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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백) 2024년 4월 26일 (금)부활 제4주간 금요일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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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안식일에 밀이삭을 자르다

143840 김대군 [ahyin70u] 스크랩 2021-01-18

 

 

1독서(희망은 닻과 같아 안전하고 견고합니다.)

히브리서 6,10-20

형제 여러분, 10 하느님은 불의한 분이 아니시므로, 여러분이 성도들에게 봉사하였고 지금도 봉사하면서 당신의 이름을 위하여 보여 준 행위와 사랑을 잊지 않으십니다.

-. “성도는 사도 바울로가 즐겨 쓰는 신자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초대교회는 특히 예루살렘 교회의 신자들이나 팔레스티나의 신자들을 성도라 부르곤 했다.

행위와 사랑은 두 개의 다른 개념이 아니라 실천적 사랑을 말한다. 사랑은 가끔 행위.봉사.나눔.책임 등의 단어와 함께 쓰인다. 이 구절에서는 팔레스티나 교회를 돕는 헌금을 뜻할 가능성도 있다.

 

11 여러분 각자가 희망이 실현되도록 끝까지 같은 열성을 보여 주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12 그리하여 게으른 사람이 되지 말고, 약속된 것을 믿음과 인내로 상속받는 이들을 본받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 “믿음과 인내역시 앞의 행위와 사랑처럼 서로 상관되는 개념이다. 믿음이 있으면 인내하기 때문이다. 믿음과 인내는 또한 앞에 말한 실천적인 사랑을 일으키며, 결국 하느님이 약속하신 바를 상속받게 한다.

 

13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 당신보다 높은 분이 없어 그러한 분을 두고 맹세하실 수 없었으므로, 당신 자신이 없어 그러한 분을 두고 맹세하시면서,

-.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약속이나 맹세의 확실성을 증명하려면 자신들보다 더 신빙성이 있는 인물이나 단체등을 내세우곤 한다. 하느님은 외아들 이사악을 바치기까지 충성을 다한 아브라함에게 축복과 미래의 번성을 약속하시고 맹세까지 하셨다. 그분은 당신보다 더 위대한 이가 없기 때문에 당신 자신을 두고 맹세하셨다. 결국 하느님은 약속과 맹세 둘 다를 사용하여 아브라함이 굳게 신뢰하게 하셨다.

 

14 “정녕코 나는 너에게 한껏 복을 내리고 너를 한껏 번성하게 해 주겠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

-. 직역하면 나는 너를 축복하면서 축복하고 너를 번성시키면서 번성시키겠다.” 이러한 표현은 히브리어 특유의 맹세 양식으로서, 같은 말을 반복함으로써 결심이나 의지가 확고함을 표현한다.

 

15 그리하여 아브라함은 끈기 있게 기다린 끝에 약속된 것을 받았습니다.

-.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약속과 맹세에 온전히 신뢰했다. 그는 비록그의 생전에 이 약속이 다 실현되는 것을 보지 못했지만 확고한 믿음을 바탕으로 꾸준히 인내하며 살았다. 저자는 이렇게 하느님의 절대적인 약속 실현과 아브라함의 확신에 찬 인내를 부각시킨다.

 

16 사람들은 자기보다 높은 이를 두고 맹세합니다. 그리고 그 맹세는 모든 논쟁을 그치게 하는 보증이 됩니다.

-.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실생활의 예를 들어 설명한다.

 

17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약속하신 것을 상속받을 이들에게 당신의 뜻이 변하지 않음을 더욱 분명히 보여 주시려고, 맹세로 보장해 주셨습니다.

18 하느님께서는 이 두 가지 변하지 않는 사실에 관하여 거짓말을 하신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이 두 가지로, 당신께 몸을 피한 우리가 앞에 놓인 희망을 굳게 붙잡도록 힘찬 격려를 받게 하셨습니다.

-. 두 가지 사실은 앞뒤의 내용으로 보아 약속과 맹세다.

도움을 청하기 위하여 하느님께나 배 안으로 피신함을 말한다. 신자들은 어떤 의미에서 파선의 위험이 없는 안전한 배에 탄 사람들이다.

 

19 이 희망은 우리에게 영혼의 닻과 같아, 안전하고 견고하며 또 저 휘장 안에까지 들어가게 해 줍니다.

-. 고대 그리스.로마.이집트.바빌론 등지의 문학이나 비문 등에서는 닻을 흔히 희망.안전의 상징으로 삼았다. 로마의 지하 묘지인 카타쿰바의 벽화에도 이러한 상징이 발견된다.

