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GOOD NEWS 게시판

검색
메뉴

검색

검색 닫기

검색

오늘의미사 (홍) 2019년 10월 18일 (금)성 루카 복음사가 축일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가톨릭마당

sub_menu

우리들의 묵상ㅣ체험
★ 4월 6일, 첫토요일 신심의 은총

128810 장병찬 [jesus_maria] 스크랩 2019-04-06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주 우리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지극히 거룩하시고 만군의 왕이시며 살아 계신 자비의 하느님, 오늘도 저에게 생명을 주셔서 감사하며 주님의 구속사업의 도구가 되게하시고 평온한 죽음을 맞게하소서.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여!

*~*~*~*~*~*~*~*~*~*~*~*~*~*~*~*~*~*~*~*~*~*

[ 온 세상과 모든 가정에 주님의 은총이 넘치기를 기도드립니다 ] 

[ 긴 고해를 하시는 분들은 명동성당의 상설고해소를 방문하세요 ]



첫토요일 신심의 은총
( "파티마" ­/ 루치아 수녀 회고록 中)

루치아는 첫토요일 보속의 영성체에 대한 성모님의 요청에 대한 이 보고서를 3인칭으로 쓴다. 1927년 12월 17일 그녀는 티 없이 깨끗하신 마리아의 성심에 대한 신심의 기원이 지극히 거룩하신 동정녀께서 그녀에게 말씀하신 비밀 속에 포함되어 있는지에 대하여 말하라는 요구에 어떻게 따라야 할지 예수님께 여쭈어 보기 위하여 감실 앞으로 갔다.

예수님께서는 그녀가 다음과 같은 말씀을 분명히 들을 수 있게 해주셨다.
딸아, 그들이 네게 요구하는 것을 쓰도록 해라. 지극히 거룩한 동정녀께서 발현 때에 네게 알려 주신 것도 써라. 발현 때에 그분은 이 신심에 대해 말씀하셨다. 비밀의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는 계속 침묵을 지켜라.”

1917년의 이 문제에 대해 밝혀진 것은 다음과 같다.

루치아가 자기들을 천국으로 데려가 달라고 여쭈었더니 지극히 거룩하신 동정녀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그래, 히야친타와 프란치스코는 곧 데려가겠다. 그러나 너는 좀더 오래 지상에 남아 있게 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너를 통하여 내가 알려지고 또 내가 사랑 받도록 하고자 하신다. 그분은 세상에 내 티 없는 성심에 대한 신심을 불러일으키기를 원하신단다. 나는 내 티 없는 성심을 받드는 사람들에게는 구원을 약속한다. 그리고 이 영혼들은 하느님의 옥좌를 장식하기 위해 내가 꽂은 꽃과 같이 하느님께 사랑을 받을 것이다.”

“저만이 혼자 여기에 남아 있게 되나요?” 그녀가 슬피 여쭈었다.
“아니다, 딸아, 나는 결코 너를 버리지 않겠다. 내 티 없는 성심이 네 피난처가 되고 너를 하느님께로 인도하는 길이 될 것이다.”

1925년 12월 10일 지극히 거룩하신 동정녀께서 그녀에게 나타나셨는데 그분 옆으로 빛나는 구름 속에 들어 올려져 있는 한 어린아이가 있었다. 지극히 거룩하신 동정녀께서는 한쪽 손을 그녀의 어깨에 얹으시면서, 다른 손에 들고 계신, 가시로 둘러싸인 심장을 그녀에게 보여주셨다. 바로 그때 아기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가시로 덮인 지극히 거룩하신 네 어머니의 성심을 가엾게 여겨라. 배은 망덕한 사람들은 순간마다 그 가시로 어머니의 성심을 찌르는데, 그 가시들을 빼 드리기 위해 보상 행위를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구나.”

그런 다음 지극히 거룩하신 동정녀께서 말씀하셨다.
“딸아, 배은 망덕한 사람들이 불경과 배은 망덕으로 매순간 나를 찌르는 가시로 둘러싸인 내 성심을 보아라. 적어도 너만은 나를 위로하도록 힘써라. 그리고 다섯 달 동안 계속 첫 토요일에 고백, 영성체하고 묵주의 기도 5단을 하고, 또 내 성심을 거스른 죄를 보상하기 위한 지향으로 15분 동안 로사리오의 15가지 신비를 묵상하면 나와 함께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임종 때에 내가 구원에 필요한 은총으로 도와 줄 것을 약속한다고 말해 주어라.”

1926년 2월 15일 영해 예수님께서 다시 그녀에게 나타나셨다. 예수님께서는 그녀에게 당신의 지극히 거룩하신 어머니께 대한 신심을 전파했느냐고 물으셨다. 그녀는 고해 신부의 어려움에 대해 말씀드리고, 또 원장 수녀는 그것을 보급시킬 준비가 되어 있지만 고해 신부가 그녀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하였다고 말씀드렸다.
예수님께서는 대답하셨다.
“너의 장상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내 은총으로 그녀는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

그녀는 예수님께 어떤 사람들은 첫 토요일에 고백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여쭙고 나서 처음 8일 중에 아무 때나 고백하러 가도 괜찮으냐고 여쭈었다.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다.
“그렇다. 그들이 나를 받아 모실 때 은총 상태에 있고, 또 티 없이 깨끗하신 마리아의 성심을 보상하기 위한 지향만 갖고 있다면 좀더 지나서 가도 괜찮다.”

