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GOOD NEWS 게시판

검색
메뉴

검색

검색 닫기

검색

오늘의미사 (백) 2024년 4월 27일 (토)부활 제4주간 토요일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가톨릭마당

sub_menu

우리들의 묵상ㅣ체험
빈첸시오 신부의 여행묵상 5 - 마더 데레사를 위한 짧은 변명 (캘커타/인도)

133970 양상윤 [payatas] 2019-11-20


마더 데레사를 위한 짧은 변명

 

 

 

캘커타에서 가장 유명한 건 어떠한 유적지도 명소도 아닌 마더 데레사 아닐까 싶다.

 

혹시나 캘커타가 CNN이나 BBC 오르내리게 된다면

 

모르긴 몰라도 이유의 열 개중 아홉은 마더 데레사 때문일 것이다.

 

 

 

뜨거운 낮에는 숙소에서 쉬고 오후에 태양이 약해졌다 싶을

 

생전에 그녀가 주로 머물렀었고 지금은 그녀의 무덤이 있는 '마더 하우스'로 향했다.

 

그녀 생전에 인도사람에게서 이러한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보통은 마더 데레사로 알고 있지만

 

사람들은 전부터 마다 데레사 라고 부른다고 했다.

 

영어로 치면 마마 마미 해당하는 말이니

 

우리말로 해석해 보면 어머니 데레사 아니라 엄마 데레사 되는 셈인데

 

같은 뜻을 가진 단어지만 느낌은 많이 다르다.

 

어머니라는 말에는 숭고함이나 연민도 느껴지고 자식으로서의 책임감, 조심스러움도 느껴지지만 

 

엄마라는 말에는 그러한 느낌 보다는

 

일방적으로 받기만 해도 같고 뭐든지 원하면 들어줄 같고

 

그러다 들어주지 않으면 울면서 떼를 써도 같은 느낌이 든다.

 

결국 그들에게 그녀는 어머니가 아니라 엄마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마더 하우스 대로변에 있지만 입구는 옆쪽 골목으로 살짝 들어가 있다,

 

그렇다고 찾기에 어려운 건 아닌데 입구를 찾으려 두리번거리고 있자니

 

재빨리 꼬마가 다가와 친절하게 안내를 해주고 손을 벌린다.

 

마더하우스를 찾아오는 사람이라면

 

가난한 어린아이에게 동전 몇개정도는 너그러이 인심 쓰리라는 너무나 알고 있는 것이다.

 

 

 

  

 

 

 

마더 데레사 하우스

 

 

 

 

그녀의 무덤 앞에서 잠시 머리를 숙였다,

 

뭔가를 얻기 위해서 이곳을 찾은 건 아니다,

 

캘커타가 여행계획에 없었으니 마더 하우스 계획에 없었고

 

어쩌다가 캘커타에 왔고 여기도 그래서  오게 되었다.

 

그런데도 생각이 많은 것은 아마도 오전에 봤던 거리의 모습 때문일 것이다.

 

현재의 상황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희망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나는 캘커타에서 희망을 보지 못했다.

 

만약 그녀도 그랬다면 좌절하지 않고 평생 일할 있었던 희망을 대신한 버팀목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지금이야 성녀 소리를 듣지만 그녀도 처음 나약한 인간에 불과했었을 것이고

 

고민하고 갈등하고 두려움도 느꼈을 것이다, 보통 사람들처럼 그리고 나처럼.

 

그녀의 무덤 앞에서 "묵주기도" 바치면서도 기도와는 상관없이 너무나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맴돈다.

 

 

 

 

 

 

마더 데레사의 무덤  

 


 

기도를 끝내고 그녀의 유품을 전시해 놓은 방으로 향했다,

 

영어로 MUSEUM이라고 써놓았으니 우리말로 박물관 또는 기념관 맞기는 맞는데

 

우리가 생각하는 박물관이나 기념관에 비하면 한없이 작고 초라하다.

 

그곳에 이런 말이 써있었다.

 

 

God has not called me to be successful. He has called me to be faithful. 

하느님은 나에게 성공을 요구하지 않으셨다, 그는 나에게 충실함을 요구하셨다


 

들어 가자 마자 보이는 곳에 있으니 평소 그녀의 좌우명 같은게 분명할 것이다.

 

바로 저거 였구나! 희망이 없는 땅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움직일 수 있었던 건!하고 뭔가가 가슴을 때린다.

 

그녀는 희망이 있어서 움직였던게 아니었고 뭔가를 이루려 했던 것도 아니며

 

엄마들에게는 당신 자식들의 가능성이 문제가 되지 않는 것처럼,

 

당장 그들이 자신의 존재를 그리고 도움을 필요로 하니까 함께 있는 것처럼,

 

그녀도 자신을 필요로 하는 이들과 그렇게 함께 있었던 거다.

 

그녀에 대해서 한쪽에서는 성녀라고 말하고

 

한쪽에서는 독재자들, 양심적인 부자들의 친구라고 말한다,

 

상당히 극과 극의 표현이다

 

하지만 그녀가 평생 함께했던 캘커타의 가난한 이들에게는

 

성녀 독재자의, 양심적인 부자들의 친구 아닌,

 

언제나 항상 자리에 있는 그저 엄마 같은 존재였을 것이며

 

그녀도 그런 존재가 되기를 원했던 것은 아닐까

 

 

 

아니다, 어쩌면 그녀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저 도움을 달라고 찾아온 사람들에게, 혹은 도움을 주겠다고 찾아온 사람들에게

 

그리고 그녀에게 주어진 하루하루에 충실했을 뿐일 게다,

 

그녀의 그녀 부른 이유가 바로 이라고 믿고 있었으니까.

 

 

 

- 10, 20, 30일에 업데이트 됩니다

 

 

 


0 1,439 2

추천  0 반대  0 신고  

TAG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로그인후 등록 가능합니다.

0 / 500

이미지첨부 등록

더보기
리스트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