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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홍) 2019년 10월 18일 (금)성 루카 복음사가 축일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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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ㅣ체험
[교황님미사강론]아마존 전 지역을 위한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시노드 개막 미사(2019.10.6.주일)

133102 정진영 [jjwriter] 2019-10-10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미사 강론입니다.

http://w2.vatican.va/content/francesco/en/homilies/2019.index.html

https://www.vaticannews.va/en.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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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님 강론 날짜]2019106일 주일[연중 제27주일 (군인 주일)]

[독서와 복음 말씀] 1독서 : 하바쿡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1,2-3; 2,2-4

화답송 : 시편 95(94),1-2.6-7ㄱㄴㄷ.7-9(◎ 7ㄹ과 8)

2독서 : 티모테오 2서 말씀입니다. 1,6-8.13-14

복음 : 루카 복음 17,5-10

http://maria.catholic.or.kr/mi_pr/missa/missa.asp?menu=missa&missaid=11198&gomonth=2019-10-06&missatype=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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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 전 지역을 위한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시노드 개막 미사

 

PAPAL CHAPEL

 

프란치스코 교황의 강론

 

성 베드로 성당

연중 제27주일 2019 10 6

 

교회 역사 안에서 가장 위대한 선교사 바오로 사도는 우리가 이 시노드를 시작하도록, “함께 이 여정을 하도록 돕습니다. .티모테오에게 하는 그의 말은 하느님의 백성을 섬기는 사목자로서 우리에게 하는 말인 것 같습니다.

 

바오로는 먼저 티모테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그대에게 상기시킵니다. 내 안수로 그대가 받은 하느님의 은사를 다시 불태우십시오”(티모테오 2 1,6). 우리는 하느님의 은사를 받았기 때문에 주교입니다. 우리는 계약서에 서명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에게 고용계약이 건네지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아니라 우리 머리 위에 손이 얹어졌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형제 자매들에게 손을 뻗어 도우면서 우리 차례가 되었을 때 성부 하느님 아버지 앞에서 전구하기 위해 들어올려진 손이 되도록 말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은사가 되기 위해서 은사를 받았습니다. 은사는 살 수도, 거래될 수도, 팔 수도 없습니다. 은사는 받는 것이고 내어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은사를 계속 갖고만 있다면 우리가 받은 은사가 아니라 우리 자신을 중심에 두고 있다면 우리는 목자가 아니라 관료가 됩니다. 우리는 은사를 직업으로 변하게 만들고 그 무상성은 사라집니다. 결국 우리는 우리 자신을 섬기고 교회를 이용하게 됩니다.

 

우리가 받은 은사 덕분에 우리의 삶은 섬김으로 향하여 집니다. 복음 말씀이 쓸모 없는 종(useless servants)”(루카 복음 17,10)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것이 우리에게 이것을 상기시킵니다. 그 표현은 또한 이익이 없는 종(unprofitable servants)”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개인적인 이익이나 이득을 위해서 봉사하지 않고 우리가 거저 받았으므로 거저 돌려 주고 싶기 때문에 봉사합니다(마태오 복음 10,8 참고). 우리의 기쁨은 전적으로 섬기는 데에 있습니다. 우리 모두의 종이 되어 주신 하느님으로부터 우리가 먼저 섬김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섬기기 위해 이곳으로 부르심을 받았음을 느낍시다. 하느님의 은사를 중심에 놓읍시다.