그래서 그녀는 다시 여쭈었다.
“나의 예수님, 그 지향을 세우기를 잊어버린 사람들은 어떻게 됩니까?”

예수님께서는 대답하셨다.
먼젓번 기회 때의 효력이 다음 고해 때로 물려져서 그들은 다음 고해 때 그렇게 할 수 있다.”

※ 다섯달 동안 계속해서 매달 첫 토요일에
       ① 고백성사 (첫토요일 전후로 일주일 이내에 하면된다)
       ② 영성체,
       ③ 묵주기도 5단을 바치고,
       ④ 성모님 성심을 거스른 죄를 보상하기 위한 지향으로
           성모님과 함께 15분동안 로사리오의 15가지 신비를 묵상


※ 성모 성심을 거스른 죄 :
이 말씀에서 우리가 성모님의 성심을 거슬러 지은 죄의 양상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첫째, 원죄없이 잉태되심을 부인하는 것.
     둘째, 성모님께서 하느님의 모친이심을 부인하는 것.
     셋째, 성모님의 영원한 동정성을 부인하는 것.
     넷째, 성모님께 대한 신심으로부터 어린이들을 소외시킨 것.
     다섯째, 성모상을 불명예스럽게 하는 것이다.


* 루치아 수녀 :
1917년 5월 13일 포르투갈 파티마의 코바 다 이리아에서 성모발현 당시 이를 목격한 세 어린목동 중에 한 분으로 2005년 2월 13일 선종하셨다.


 




나는 너를 사용하겠다

(가톨릭출판사 / '성심의 메시지' 중에서)

 


너희 영혼들이 나에게 충성을 바치겠다고 간청하면, 나는 나의 자비로 너희 허물을 감싸주고, 허약한 너희들의 버팀목이 되어, 힘차게 활동하도록 지원하겠다.

다만 나에게 충성을 받칠 때에는, 너희 자신들을 잊어버리고 겸손한 마음으로 정진할 것을 당부한다.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하지 말고, 오로지 나의 영광을 위해 활동해야 한다.

나약하기 때문에 잘못을 저지른 영혼들을 흔쾌히 용서하는 나의 성심을 너희가 과연 얼마나 알 수 있겠느냐? 내가 너희들을 바라보며 눈을 떼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너희들이 매우 허약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나는 너희 영혼들을 나의 마음 한 가운데에 가두어 두려고 한다.

너희를 사랑하는 나의 애정은 한량이 없다. 너희가 허물이 많고, 공적도 없고, 덕성이 부족해도 나는 상관하지 않겠으며, 오히려 나의 사랑과 자비를 많은 영혼들에게 알리는 일에 종사하도록 너희들을 기용하겠다.

아직도 나의 자비로운 마음을 모르고 있는 영혼들이 무수하게 많이 있다. 이들 뿐만이 아니라 모든 영혼들이 하루 속히 깊고 깊은 자비의 못 속에 들어와 잠겨 주었으면 하는 것이 나의 유일한 소원이다.

나는 너희를 구원한 구속자(救贖者)이며 너희의 천상적 짝이다. 나의 이 말을 체득하여 감격하는 영혼이 적어 한탄스럽다.

내가 너희들에게 시키는 사업은 모든 영혼들의 구원을 위한 사업이다. 자기 자신을 나에게 헌신하고 있는 너희 영혼들이 세상을 구원한 구속자의 짝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면, 죄인들을 회개시키는 일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구속자이며 너희의 짝이라는 점을 너희 마음속에 깊숙이 새겨두지 않으면, 가장 귀중한 보배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나의 성심이 너희를 사랑할 때, 나는 너희의 미약함을 문제삼지 않는다. 오히려 허약한 너희들이 안쓰럽고 불쌍하여 너희를 더욱 더 사랑한다. 나는 너희 자신이 가련한 존재임을 깨닫게 해주는 태양이다. 따라서 너희의 처지가 빈약하고 가련할수록 너희는 나에게 더 큰 사랑과 애정을 바쳐야 한다.

너희 영혼들이 아무 결실도 낼 수 없는 황폐한 땅이라고 한다면, 나는 그 땅을 개간하여 옥토로 가꾸어 내는 능력있는 농부이다. 먼저 햇빛을 보내어 그 땅을 정화시킨 다음에 내 손으로 직접 씨를 뿌리겠다.



(가톨릭출판사 / '성심의 메시지' 중에서)





자비로운 나의 마음을 의심하지 말아라

(가톨릭출판사 / '성심의 메시지' 중에서)


신뢰

너희의 죄악!
내가 모두 태워 없애겠다.
너희들이 당하고 있는 어려움과 고통!
내가 모두 소멸시켜 버리겠다.
너희들의 나약함!
내가 나의 능력으로 버티어 주겠다
.

너희 영혼들이 가련하면 할수록 나의 능력으로 너희를 지탱할 수 있도록 받쳐 주겠다. 나의 은총으로 너희를 부유하게 하겠으며, 너희가 나에게 충실하면, 너희를 나의 거처로 삼겠노라. 죄인들이 나를 배척하고 괴롭히면, 나는 너희 안으로 피난하여 쉴 터이니, 그때 너희는 나와 함께 살게 될 것이다.