성전의 중심부인 지성소를 가리던 휘장이다. 대제관이 휘장 내부의 지성소로 들어갔듯이 신자들도 천상 지성소에 들어갈 확고한 희망을 갖고 있다.

 

20 예수님께서는 멜키체덱과 같은 영원한 대사제가 되시어, 우리를 위하여 선구자로 그곳에 들어가셨습니다.

-. “선구자는 세례자 요한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예수께서는 우리의 선구자로서 지성소에 들어가시어 영원한 대제관이 되셨다. 저자는 훈화를 마감하는 이 구절로써 5.10부터 중단한 대제관이신 예수에 관한 주제를 다시 다룰 것을 예고하고 있다.

 

 

 

 

 

복음(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

마르코 복음 2,23-28

23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질러가시게 되었다. 그런데 그분의 제자들이 길을 내고 가면서 밀 이삭을 뜯기 시작하였다.

-. 5~6월경 밀이 익을 때 일어난 사건이다. 그런데 제자들이 왜 밀이삭을 잘랐을까 배가 고파서 그랬든지 아니면 그냥 입이 심심해서 껌처럼 씹으려고 그랬을 것이다.

 

24 바리사이들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보십시오. 저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합니까

-. 안식일에는 서른아홉 가지 노동을 금지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추수작업이다. 그런데 밀이삭을 자르는 것도 추수작업에 해당된다고 보는 법해석이 있다. 그래서 바리사이들이 항의한다.

 

25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다윗과 그 일행이 먹을 것이 없어 배가 고팠을 때, 다윗이 어떻게 하였는지 너희는 읽어본 적이 없느냐 26 에브야타르 대사제 때에 그가 하느님의 집에 들어가, 사제가 아니면 먹어서는 안 되는 제사 빵을 먹고 함께 있는 이들에게도 주지 않았느냐

-.25-26절은 다윗이 사울에게 쫓겨다니다 몹시 굶주린 나머지 아히멜렉 제관에게 가서 하느님께 올린 빵을 얻어 먹었다는 이야기다. 제관들은 안식일마다 새빵을 하느님께 드리고 묵은 빵은 오직 자기들끼리 나누어 먹었다. 그러나 아히멜렉 제관은 다윗이 굶주린 것을 보자 법규를 무시하고 그 빵을 주었다.

 

예수시대 율사들은 사람의 목숨이 위태로울 때에 한해서 안식일법을 적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유다계 그리스도교계에서는 한걸음 더 나아가 사람이 굶주린 때에도 안식일법을 적용할 필요가 없다고 하면서 그 근거로 다윗의 사례를 내세웠던 것이다. 한결같이 예외 규정을 논하는 결의론이다. 그리고 아히멜렉 제관 대신 “에브야타르 대사제이라 한 것은 성경 사본이 무척 귀한 때인지라 해당 대목을 찾아보지 못하고 어렴풋이 기억해서 전하다가 생긴 착오다.

 

27 이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

-.바리사이들의 추궁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인 것 같다. 하느님이 먼저 사람을 창조한 다음에 안식일을 정하셨다는 천지창조 신화를 상기하고 그렇게 답변하셨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 여하튼 27절의 말씀은 제자들이 어느 안식일에 밀이삭을 자른 사건에 대한 구체적인 답변일 뿐 아니라 인식일의 뜻 자체를 밝히는 원칙적인 답변이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생겼지 그 반대가 아니라는 말씀으로 안식일법을 상대화하고 사람을 중요시하는 인본주의적 법이념을 내세우셨다. 요즘 말로 법률만능 사상을 물리치고 인권을 부르짖으신 것이다. 예수께서는 자주 안식일법 준수보다 인간애를 앞세우셨다.

 

28 그러므로 사람의 아들은 또한 안식일의 주인이다.”

-. 27절에서 인본주의적 법이론을 전개했던 28절에서는 그리스도론적 근거를 내세워 안식일 자체를 문제삼는다. 본디 하느님이 안식일의 주님이신데 이승의 예수님은 하느님의 전권을 받은 인자로서 안식일을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는 주님이시라는 말씀이다. 이 그리스도론적 근거는 이방계 그리스도 교회에서 덧붙인 것 같다. 사실 이방계 그리스도인들은 일찍부터 안식일(토요일) 대신 일요일(주님의 날)을 축일로 지냈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분도출판사에서 따옴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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