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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홍) 2019년 10월 18일 (금)성 루카 복음사가 축일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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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연중 제24주간 수요일

132570 조재형 [umbrella] 스크랩 2019-09-17

사람을 안다는 것은 나의 기준과 나의 판단으로 아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알기 어렵다고 합니다. 상대방을 알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이야기를, 상대방의 마음과 함께해야 합니다. 저 역시 저의 판단과 기준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아프게 한 적이 많습니다.

 

책에서 읽은 글입니다. 오해와 편견을 버릴 수 있는 좋은 내용 같아서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인도의 갠지스강에서 강물에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묵상하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차를 파는 노인과 친해졌고, 매년 가면 노인과 대화하며 차를 마셨습니다. 어느 날입니다. 노인과 인사를 하려는데 노인은 갠지스강에서 주전자의 물을 채우고 돌아왔습니다. 오염된 강물로 차를 끓인다는 생각에 마음이 상했습니다. 노인과 대화 하지 않고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다음 해에도 노인을 만났습니다. 노인은 반갑게 인사하면서 차를 한 잔 주는데 먹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노인은 이번에도 갠지스강으로 주전자를 가지고 가서 물을 채워 왔습니다.

 

기분이 상한 나머지 노인에게 말했습니다. ‘어째서 오염된 강물로 물을 끓입니까 노인은 아닙니다. 저는 한 번도 오염된 강물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의심되면 저와 함께 계단으로 내려가 보세요.’ 확인해 보니 계단 아래에는 펌프가 있었습니다. 땅속 깊이 파이프가 연결돼 있었고 맛있는 지하수가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노인의 차는 맛있었던 겁니다. 남을 알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가는 계단 끝까지 함께 가야 합니다. 노인의 정성과 노인의 친절함을 외면했던 자신의 오해를 깊이 뉘우쳤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보면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을 오해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세례자 요한과 계단의 끝까지 가지 못한 사람입니다. 다만 세례자 요한의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너무 쉽게 판단하고 있습니다. 드라마는 이제 막 시작했는데 벌써 결말을 예측합니다. ‘견지망월(見指忘月)’하는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에게서 볼 것은 단식과 옷차림이라는 손가락이 아닙니다. 회개의 세례를 선포한 그의 설교입니다. 하느님의 어린양을 알아보고 나는 저분의 신발 끈을 풀어드릴 자격도 없다.’라고 했던 그의 겸손입니다.

 

예수님에게 볼 것은 사람들과 어울려 먹고 마시는 겉모습이라는 손가락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어 오신 그분의 지극한 사랑입니다. 그 사랑 때문에 인류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고통입니다. 예수님을 배반하였고, 두려움과 걱정으로 숨어 있던 제자들을 용서하시고 평화를 빌어주시는 자비입니다. 담대한 모습으로 당당하게 복음을 전하는 제자들의 변화된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병 환자도 깨끗하게 하셨고, 앉은뱅이도 일어나게 하셨고, 눈이 먼 사람은 뜨게 하셨고, 듣지 못하는 사람은 듣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의심하는 사람은 어찌하실 수 없었습니다. 그 의심이 자꾸만 다른 곳을 보기 때문입니다.

 

지금 내가 보고 의지하는 건 오해와 거짓이라는 손가락인지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을 보아야 하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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