너희 영혼들의 마음이 가련함으로 가득한 깊은 물 웅덩이라면, 나의 마음은 자비와 선량(善良)이 가득 담긴 깊은 못이다. 따라서 나의 마음은 너희들이 찾아와 의탁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너희에게 부족하고 아쉬운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나의 마음 안으로 들어와 찾아라. 내가 너희에게 요구하는 것도 나의 마음 안에 있으니 찾아보아라.

너희 자신이 미소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지 말고, 너희를 밀어주고 있는 내 마음의 능력을 믿고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바로 너희들의 힘이며, 너희들의 죄과를 대신 보속하고 있다.

너희가 내 손안에 있는데 무서워할 것이 무엇이냐? 자비로운 나의 마음을 의심하지 말고, 
너희를 사랑하는 나의 애정에 대하여 의혹을 품지 말아라. 너희 영혼들이 하도 가련하니, 나의 마음이 자꾸 너희에게로 끌리는구나. 내가 없으면, 너희가 무엇인들 제대로 할 수 있단 말이냐?

너희 자신을 스스로 낮추어 작은 존재가 될수록 나는 너희에게 가까이 간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라. 너희가 잘못을 저지른 데 대하여 쓸데없는 걱정은 하지 말아라. 내가 너희를 거룩하게 만들기에 부족한 것은 전혀 없다.

내가 너희 영혼에게 당부하고자 하는 것은 내가 너희에게 베푸는 것을 절대로 거절하지 말아 달라는 것 뿐이다. 나는 너희가 스스로 작아지고 빈 털털이가 될 때, 너희를 찾아와 나와 결합시키련다.

너희들이 미소하고 궁색하기 때문에 나의 시선은 자석에 끌려가듯 너희들에게 집중되고 있다. 너희가 아무 보잘것 없는 존재라고 해서 결코 낙담하지 말아라. 너희가 약점이 많으면 많을수록 나는 더 많은 자비를 너희에게 베풀어 주겠다.

나의 성심은 너희 영혼들을 용서하는데서 위로를 찾는다. 너희를 용서하는 것보다 더 큰 즐거움은 없다. 죄를 저지른 다음, 나를 찾아와 용서를 비는 영혼은 나에게 큰 위로를 주는 영혼이다. 내가 이 영혼에게 나의 뜨거운 애정을 베풀어 줄 터이니 이 영혼은 큰 이익을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영혼이 나를 현양하기를 소원한다면, 그가 저지른 잘못을 문제삼지 않겠으며, 오히려 그가 다른 많은 영혼들을 위해 일할 수 있도록 풍부한 은총을 베풀어 주겠다.



(가톨릭출판사 / '성심의 메시지' 중에서)





예수님이 불쌍한 나를 부르신다

(가톨릭출판사 / '성심의 메시지' 중에서)

 


나의 마음을 바라보아라. 나의 마음이 바로 너희가 묵상할 때에 사용하는 책이다. 너희에게 모든 덕을 가르쳐 주겠으며, 무엇보다도 나의 영광과 다른 영혼들의 구원을 위해 너희가 지녀야 할 열성에 대하여 일깨워 주겠다. 나의 속을 잘 들여다 보아라. 나는 미천하고 불쌍한 영혼들의 피난처이다. 따라서 나는 너희들의 피난처이다. 너희 말고 다른 불쌍한 영혼이 또 어디에 있단 말이냐?

나의 성심을 다시 찬찬히 살펴보아라. 나의 성심은 죄악으로 얼룩진 마음들을 정화시키고 뜨겁게 달구는 용광로이다. 어서 나의 마음에 가깝게 다가오너라. 나의 용광로 속에 너의 온갖 고뇌와 죄의 얼룩을 집어넣고, 너희들의 구원자인 나를 믿고 완전히 의탁하여라. 나의 마음에서 너희의 시선을 떼지 말아라.

나의 마음은 생명수가 솟아 나오는 샘터이다. 이 샘터로 나와 생명수를 실컷 마셔라. 모든 영혼들이 와서 이 생명수로 갈증난 목을 적시기 바란다.

어서 나의 마음 안으로 깊숙이 들어오너라. 미소한 너희 혼자 들어오기가 송구하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주춤거리지 말고 어서 빨리 들어오너라. 내가 주는 은총의 물을 마시고 그 은총을 활용하여라. 내가 너희 안에서 활동하고 있으므로, 미소한 너희들은 내가 하는 대로 맡겨두고 가만히 있으면 된다.

"나는 착하다."

