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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의 축복 -생명이자 빛이신 주님과의 만남-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신부님

139318 김명준 [damiano53] 스크랩 2020-07-06

 

 

2020.7.6.연중 제14주간 월요일, 호세2,16.17ㄷ-18.21-22 마태9,18-26

 

광야의 축복

-생명이자 빛이신 주님과의 만남-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그곳 어딘가에 샘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야.”

 

말씀 묵상중 떠오는 어린왕자에 나오는 말마디입니다. 사막이나 광야가 상징하는 바는 똑같습니다. 도시의 광야라는 말도 있듯이 우리 인생 잘 들여다 보면 광야 인생입니다. 멀리 밖에 있는 광야가 아니라 내 몸담고 살아가는 세상이 광야입니다. 광야가 아름다운 것은, 빛나는 것은 그곳 어딘가에 생명의 샘이자 빛이신 주님을 숨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생명의 샘이자 빛이신 파스카의 예수님께서 언제 어디의 광야에 계시기에 살만한 세상, 신바람 나는 세상입니다. 며칠전 수녀원 응접실의 선풍기에 쓰여 있던 ‘신바람’이란 말마디입니다. 신바람, 바로 성령입니다. 신바람의 영이신 주님이야 말로 우리 삶의 의미이자 전부입니다. 참으로 주님을 만날 때 치유의 구원입니다. 인생 무지와 무의미, 허무에 대한 답도 주님뿐입니다.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맛보고 깨달아라, 행복하여라, 주님께 바라는  사람!”(시편34,9)

 

바로 오늘 화당송 후렴처럼, 이런 주님이 계시지 않는 다면 이 거칠고 삭막한 광야 인생, 무슨 맛으로, 재미로, 기쁨으로 세상을 살아낼 수 있을런지요. 광야의 상징과도 같은 카르투시안 수도원을 배경한 위대한 침묵의 영화 마지막에 나오는 임종을 앞둔 노수도승의 인터뷰 대목도 감동입니다.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고요! 이제 그분을 영원히 만나는 시간이 다가오는데, 이런 기쁨이 어디에 있나요! 이 만남을 준비하기 위해서 그분과 얼마나 많은 대화를 즐겼는데요!”

 

광야인생중 영원한 도반이자 연인이요, 주님과 우정 관계를 깊이해 온 수도승임이 분명합니다. 얼마전 선종한 수녀님의 임종전 “하느님이 보고 싶어요!”란 말마디의 유언도 생각납니다. “주님, 당신을 사랑합니다.” 임종어를 남긴 성녀 소화 데레사요, “신랑이 오신다. 신랑을 맞으러 나가자!” 임종어를 남기고 선종한 젤투르다 성녀도 생각납니다. 한결같이 인생 광야중 주님만을 찾으며 우정의 사랑을 깊이해 왔던 분들입니다.

 

하여 옛 구도자들은 한결같이 고독과 침묵의 광야의 사막을 찾았습니다. 참 구도자들의 자연스런 영적본능이 고독과 침묵의 광야에 대한 사랑입니다. 참으로 하느님을 찾고 악마와의 영적 전투를 위해 사랑하는 주님을 찾아 광야의 고독과 침묵을 찾았습니다. 참으로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은 광야의 침묵과 고독도 사랑합니다. 얼마전 교황님의 강론 서두에 굵은 글자의 제목이 선명히 떠오릅니다.

 

“노인들에 대한 배려는 그들을 홀로 남겨두지 않는 것이다.”

 

광야 인생에 힘겨워하는 노인들과 함께 하라는 것입니다. 어찌 노인뿐이겠습니까? 참으로 주님을 만나지 못해 무지와 무의미, 허무 중에 광야 인생 힘겹게 지내는 많은 이들도 함께 해야 할 이들입니다.

 

내 몸담고 있는 오늘 지금 여기가 광야입니다. 주님을 만나야 할 광야입니다. 광야의 주님을 찾아 멀리 밖에 갈 필요는 없습니다. 제1독서 호세아서가 참 아름답고 광야 여정중의 우리에게는 큰 위로와 힘이 됩니다. ‘여자’가 상징하는 바 광야인생 여정중의 우리 하나하나입니다.

 

“그러나 이제 나는 그 여자를 달래어 광야로 데리고 가서 다정히 말하리라. 거기에서 그 여자는 젊을 때처럼, 이집트 땅에서 올라올 때처럼 응답하리라. 네가 더 이상 나를 ‘내 바알’이라 부르지 않고 ‘내 남편’이라 부르리라.”

 

초발심의 순수와 열정을 회복하여 지금 여기 광야에서 우리의 영원한 연인이자 도반인 주님과의 사랑을 새로이 하는 것입니다. 우상의 상징인 ‘내 바알’이 아닌 ‘내 남편’이 상징하는 바 우리의 영원한 연인, 주님입니다. 이분과의 우정의 사랑을 새로이 깊이 하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주님의 약속 말씀도 아름답고 은혜롭습니다. 광야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축복이 되는, 말 그대로 광야의 축복입니다.

 

“나는 너를 영원히 아내로 삼으리라. 정의와 공정, 신의와 자비로써, 진실로써 너를 아내로 삼으리라. 그러면 네가 주님을 알리라.”

 

그러니 광야 여정은 주님을 인격적으로 사랑하여 알아가는 “앎의 여정”임을 깨닫습니다. 정의와 공정, 신의와 자비, 진실의 주님과 우정이 깊어가면서 치유의 구원이요, 우리 또한 주님을 닮아 공정과 정의, 신의와 자비, 진실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런 구도자의 전형적 모범이 오늘 복음의 회당장과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던 여자입니다. 참으로 이 둘은 광야 여정의 곤경중에 간절히, 절실히, 열렬히 주님을 찾았고, 이 믿음으로 주님을 만나 치유의 구원을 받았습니다.

 

-“제 딸이 방금 죽었습니다. 그러나 가셔서 아이에게 손을 얹으시면 살아날 것입니다.”

정말 간절한 믿음의 표현이요 이에 감동하여 따라 나선 생명이자 빛이신 주님이십니다. 

“물러들 가거라. 저 소녀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

 

이어 소녀의 손을 잡으시자 소녀는 일어납니다. 말 그대로 아버지 회당장의 믿음 덕분에 치유의 구원을 받은 소녀입니다. 참으로 이런 믿음만이 인생, 무지와 무의미, 허무에 대한 유일한 답임을 깨닫습니다. 그대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을 압축합니다. 우리 또한 간절한 믿음 덕분에 주님을 만나 치유 받아 다시 일어나 새롭게 시작하는 하루입니다. 열두 해 혈루증을 앓던 여자의 치유의 구원 과정도 아름답고 감동적입니다.

 

-“내가 저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겠지”

말 그대로 간절한 믿음의 표현이자 기도입니다. 여자의 믿음에 감동하신 예수님은 돌아서시어 그 여자를 보시며 구원을 선물하십니다. 이 바라보는 따사로움으로 빛났을 연민 가득한 주님의 눈길이, 눈빛이 눈에 선합니다.

“딸아, 용기를 내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바로 그때에 그 부인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얼마나 감동스럽고 감격적인 구원의 치유 선언인지요. 광야 인생 여정 중 주님을 찾아 미사전례에 참석한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화두로 삼아 생명과 빛으로 충만한 하루를 사시기 바랍니다. 

 

“딸(아들)아, 용기를 내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마태9,22).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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