 

우리의 소명, 우리의 임무에 충실하기 위해서 성 바오로는 우리의 은사가 다시 불태워져야 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상기시킵니다. 그가 원문에서 사용한 동사는 매력적입니다. 불태우다, 문자 그대로 그것은 불을 지피는 것을 의미합니다(anazopyrein). 우리가 받은 은사는 불, 하느님과 우리 형제 자매들을 향한 불타는 사랑입니다. 불은 혼자 저절로 타지 못합니다. 불은 지펴져야 하고 그러지 않으면 꺼져서 사라집니다. 그것은 재가 됩니다. 모든 것이 과거에 있었던 대로 계속 된다면, 우리가 이것이 항상 해왔던 방식이라고 만족하면서 우리의 세월을 보낸다면 그때 현 상태를 지키려는 두려움과 걱정의 잿더미에 질식되면서 은사는 사라집니다. 그러나 교회는 결코 그 사목 활동을 유지의 사목에, 이미 그리스도의 복음을 알고 있는 이들을 위한 사목에 국한시킬 수 없습니다. 선교사 파견은 하나의 교회 공동체가 성숙했다는 분명한 표지입니다.”(베네딕토 16세 교황 권고 주님의 말씀Verbum Domini, 95). 교회는 항상 움직임 중에 있으므로 언제나 밖으로 나아가면서 결코 자기 자신 안으로 움츠러들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부드러운 저녁 미풍을 주러 오지 않으셨고 세상에 불을 지르러 오셨습니다.

 

은사를 다시 불태우는 불은 성령, 은사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성 바오로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안에 머무르시는 성령의 도움으로, 그대가 맡은 그 훌륭한 것을 지키십시오”(티모테오 21,14). 그리고 다시 이렇게 말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비겁함의 영을 주신 것이 아니라, 힘과 사랑과 절제의 영을 주셨습니다”(티모테오 2 1,7). 비겁함의 영이 아니라 절제의 영. 어떤 사람들은 절제가 잘못이 없도록 확인하기 위해 모든 것을 점검하는 세관의 덕목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아닙니다. 절제는 그리스도인의 덕목입니다. 절제는 삶의 덕목이고 그리고 실제로 통치의 덕목입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이 절제의 영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바오로는 절제를 비겁함의 반대편에 두었습니다. 이 절제의 영이란 무엇입니까 교리에서 가르치는 대로 절제는 소심함이나 두려움과 혼동되어서는 안됩니다그러기 보다는 그것은 모든 환경 속에서 우리의 진정으로 좋은 것을 분별하고 그것을 수행해내는 올바른 수단을 선택하는 실천 이성(practical reason)을 갖는 덕목입니다”(No. 1806).

 

절제는 우유부단한 것이 아닙니다. 절제는 방어적인 태도가 아닙니다. 절제는 지혜롭게 섬기기 위한 사목자의 덕목이고 그는 분별할 수 있고 성령님의 새로움을 잘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성령의 불 속에서 우리의 은사를 다시 불태우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일이 되는대로 내버려 두는 것과 반대입니다. 성령의 새로움에 대한 성실함은 우리가 기도 중에 간구해야 하는 은총입니다.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시는 성령께서는 당신의 대담한 절제를 우리에게 주시기를. 그분께서 선교의 불이 계속 타오르도록 아마조니아 교회의 길을 다시 새롭게 하도록 우리의 시노드에 영감을 주시기를.  

 

우리가 불에 타는 떨기 나무 이야기에서 보는 것처럼 하느님의 불은 타오르지만 타서 없어지지 않습니다(탈출기 3,2 참조). 그것은 집어 삼키면서 확 일어나는 불길이 아니라 밝게 비추고 따뜻하게 덥히고 생명을 주는 사랑의 불입니다. 그러나 얼마나 자주 하느님의 은사가 내주어 지지 않고 강요되어 지고 있는지요. 얼마나 자주 복음화 보다는 식민지화로 존재해 왔는지요! 하느님께서는 새로운 형태의 식민주의의 탐욕으로부터 우리를 지켜 주소서. 최근에 아마조니아를 황폐화시키는 불처럼 파괴하는 이익으로 놓아지는 불은 복음의 불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불은 일치로 끌어 당기고 모으는 따뜻함입니다. 그것은 이익이 아니라 나눔으로써 지펴집니다. 반면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이념을 내세우고 싶어할 때 자기들만의 그룹을 만들고 싶어 하고 모든 사람과 모든 것을 획일화하려는 시도 속에서 차이를 없애 버리고 싶어할 때 파괴하는 불이 불타오릅니다.