이 점을 제대로 인식하려면 단 한가지가 필요하다. 너희가 내적으로 나와 결합된 생활을 하는 것이다. 만일 너희 영혼들이 나와 결합하여 생활한다면, 나에 대해 모르는 것이 있을 수 있겠느냐? 높은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나와 너희가 어떠한 일을 하고 있는지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너희 영혼들이 나와 결합하여 생활하는 것이 최상의 삶이라는 것을 그 즉시 깨닫게 될 것이다.내가 하느님의 은총을 가지고 너희 안에서 살고 있으므로 너희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친밀하게 결합된 삶을 영위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선택한 너희 영혼들이 이와 같은 삶을 살면서 진정으로 나를 알게 되면, 나를 모르고 있는 영혼들과 나로부터 멀리 떠나 있는 영혼들을 위해 어떠한 선행인들 못할리 있겠느냐? 나와 밀접히 결합하면, 내가 죄인들로부터 마음 상하는 일을 얼마나 많이 당하고 있는지 잘 알게 될 것이다. 또한 나의 속정(情)을 샅샅이 알게 될 것이고, 나를 위로하며, 다른 영혼들을 대신하여 보속하려 할 것이다. 너희가 나의 자비심을 신뢰하게 되면, 하느님께 용서를 빌 것이고, 세상 영혼들을 위해 은총을 베풀어 달라고 나에게 간청할 것이다.

너희 영혼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은 이미 나의 마음 안에 들어와 내가 착하다는 사실을 파악했기 때문이며, 내가 너희를 사랑하는 이유는 너희가 미소하고 약한 존재이면서도 그 미소하고 미약한 너희 자신을 내게 바쳤기 때문이다.



(가톨릭출판사 / '성심의 메시지' 중에서)

 




주님, 용서해 주소서


믿음과 사랑의 부족, 그리고 당신의 자비에 대한 의탁의 부족을
주님, 용서해 주소서.
당신의 은총에 반항하고 당신의 뜻에 반대하는 비틀거리는 그리스도인들을
주님, 용서해 주소서.
봉사에 냉담하거나 게으르고 나태함을
주님, 용서해 주소서.
의무축일과 주일에 미사에 참례할 의무를 가볍게 받아들임을
주님, 용서해 주소서.
단식을 게을리하고 먹고 마시는 것에서 절제의 부족을
주님, 용서해 주소서.
부모들과 그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 불순종하고 무례하였던 것을
주님, 용서해 주소서.
자녀들의 양육에 소홀함을
주님, 용서해 주소서.
낙태와 인간생명에 대한 존경의 부족을
주님, 용서해 주소서.
삶 속에서 방탕하거나 정숙함의 부족을
주님, 용서해 주소서.
부모와 배우자의 과실들을
주님, 용서해 주소서.
성냄, 증오, 그리고 질투의 죄들을
주님, 용서해 주소서.
이웃에게 피해를 주었던 일들, 이웃의 소유와 명예에 해를 입혔던 일들을
주님, 용서해 주소서.
사랑의 부족과 희생정신의 부족을
주님, 용서해 주소서.
자만, 폭식, 탐욕들을
주님, 용서해 주소서.
성직자와 거룩한 계층의 사람들에 대한 존경의 부족을
주님, 용서해 주소서.
참회의 성사를 부주의하게 받음을
주님, 용서해 주소서.
성사들을 거행하거나 받음에서 경솔함(주의깊지 못함)을
주님, 용서해 주소서.
하느님의 자비를 기대하면서 범한 대담한 죄들을
주님, 용서해 주소서.
우리가 심취하는 것에 빠짐과 고행의 결핍을
주님, 용서해 주소서.
나약함과 정의와 거룩함에서 
어짐을

주님, 용서해 주소서.

주님, 용서해 주소서.
주님, 용서해 주소서.
주님, 용서해 주소서.

(자비가 풍성하신 하느님 / 가톨릭출판사)

 




나를 '아버지'라고 불러 보아라

(가톨릭출판사 / '성심의 메시지' 중에서)

 


내가 너희 영혼들에게 당부하고자 하는 것은 내가 너희에게 베푸는 은총을 발휘하라는 것이다. 그대신 내가 너희 영혼들 안에서 행동할 수 있도록 너희 마음을 활짝 열어 놓아야 한다. 나의 시선을 너희를 향하여 고정시켜 놓았으니, 너희들도 너희 시선을 나에게 주고 떨어지지 않게 하여라. 너희가 미약하고 허무한 존재라는 것을 나는 상관치 않겠으며, 죄인이라 할지라도 문제삼지 않겠다.

나의 성혈이 너희의 약점과 죄악을 소멸시켜 주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로지 내가 너희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너희가 알아주는 것만으로 족하다. 사랑을 위해 너희는 너희 자신을 끊어버려라.

진심으로 자기자신을 나에게 바치는 영혼들이 나를 얼마나 기쁘게 하는지 아느냐? 이런 영혼들에게 죄과와 허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들 안에 들어가 나의 천국을 삼고, 그들과 함께 사는 것을 가장 큰 낙으로 여긴다. 너희가 모든 것을 나에게 바치고 내 안에 들어오면, 너희가 원하는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얻을 수 있다.

나는 나를 사랑해 주는 마음을 찾는다. 다른 영혼들을 위해 대신 보속하는 영혼을 찾는다. 자기 자신을 나에게 봉헌하는 영혼을 찾는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끊어버리는 영혼을 우선 먼저 찾는다. 눈을 감고 내가 인도하는 대로 따라 오너라. 나는 너희들의 아버지이며, 너희를 인도하고 안내하기 위해 나의 눈은 항상 열려있다.

너희가 나를 아버지라고 불러줄 때, 내 얼굴에 기쁜 화색이 돌고, 나의 마음은 너희를 돌보아 주려는 원의(願意)가 일어난다. 어린 아이가 말을 트기 시작하여 '엄마', '아빠'를 부르며 재롱을 부리면, 그 부모는 어쩔 줄 몰라 한다. 어떠한 행복과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하여, 사랑의 정으로 팔을 벌려 아이를 품에 안는다.

