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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ㅣ체험
나의 세 엄마 이야기.

141059 강만연 [fisherpeter] 스크랩 2020-09-28

 


나에겐 이젠 다시 불러보고 싶어도 부를 수 없는 말이 하나가 있다. 바로 엄마라는 말이다. 엄마를 하늘나라에 보내드린 지 이제 삼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지금도 엄마 생각이 많이 난다. 엄마의 빈자리가 얼마나 큰지 삼 년의 세월이 흘러도 그 자리는 언제나 똑같은 것 같다. 난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엄마의 아들로 태어나고 싶다. 하느님이 맺어주신 천륜이기 때문에 그보다 더 좋은 엄마가 없을 테니 말이다.

 

엄마가 그리울 땐 아무도 모르게 엄마 산소에 간다. 엄마라는 말을 부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엄마, 막내 왔어요.”라고 말을 해도 엄마는 대답이 없다. 엄마 산소에 가면 눈물이 나려고 해도 하늘나라에서 보시면 가슴 아파하실 것 같아 꾹꾹 참고 가슴으로 눈물을 흘려보낸다.

 

한참 엄마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한 후에 엄마의 영혼을 위해 예수님께 묵주기도를 드린다. 아마포로 된 기도보가 있다. 산소 자판 위에 깔고 촛대 위에 두 개의 초에 불을 켠 후에 14처 기도 고상 성물을 놓고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친 후 연도를 끝으로 엄마의 영혼을 하느님의 자비에 의탁하면서 마지막으로 준비해간 성수를 뿌려 엄마의 영혼을 위해 간절한 기도를 하느님께 올리면 조금이나마 내 마음이 진정이 된다.

 

평생 절만을 다니신 엄마였지만 엄마는 나 자신이 개종 후에 신앙이 흔들려 신앙을 포기하려고 할 때 엄마가 하신 말이 있다.“나는 부처를 믿지만 남자가 한번 마음먹었으면 끝까지 하느님을 믿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성당을 잘 다녀야 한다고 신신당부하셨다. 왜 엄마가 성당에 나가는 걸 반대하시지 않았을까는 아직도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비록 가족 모르게 대세를 받고 2년 남짓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나셨지만 믿지 않는 가족이라 장례미사를 할 수 없게 되어 천추의 한으로 남을 수가 있었을 텐데 하느님께서 도와주셔서 극적으로 본당 신부님 외에 평소 잘 알고 지내는 은퇴하신 몬시뇰 신부님과 수도원 신부님을 모시고 장례미사를 할 수가 있어서 하느님께 감사함을 잊을 수가 없었다.

 

미사 후에 수녀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들 하나 잘 둬서 마지막에 엄마를 신부님들의 기도로 하늘나라에 잘 보내드릴 수 있어서 엄마가 좋아하실 듯하다.”고 하신 말씀이 아직도 나의 귓전을 울린다. 수도원 신부님께서 장지까지 가시겠다고 하셔서 마음이야 감사한 일이지만 만류를 했었다. 광주에서 먼 거리를 새벽에 출발해 손수 운전해 와주신 것만 해도 감사한 일인데 장지가 진주이기 때문에 진주를 거쳐서 가시면 문제될 게 없다고 한사코 가시겠다고 하셔서 정말 이 또한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며칠 전 엄마 산소를 가족들과 벌초를 하고 왔었다. 지금 나는 카르투시오 수도원을 준비하고 있는 터라 만약에 수도원 피정이 잘 마무리되어 수도원에서 입회 승낙이 떨어진다면 이번 벌초가 마지막이 될 수 있다고 엄마에게 마음속으로 전했었다. 수도원에 들어가면 이젠 엄마가 그리워 산소에 오고 싶어도 다시는 올 수가 없게 된다. 카르투시오 수도원은 봉쇄 수도원이기 때문이다. 그걸 생각하니 벌초를 하면서 가슴으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가족들이 곁에 있었고 속마음을 감춰야 했기에 그날 벌초는 참으로 힘든 벌초였다.

 

벌초를 다 끝낸 후에 산소를 내려올 때 난 맨 마지막에 내려왔다. 조금이라도 엄마가 계신 곳을 더 보고 싶은 마음에 내내 돌아서면서 엄마의 산소를 계속 뒤돌아보며 내려오는데 발길이 떨어지질 않았다. 난 세 분의 엄마가 있다. 한 분은 내 영혼을 낳아주신 성모님이시고 또 한 분은 나의 육신을 낳아주신 어머니 또 한 분은 내 마음속에 어머니처럼 생각하는 분이 한 분 계신다.

 

비록 피 한 방울 섞이지는 않은 분이지만 그분을 뵙게 되면 마음속으로 엄마라고 불러본다. 실제로는 엄마라고 불러볼 수가 없다. 정말 그분을 뵐 때마다 마치 낳아주신 엄마의 품처럼 온화하고 가슴이 따듯한 분이라 나에겐 많은 위로가 된다. 비록 흐르는 세월 속에 얼굴엔 세월의 흔적이 남아있지만 나의 가슴과 눈에는 이 세상 그 어떤 미인과도 견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절대 빈말이 아니다. 하느님만은 이 맘 진실되다는 것을 아실 것이다.

 

이런 마음을 몇 차례 글로써 표현을 했었다. 희망사항이라면 그분도 나의 마음이 빈말이 아니고 진실된 마음이라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아마 흐뭇해하시지 않을까 생각한다. 엄마처럼 느껴지지만 따뜻한 정은 신앙 안에서는 아름다운 형제애가 될 것이다. 난 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내가 마음속에 엄마처럼 생각하는 이분의 따뜻한 마음과 고마움을 내 가슴속 육비에 아로새겨 절대 잊지 않을 것이다. 이런 사랑을 주신다는 것은 보기엔 쉬운 것처럼 보일 수가 있겠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사랑이 없으면 절대 할 수가 없다고 본다.

 

난 이분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이건 경험하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 나에게 이런 분을 내 곁에 있게 해 주시고 스물두 살이라는 나이 차이가 남에도 이분 덕분에 이런 아름다운 마음을 가질 수 있게 해 주신 것도 하느님께 감사를 드려야 할 일이다.

 

난 이분을 통해서 깨달은 사실이 하나 있다. 세상에서 돈을 주고 살 수 없는 행복이 무엇인지 또 행복은 절대 경제적인 부유함으로만 가져다 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또한 신앙 안에서 따뜻한 형제애가 얼마나 소중한지도 알 수 있었다. 그 사랑이 크면 사랑을 주시는 분이 날개만 없을 뿐이지 천사와 같다는 사실이다. 이와 같은 행복한 느낌은 하늘나라에서나 느낄 수 있는 느낌일 것이다. 이미 난 세상에서 천국에서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감정을 맛본 것이나 다름없다.

 

난 오늘도 다짐을 한다. 수도자의 길을 가지 않으면 난 그분이 할머니가 되어도 내 마음속에는 그분을 향한 나의 마음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하느님 앞에 맹세를 하면 계명에 어긋나서 할 수가 없지만 사내대장부로서 그 맘은 꼭 지킬 것이다. 마음속으로 난 그분을 향해 이 세상에서는 다시 부를 수 없는 말인 엄마하고 혼자 조용히 오늘도 불러본다. 자매님, 사랑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자매님의 아름다운 마음 절대 잊지 않을게요.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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