함처럼 부단히 하늘에 보물을 쌓는 하느님 중심의 지혜로운 믿음의 삶뿐임을 깨닫습니다.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전례은총이 이런 믿음의 삶에 결정적 좋은 도움을 주십니다.

 

“보라, 주님의 눈은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당신 자애를 바라는 이들에게 머무르신다.”(시편33,18). 아멘.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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