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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과 용서

220300 권기호 [kkhchs2] 스크랩 2020-05-30

어느날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들이 간음한 여자을 끌고 와서,

모세는 율법에 따라 돌을 던져 죽이라고 우리에 명령하였는데 예수님 생각은 어떠십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는 몸을 굽히시어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 쓰기 시작하셨다.

그들이 줄곧 물어 대자 예수님께서 몸을 일으키시어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그리고 다시 몸을 굽히시어 땅에 무엇인가 쓰셨다. (요한 8,6-8)

 

이 말씀을 듣고 나이 많은 자들부터 하나둘씩 모두 떠나가 그곳에는 예수님과 여자만 남았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너를 단죄한 자가 아무도 없느냐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하고 말씀하십니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인은 그저 돌에 맞아 죽을죄를 지었다고 생각하고 아무런 저항도 못하고 끌려왔습니다. 오는 내내 자신의 생은 왜 이리 고달프고 힘들지 이런 삶을 사느니 오히려 죽는 것이 나을 수도 있겠다는 자포자기 심정으로 끌려왔을지 모릅니다.

 

모든 걸 포기한 여인에게 갑자기 들려온 소리는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라는 예수님의 목소리였습니다.

간음한 여인은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예수님께 감사드리고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다고 맹세하였을 겁니다. 주님께서 베풀어 주신 용서의 은혜는 그녀의 목숨을 구해 주었고 무엇보다도 개인의 존엄성과 자존감을 회복시켜 주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용서는 한 개인의 새로운 삶의 계기가 됩니다.

이 여인이 마리아 막달레나라는 설도 있더라고요.

 

사회적인 도덕의 수준이 있습니다. 凡人으로 살 때와는 달리 지도층으로 살기로 결심하는 순간 그 잣대는 훨씬 엄격해 지고 정밀해 집니다. 특히 NGO활동가로 활동하였다면 훨씬 높은 도덕성과 양심을 요구합니다.

 

사람이 권력과 돈을 쥐면 죄 지을 일이 많아집니다. 나름대로 나 스스로는 엄청 도덕적이고 깨끗하다고 생각하며 살았는지 모르지만 많은 사람의 주목을 받는 자리에 서게 되면 평가는 달라 질수 있습니다.생각해 보면 그만한 권력과 돈의 유혹이 자신에겐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권력과 돈이 주어지는 순간 유혹을 이기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따르는 위치에 서게 되면 말과 행동도 조심하게 되고 도덕적으로 완벽한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노력하는 바람직한 선순화의 현상도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과오가 밝혀지는 순간 무결점 프레임에 갇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사과 한번으로 끝나면 될 것을 거짓말로 넘어가려 하다가 사태가 악화되는 경우도 종종 보곤 합니다.

특히 상대편에 들이대던 높은 잣대에 스스로 갇혀 버립니다.

 

이런 경우 우리 편이라고 생각하던 사람에겐 상대편에 들이대던 높은 잣대를 들이대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무리가 나타납니다.

이와 동시에 자신의 잘못을 지적하는 무리는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자신을 공격한다고 생각하면서 자신의 죄를 인정하기가 더욱 어려워집니다.

 

예수님께서 간음한 여인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그 죄값을 달게 받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음을 알고 계셨기에 용서로 새로운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못하는 순간 거짓말이라는 또 다른 죄를 짓게 되고 자신의 무결점 프레임에 갇혀 버림으로써 용서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립니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군중은 타인이 저지른 실수는 더욱 들춰내고 싶은 그런 심리가 작용합니다. 왜냐하면 누구나 죄를 가지고 있기에, 더욱 그것을 감추고자 타인의 죄를 비난하고 싶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비난의 돌, 분노의 돌, 정죄의 돌만으론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그에 못지않게 진심으로 자신의 죄를 뉘우치는 자에게 용서와 사랑의 마음으로 새 삶을 살 수 있는 용기를 주어야 하는 것도 비난하는 자의 몫일지 모릅니다.

 

다만, 지도자급의 인사라면 잘못에 대한 인정과 자기의 기득권을 내려놓은 것이 선행되어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위안부할머니관련 단체의 기자회견을 보면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순간 주어지는 용서라는 새 삶을 얻는 어느 한 여인의 회개를 떠올립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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