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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백) 2024년 4월 26일 (금)부활 제4주간 금요일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가톨릭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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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연중 제20 주일

131789 조재형 [umbrella] 스크랩 2019-08-18

지난주에는 중앙동 성당 설립 50주년 행사가 있었습니다. 교구장님께서 축하 미사를 집전해 주셨습니다. 역대 본당 신부님, 보좌 신부님, 본당 출신 신부님, 본당 출신 수도자가 함께하였습니다. 저는 중앙동 성당 출신이고, 마침 안식년을 중앙동 성당에서 지내고 있기에 축하 미사에 함께 했습니다. 다시 한번 은총과 감사의 50년을 축하드리고, 사랑과 나눔의 50년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예수님의 탄생에는 족보가 있습니다. 아브라함부터 다윗이 14대이고 다윗부터 바빌론 유배까지가 14대이고 바빌론 유배부터 예수까지가 14대라고 합니다. 지난주에 50주년을 축하한 중앙동 성당도 초대 주임신부님부터 지금 주임신부임까지가 14대입니다. 중앙동 성당의 50년은 성서에 따른 의미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무는 겉모습으로 그 크기와 역사를 알 수 있지만, 나무는 나이테로 매년 나무의 삶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50년을 축하하는 외적인 행사도 의미가 있었지만, 감사하는 마음으로 어려운 이웃을 위해 성금을 나눠준 것이 더 좋았습니다.

 

악을 뜻하는 Devil과 거룩함을 뜻하는 Divine은 같은 어원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이냐시오 성인은 영신수련에서 두 개의 깃발을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깃발에 설 것인가, 악의 깃발에 설 것인가를 늘 식별해야 하고, 선택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악한 것들이 화려해 보이고, 편안해 보이고, 좋아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알면서도, 모르면서도 악의 깃발 아래 서 있곤 합니다. 악의 깃발에는 재물, 명예, 권력이라는 달콤한 것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깃발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참된 구원을 주는, 영원한 생명을 주는 것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희생, 양보, 헌신이라는 다리를 건너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영원한 생명을 준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리스도의 깃발에 서지 못하곤 합니다.

 

우리의 목에는 두 개의 기관이 함께 있습니다. 음식물을 섭취하는 식도와 공기를 마시는 기도입니다. 음식을 섭취할 때는 자연스럽게 기도가 닫히게 됩니다. 만일 기도가 열리게 되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음식물이 기도를 막게 되면 질식할 수 있고, 음식물이 폐로 가게 되면 염증이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쩌다 음식물이 기도로 가게 되더라도 우리는 재채기를 통해서 음식물을 밖으로 내보내게 됩니다.

 

식도와 기도가 아주 가까이 있는 것처럼 선과 악도 어쩌면 우리의 마음에 가까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악한 것들이 들어오려고 하면 우리의 마음을 닫아야 합니다. 악한 것이 들어왔다면 그것을 내 마음에서 내보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영적으로 메마르게 되고, 하느님과 멀어질 수 있습니다. 선한 것들이 들어오려고 하면 우리의 마음을 활짝 열어야 합니다. 선한 것들이 들어왔다면 우리의 삶을 통해서 꽃을 피워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아들이시면서 사람의 아들이 되셨습니다. 이것은 어쩌면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를 깨버린 불법일지 모릅니다. 어떤 이들은 예수님을 만나면서 새로운 세상을 보았고, 전에는 느낄 수 없었던 참된 행복을 느꼈고, 신분과 계급의 벽에 막혀서 답답하던 이 세상에서 하느님 앞에 모든 이가 한 형제요 자매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함께라면 몸이 아픈 병자들도, 장애인으로 태어나 멸시를 받았던 사람들도, 죄인이라 손가락질을 받던 사람들도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축복임을 알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그렇게 아픈 것도, 장애인이 된 것도, 멸시를 받던 것도, 죄인처럼 살아야 했던 것도 모두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드러내기 위한 하느님의 뜻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예수님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분의 삶이 파격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사람의 아들로 태어난 것 자체가 파격입니다. 왼뺨을 때리면 오른뺨을 내어주라는 말, 친구가 오리를 가자면 십리까지도 가주라는 말,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을 자격이 있지만 섬기러 왔다는 말, 벗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는 말은 바로 파격입니다. 가난한 사람, 굶주린 사람,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 나 때문에 복음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은 행복하다는 말은 이해할 수 없는 말이기도 했습니다. 세상은 그렇게 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교회를 생각합니다. 하느님을 믿고 따르는 신앙인을 생각합니다. 교회는 신앙인들은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하고 받아들이는지 생각합니다. 지금 아프고, 굶주리고, 가난한 이들의 친구가 되어주는 교회와 신앙인들은 바로 예수님을 친구로, 예수님을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어 주는 구세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하지만 교회가 신앙인들이 이기심과 욕심 때문에 지금 가난한 이들, 굶주린 이들, 병든 이들을 외면하고 그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무늬만 교회요, 겉모습만 신자일 뿐입니다.

 

불가에서는 깨달음에 방해가 되는 것은 버려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부처가 방해되면 부처마저도 버려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불을 지르러 왔다고 하십니다. 나의 내면에 있는 악한 것들을 모두 태워야 한다고 하십니다. 근심, 걱정, 분노, 원망, 미움, 욕심이라는 쓰레기들을 태워야 한다고 하십니다. 그래야 참된 평화를 얻을 수 있다고 하십니다.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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