세상의 아버지나 어머니의 사랑이 이와 같은 데, 아버지이면서 어머니이고, 하느님이면서 창조주이고, 구세주이면서도 너희 영혼들의 짝이 되어주는 나의 사랑은 어떠하랴! 사랑의 정이 넘쳐흐를 정도로 가득한 나의 초월한 마음을 그 어느 것과 비교할 수 있단 말이냐!

사랑하는 영혼들아! 너희가 근심과 고통 중에 방황할 때 나에게 달려와 나를 '아버지'라고 부르며, 나의 마음 안으로 들어와 휴식을 취하여라. 너희가 다른 일을 하느라 나에게 구구절절 아뢸 수 없으면, 다만 '아버지'하고 마음속으로 불러 보아라. 그러면 내가 너희를 붙잡아 도와주겠으며, 너희를 올바른 길로 인도하여 위로 받으며 쉴 수 있게 해주겠다.



('성심의 메시지' 중에서, 가톨릭출판사)





사랑과 완전한 의탁을 요구한다

(가톨릭출판사 / '성심의 메시지' 중에서)

 


내가 너희들 안에서 즐겁게 살수 있도록 해다오. 내가 너희들 안에 살며 나의 존위(尊威) 때문에 미약한 너희들의 지위가 존귀하여 질것이다.


우리 항상 함께 일하자꾸나. 나는 너희 안에 살고 너희는 내 안에 살아라. 나의 성심이 너희가 해야할 모든 일을 도맡아 해주겠다. 자비를 베풀어 주겠으며 나의 사랑으로 너희의 미약하고 보잘 것 없는 존재를 모두 하느님의 것이 되게 하겠다. 내가 너희 안에 들어가 너희 생명으로 자리 잡으면, 너희는 더 이상 미약한 존재가 아니다. 너희 안에 내가 머물고 있으므로 너희는 내가 쉬는 천국이 될 것이다.


할 말이 있으면 언제든지 나에게 말하여라. 내가 너희와 함께 있질 않느냐? 나를 보지 못한다고 너희 혼자 있다고 여기지 말아라. 나는 너희 안에서 너희 말을 듣고 있다. 나에게 말을 걸고 나에게 너희 미소를 보내다오. 이제 나와 너희들은 갈라설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너희는 미약한 존재이므로 나의 뜻에 따라 주어야 한다.


나는 너희에게 사랑과 완전한 의탁 이 두가지를 요구한다. 이것 외에 요구할 것은 없다. 빈 그릇처럼 너희 자신을 완전히 비워놓아라. 그래야만 내가 너희의 빈 그릇을 채워줄 수 있지 않겠느냐? 양(量)을 따지지 말고 사랑하고 너희를 만드신 창조주께서 빈 그릇 뿐인 너희를 차지하시게 하여라.


너희는 빈한(貧寒)하나 나는 부유하다. 너희는 나약하나 나는 강한 힘 그 자체이다. 그러니 내가 너희 영혼들에게 요구하는 것을 무엇이든 간에 거절해서는 안 된다. 부유한 내가 너희를 보호하고 강한 내가 미약한 너희를 다시 일으켜 세울 터이니, 너희는 너희 자신을 나에게 완전히 바쳐라. 내가 모든 것을 다 대신 해 주겠다.


나의 성심이 받고 있는 고통, 그 중에서도 나에게 자신들을 봉헌한 영혼들이 나에게 주는 고통을 진정시키고 나를 위로하려면, 아주 사소한 것까지 모두 나에게 바쳐라. 너희가 나의 마음 안에 들어와 아무런 두려움 없이 편안하게 쉴 수 있도록 하겠다.


나의 성심을 바라보아라. 너희의 불완전한 모든 것을 불살라 없앨 수 있는 나의 능력이 어떠한지 알게 될 것이다. 너희 자신을 나의 마음에 완전히 의탁하고 나의 성심에 일치시키려고 노력하는 것 외에 다른 일을 시도하지 말아라.


내가 너희들의 아버지이고, 너희들의 구세주이며, 너희들의 하느님임을 항상 명심하고 있어라. 그러므로 사랑의 깊은 못인 나의 마음 안에 들어온 이상, 무서워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가톨릭출판사 / '성심의 메시지' 중에서)





태아를 위한 기도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 아버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돌봐주신 은혜에 감사드리나이다.
당신은 몸소 창조하신 모든 사람들의 아버지이시니
오늘날 낙태 위협을 받고 있는 태아들을 지켜주소서.

모든 젊은이에게 순결한 마음을 주시고,
헛된 이기심으로 태아의 생명을 경시하는
현 세대의 그릇된 풍조에서 부모들을 구해주시며,
모든 어머니들을 바른 길로 이끄시어
언제나 어디서나 헌신의 모성애를 지키게 하소서.

또한 모든 사람이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고,
어떠한 처지에서든지 아버지 당신의 뜻을 따라
생명의 존엄성을 수호하게 하여주소서.