 

은사를 다시 불태울 것. , 대담한 절제의 영을 맞이할 것. 즉 그분의 새로움에 성실할 것. 성 바오로는 이제 마지막 권고로 나아갑니다. “그러므로 그대는 우리 주님을 위하여 증언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 오히려 하느님의 힘에 의지하여 복음을 위한 고난에 동참하십시오”(티모테오 2 1,8). 바오로는 티모테오에게 복음을 증언하라고, 복음을 위하여 고난을 받으라고, 다시 말해 복음을 위해 살라고 요청합니다. 복음 선포는 교회 생명의 중요한 척도입니다. 복음 선포는 교회의 사명이고 교회의 정체성입니다. 잠시 후에 바오로는 이렇게 쓸 것입니다. ‘나는 이미 하느님께 올리는 포도주로 바쳐지고 있습니다”(티모테오 2 4,6). 복음을 선포하는 것은 봉헌 제물로 사는 것이고 끝까지 증언하는 것이고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는 것이고 (코린토 1 9, 22 참조) 순교에 이르기까지 사랑하는 것입니다. 나는 추기경 회의에 이 삶에서 순교의 십자가를 경험해 왔기 때문에 몇몇 형제 순교자 추기경이 있는 것에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바오로 사도는 복음이 세상의 힘으로 섬겨지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하느님의 힘으로 섬겨진다는 것을 매우 명백히 했습니다. 겸손한 사랑 안에서 견딤으로써, 생명을 얻는 유일한 진정한 방법은 사랑을 통해 그것을 잃는 것이라는 것을 믿음으로써 그러합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꿰찔리신 그분의 마음을 함께 바라봅시다. 우리를 낳으신 은사의 원천, 그곳에서 시작합시다. 다시 새롭게 하시는 성령께서 그 마음에서 흘러나왔습니다(요한 복음 19, 30 참조). 우리 각자 그리고 우리 모두가 그렇게 생명을 내어주라고 부름 받았음을 느끼도록 합시다. 그렇게 아마조니아의 그토록 많은 우리 형제 자매들이 무거운 십자가를 견디고 있고 복음화의 해방시켜 주는 위로를 기다리고 있고 교회의 사랑의 어루만짐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토록 많은 아마조니아 형제 자매들이 그들의 생명을 내주어 왔습니다. 나는 여기에서 우리의 사랑하는 Hummes 추기경님의 말을 반복해서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그는 아마조니아의 저 작은 도시들에 도착할 때 그는 선교사들의 무덤을 방문하기 위해 묘지에 갑니다. 그것은 아마조니아에서 자신의 삶을 내어준 사람들을 위해 교회를 대신해서 하는 몸짓입니다. 그런 다음에 조금은 영리하게 그는 교황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이 잊혀지지 않게 하소서. 그들은 시성되기에 합당합니다.” 그들을 위해서 그리고 자신의 삶을 내어준 사람들과 지금도 자신의 삶을 내어주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그리고 그들과 함께 같이 여정에 나아 갑시다.

 

강론영어원문 -> http://w2.vatican.va/content/francesco/en/homilies/2019/documents/papa-francesco_20191006_omelia-sinodo-amazzonia.html

교황님 미사 동영상 -> http://w2.vatican.va/content/francesco/en/events/event.dir.html/content/vaticanevents/en/2019/10/6/messa-sinodoamazzonia.html

 

소리로 전하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심쿵 미사 강론 ->

마리아 사랑넷 https://www.mariasarang.net/ (->신앙생활->교황님 미사 강론)

팟빵 http://www.podbbang.com/ch/1771273(->교황님의 심쿵 미사 강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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