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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ㅣ체험
(4)정신의 신비적인 밤(신비적인 연옥)

133939 김중애 [ji5321] 스크랩 2019-11-18

 

 

(4)정신의 신비적인 밤
(신비적인 연옥)
 신비적 약혼 뒤에는
신비적 결혼이 따릅니다.
이것은 절대로 없앨 수도 없고
분리 될 수 없는
완전한 일치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그런 절대적인 극치에까지
올려주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정화의 괴로운
시련을 격도록 하시는데
이것을 신비신학자들은
신비적인 연옥이라고 부릅니다.
 그것은 몹시 괴로운
시련이긴 하지만
가장 고상하고 귀중한
특별한 은총입니다.
이같은 시련의 신비적인 밤은
새로운 은총의 빛으로부터
비롯합니다.
신비적인 생활의 준비단계인
관의 신비적인 밤과 같이
이 빛은 너무도 눈부시어
사람의 정신적인 눈이나
빛을 넘어섭니다.
 그것은 마지막 남은
사소한 단점까지도
말끔히 씻어 없애고
영혼을 온전히
정화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이 경우의 불완전함이나
단점은 자유의지로
한 것이 아니고
기질상의 단점이므로
지없이 괴로운 형극의 길
, 바로 신비적 연옥인 것입니다.
 이 정신의 어두운밤은
문자 그대로 암흑이어서
초자연계와는 아주
동떨어진 격리감을 느끼고
얼마전 까지의 하느님과의
복된 일치나 염경기도,
 묵상기도,
침묵의 신비적 묵상 등,
여러 가지 기도마저
괴로운 추억으로만 남고
자기가 하느님에게
완전히 버림을 받았다는
절망감이 덮쳐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격으신
암담한 고독과 비슷합니다.
 더구나 정신의 칠흑 같은
이밤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고
꽤 장기간에 걸쳐
나타나며 때에 따라서는
수년간 계속됩니다.
어떤 신비가는 이것을
지옥의 고초라고 말합니다.
 이런 경우의 공포감은
지나친 양심의 가책이나 혹은
 신경쇠약에서 오는
세심증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성인들은 일반인들과 같이
죄를 함부로 판단하지 않고
오로지 하느님의 뜻을 따라
판단합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의 선과
악을 어떻게 생각하시고
판단하시는지는
예수님이 십자가 상에서
격으신 고통을 보아야만
알 수 있습니다.
또한 건조한 이 단계에서는
정신적 어두움 이외에
영적 건조의 괴로움도
격기 마련입니다.
기도나 묵상,
극기나 고행,
자선행위
그밖의 모든 선행과
선한 공덕이 귀찮고
짐스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실로 놀라운 일은
이러한 고통 가운데 에서도
 영혼은 뜨거운 정열을
기울여 하느님을 사랑하고
하느님의 뜻에 맞추려고
헌신한다는 점입니다.
하느님께서 그러한 영웅적인
충성을 가상히 여기시고
계시는 줄을 그 영혼은 절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도
특별한 사실입니다.
 정신의 신비적인 밤에
휩싸인 영혼에게는 무엇보다
경험있고 친절한 지도신부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때의 지도신부는 정신의
신비적인 고통에 잠긴 영혼을
 유혹으로부터 보호하고
또 과도한 통회와 고행을
구제의 수단으로 쓰려는 그영혼의
욕구를 만류해야 합니다.
 그러한 시련을 당하는 영혼은
스스로는 출구를 찾을수 없고
오직 영웅적인 인내심을
발휘함으로써 이겨내며
하느님께서 그 괴로운
어두움을 거두어 주시고
다시 밝은 광명을 주실 때까지
기다릴 수 밖에 없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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