우리 잘못으로 죽어간 태아들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영원한 안식에 들게 하시고,
자녀를 낙태시킨 우리의 잘못을 진심으로 통회하오니,
지극히 인자로우신 당신의 자비로 용서하여 주소서.

또한 당신이 주신 고귀한 생명을 지키기 위하여 온 힘을 다 기울이도록
우리에게 참된 지혜와 용기를 주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아멘.




미사 성제와 연옥 영혼들

(성체 성사의 예수님께 대한 사랑)


"예수께서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위하여 당신을 희생하셨다" (갈라티아 2,20)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났을 때에는 우리의 영혼을 위하여 미사 성제보다 더 간절히 원하는 것이 없을 것이다.  제대 상에서 바쳐지는 미사 성제는 가장 강력한 중재(仲裁)의 기도이다.  그것은 다른 모든 기도와, 보속과, 선행보다 우월하다.  우리가 미사의 희생 제사가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바치신 희생과 같으며, 예수님께서 무한한 속죄의 가치를 지닌 바로 그 제사를 지금 제대 상에서 바치신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어째서 미사 성제가 그처럼 강력한 기도가 됨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희생 제물로 죽임을 당하신 우리의 예수님께서는 참으로 "우리의 죄를 보속하는"(1요한 2,2) 희생 제물이시며, 그분의 신성한 피는 "죄값을 치루기 위하여 쏟아져나왔다" (마테오 26,28).  미사 성제와 견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으며, 이 희생 제사의 구원하는 열매들은 무제한 숫자의 영혼들에게 주어질 수 있다.


"모든 빚이 갚아져야 한다!"

로마 근교의 트레 퐁따네 (Tre Fontane)에 있는 성 바오로 성당에서 미사 성제를 거행하고 있던 성 벨라도는 천국에 이르는 끝없는 계단을 보았다.  그 계단 위로는 수많은 천사들이 전 세계의 사제들이 바치는 희생 제사, 즉 예수님의 희생에 의하여 연옥으로부터 해방된 영혼들을 천국으로 데려가느라고 오르락 내리락 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가족이나 친적 중에 누가 세상을 떠나면, 우리는 꽃을 진열하고, 장례식 때 입을 옷을 준비하고, 장례 행렬을 준비하는 것보다 미사 성제를 바쳐드리는 데에 훨씬 더 많은 비중을 두어야 한다.
성 요한 보스꼬는 말하기를 "미사의 거룩한 희생 제사는 연옥의 불쌍한 영혼들을 도와줍니다.  사실 미사는 그 영혼들의 고통을 덜어주며, 그들이 고통받는 기간을 단축시켜주며, 그들을 빨리 복된 왕국으로 데려다주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입니다."라고 하였다.

비오 신부께 연옥에서 풀려나도록 미사를 바쳐달라고 부탁하기 위하여 연옥의 영혼들이 발현했던 적이 많았다.  하루는 신부께서 동료 수사의 아버지를 위한 미사를 바쳤는데, 미사가 끝난 후에 비오 신부는 그 수사에게 말했다. "오늘 아침 그대 아버님의 영혼은 천국으로 들어가셨다."
그 수사는 매우 기뻤으나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러나 신부님, 저의 착하신 아버님께서는 32년 전에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비오 신부는 대답했다. "나의 아들아, 하느님 앞에서는 모든 빚이 갚아져야 한다!"
그리고 미사 성제는 우리에게 무한한 가치의 보물을 얻어준다. 즉, 티없는 어린 양(묵시록 5,12)이신 예수님의 성체와 성혈이다.

아르스의 성인 신부는 어느 날 강론을 하면서 어느 신부가 죽은 자기 친구를 위하여 미사 중에 다음과 같은 기도를 바쳤음을 말해주었다. 
"거룩하시고 영원하신 성부여, 하나의 교환을 하십시다.  당신께서는 제 친구의 영혼을 소유하고 계시고, 저는 당신 성자의 몸을 제 손 안에 들고 있습니다.  제 친구를 풀어주십시오.  그러면, 저는 당신께 당신 아드님을 그분 수난과 죽으심의 모든 공로와 함께 바쳐드리겠습니다."


"미사만이 필요합니다!"

다음과 같은 사실을 기억하자.  즉 하느님께 바쳐드리는 모든 기도와 선행이 좋고 훌륭하지만, 우리에게 가까운 이들의 떠나간 영혼들을 위하여 가능하면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미사들을 바쳐드리도록 하자.

수소(Suso)의 복자 헨리의 생애에서 우리는 그분이 젊었을 때 동료 수사와 다음과 같은 약속을 했음을 읽을 수 있다.  즉, "우리 중에 누가 더 오래 살든지, 먼저 떠난 사람이 빨리 영광 속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매주 한 번씩의 미사 성제를 바쳐드리기로 하자."  그리고 복자 헨리의 친구가 선교지에서 먼저 세상을 떠났다.  복자 헨리는 그 약속을 잠시 동안 기억했지만, 다른 이들을 위해 바쳐야 할 미사들이 있었기 때문에 친구를 위해서는 미사 대신 다른 기도들과 보속을 바쳤다.  그런데 친구의 영혼이 발현하였는데, 매우 괴로운 모습이었으며 친구를 책망하였다.
"그대의 기도들과 보속들은 충분하지 않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예수님의 성혈이다."  참으로 우리의 죄의 빚은 예수님의 성혈로 갚게 되는 것이다 (콜로새 1,14).

아빌라의 성 요한의 임종 때에 그의 동료 수사들은 그가 세상을 떠난 후 무엇을 가장 원하느냐고 물었다.  성인은 재빨리 대답하였다.
"미사들. . . 미사들. . . 미사들 외에는 아무 것도 필요없습니다!"

또한, 성 예로니모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매번의 미사가 경건히 바쳐질 때마다, 많은 영혼들이 연옥을 떠나서 천국으로 날아갑니다."

유명한 갈멜회의 신비가, 빠찌의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는 연옥 영혼들을 위하여 예수님의 성혈을 봉헌하는 습관이 있었다.  그녀의 탈혼 중에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보혈이 바쳐짐에 의하여 많은 연옥 영혼들이 풀려나는 것을 보여주셨다.

성녀 벨라데따 역시 연옥 영혼들을 매우 측은히 여기면서 동료 수녀들에게 자주 말했다. "저는 방금 연옥 영혼들을 위하여 미사에 참례했습니다. 그들을 해방시킬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의 보혈 뿐입니다." 
그렇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한 방울의 성혈이 무한한 가치를 가지며 온 세상을 그 죄로부터 구할 수 있다."라고 가르쳤다.

그러므로, 연옥 영혼들을 도와주며 그들이 고통에서 풀려나도록 많은 미사들에 참례하고 또 많은 미사들을 바쳐드리도록 하자.
아르스의 거룩한 신부는 "모든 선행들을 한데 모아도 한 번의 미사의 가치를 따라가지 못합니다.  왜냐 하면 선행들은 사람들의 행위이지만, 미사 성제는 하느님의 역사(役事)이기 때문입니다."라고 하였다.

(성체 성사의 예수님께 대한 사랑)





예수성심 한가운데로

(가톨릭출판사 / '성심의 메시지' 중에서)

 


내가 영혼들을 위로하면, 나를 반기고 기꺼이 성체를 영하여 나를 받아들이지만, 내가 십자가를 지고 그들의 문을 두드릴 때, 문을 열고 반갑게 맞이해 주는 영혼은 극히 소수이다. 십자가를 지면서 자기 자신을 희생하는 영혼들이야말로 바로 나를 현양하는 영혼이며, 나와 가장 가까운 영혼이다.


나를 알지 못하는 영혼들이 많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나를 잘 알고 있으면서도 자기 이익과 즐거움만 찾으며, 나를 보고도 본체만체 하는 영혼들이 더 많이 있다. 이러한 영혼들은 감정적인 영혼들이다. 자기 이익과 즐거움이  있을 때만, 그들은 나를 찾아온다. 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나를 찾지 않고, 자기 즐거움을 위해 나를 찾는다면, 나의 사랑을 얻는데 실패한 영혼이 될 것이다.


나의 길은 고통과 십자가의 길이므로, 이러한 영혼들은 나의 길에 들어 설 용기도 없을 뿐만이 아니라, 끝까지 나를 따를 의사가 전혀 없는 영혼들이다. 사랑만이 나를 끝까지 따라 나설 용기를 준다. 그래서 나는 사랑, 사랑하며 사랑타령을 하는 것이다. 둘이 서로 사랑할 때에는 둘 중 한 사람이 조금만 시큰둥해 하면, 마음에 상처를 입게 된다. 나의 마음도 이와 똑같다.


나와 가까와지려면, 사랑을 위해 내가 요구하는 것을 절대로 거절해서는 안된다. 만일 너희 영혼들이 나를 사랑하는 일에 충실하면, 나는 너희를 평화롭게 하겠다. 또한 너희를 홀로 버려 두지 않을 것이며, 내가 너희 안에 살고 있으므로 미약한 영혼들 중에서 너희는 위대한 영혼이 될 것이다.


나의 성심은 너희 영혼들에게 내 자신을 건네주고, 너희와 항상 함께 살고 싶어한다. 아! 너희 영혼들이 너희 마음을 나에게 열어 보이고, 나의 성심 한가운데 들어와 살기를 내가 얼마나 원하고 있는지 알고 있느냐?


나의 성심을 태우는 불길 속에 너희 마음도 타 들어가 강하고 용감한 영혼이 되어준다면 내가 얼마나 기뻐하겠느냐? 이렇게만 해준다면 그때에는 나는 너희 영혼들이 원하는 대로 너희들의 소유가 되어주겠다.


내가 아버지가 되주기를 원한다면 아버지가 되어 주겠고, 짝이 되어 달라면 짝이 되어 주겠다. 또한 힘을 달라면 힘을 주겠고, 위로하여 달라면 위로하여 주겠다. 달라고 하면 무엇이든지 다 털어 주겠다. 나의 성심이 너희 영혼들에게 주려고 미리 준비해 놓은 모든 은총을 너희들에게 다 쏟아 부어 주겠다.



('성심의 메시지' 중에서)





나를 사랑한다고 말해다오

(가톨릭출판사 / '성심의 메시지' 중에서)

 


나의 성심을 세심하게 파악하여 나의 마음을 배우고, 나의 마음을 사랑하는 법을 터득하여라. 참사랑은 겸손되고, 언제나 기꺼이 베풀며 자유롭다. 만일 너희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법을 나에게 배우고 싶다면, 먼저 너희 자신을 잊어버리는 일부터 시작하여라.


너희에게 어렵고 힘에 부치는 일이 맡겨지면, 주저하지 말고 받아들이고, 너희를 괴롭히는 것을 원망의 눈초리로 쳐다보지 말며, 너희 구미에 맞는 것은 아예 생각조차도 하지 말아라.


사랑하는 마음을 갖추어라. 그러면 강한 힘을 얻게 될 것이다.


"나의 하느님, 당신을 사랑하나이다"라고 말하면, 다 사랑이 된 줄로 알고 있는 영혼들이 많이 있다. 절대 그렇지 않다. 사랑은 따뜻하고 부드럽지만, 행동이 있어야 진정한 사랑이 된다. 일할 때나 쉴 때에도, 고통을 받고 무시 당할 때에도, 위로 받을 때나, 기도를 드릴 때에도 항상 따뜻하고 부드러운 사랑으로 행동하여라.


너희 사랑을 행동으로 실천하여 나에게 그침 없이 보여주기 바란다. 사랑은 멀리 있지 않고 바로 이 자리에 있다. 너희 영혼들이 이 점을 깨달아 완덕의 길로 하루 속히 나아갈 수 있다면, 나의 마음은 더할 나위 없는 위로를 받게 될 것이다.


나를 사랑한다고 말해다오. 이 말은 사랑의 기갈(飢渴)을 느끼고 있는 나의 성심을 위로하는 말이 된다. 나는 사랑받고 싶어하는 나의 열정의 불 속에 너희 영혼들이 불태워지기 바라고 있다. 너희 마음속에도 나와 같은 열정이 있어야 한다. 나의 성심을 들여다보고, 나의 마음을 태우는 불을 잘 살펴보아라. 이 불은 내가 사랑하는 영혼들, 특히 내가 뽑은 너희 영혼들을 태우는 사랑의 불길이다. 나는 너희 영혼들을 위해 나의 성심 안에 너희를 위한 특별한 자리를 마련해 놓았다.


어서 나의 마음속으로 들어와 달콤한 나의 사랑을 맛보고, 내 성심의 평화를 취하여라. 그리고 너희 마음을 나의 사랑의 불속에 넣어 불타게 하여라. 나의 고독한 시간, 근심, 고통도 나와 함께 나누어야 한다. 나를 무시하고 천대하며 박절하게 대하는 많은 영혼들을 대신하여 나와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되어 나만을 사랑하여라.


사랑만 있다면 어떠한 어려움도 문제가 될 것이 없다. 사랑하는 영혼은 상대를 대신하여 고통받기를 원한다. 고통은 사랑을 자라게하며, 그 사랑과 고통으로 하느님께 친밀하게 결합되어 하느님과 하나가 될 수 있다.



(가톨릭출판사 / '성심의 메시지' 중에서)

 




매일의 미사 성제

(성체 성사의 예수님께 대한 사랑)



"예수께서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위하여 당신을 희생하셨다"(갈라티아 2,20)


미사 성제가 무한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이는 성인들이 매일 때로는 가능하면 매일 몇 번씩 미사에 참례하기를 왜 그리도 열렬히 원했고 노력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하루는 삐에트렐치나의 비오 신부가 고해하러 온 이에게 말했다.
"만약 사람들이 미사 성제의 가치를 이해한다면, 미사 때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성당으로 몰려와서 경찰의 동원이 필요하게 될 것입니다."

아마 우리들도 미사 성제의 가치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수많은 크리스챤들 중에 속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인들이 매일의 미사 또는 매일 몇 번의 미사에 참례하게끔 그들을 이끌었던 열정이 우리에게는 결핍되어 있을 것이다.


숨겨진 종(鐘)

성 아오스딩은 자기의 어머니, 성녀 모니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칭송을 하였다. "오, 주님, 저의 어머니께서는 당신의 제대에서의 신성한 제사에 참례하지 않고 보낸 날은 단 하루도 없었습니다."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꼬는 보통 하루에 두 차례의 미사에 참례하였다. 그리고 자신이 병들었을 때에는 수사 신부 한 분에게 부탁하여 자기 방 안에서 미사를 바쳐달라고 부탁하였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매일 아침 미사를 바친 후에 감사를 위한 또 한 번의 미사에서 복사하였다.

목동이었던 성 파스칼 바일론은 양을 돌보느라고 자기가 원했던 것만큼 자주 미사에 가지를 못하였다.  그러나 미사의 시작을 알리는 성당 종소리가 들릴 때마다 그는 양들 사이의 풀밭에서 나무를 깎아 만든 십자가 앞에서 꿇었다.  이렇게 멀리서 미사를 바치는 사제를 따랐다.  이 얼마나 다정함에 찬 성인이며, 성체께 대한 대천사와 같은 사랑인가?  임종에 가까워 그는 미사를 알리는 종소리를 듣고서 동료들에게 속삭였다.
"나는 나의 불쌍한 생명을 예수님의 희생과 일치할 수 있으니 기쁩니다." 그리고 성체 축성 시각에 숨을 거두었다.

성 요한 베르크만스가 아직 어린 소년이었을 때, 그는 매일 새벽 동이 트자말자 집을 나서서 성당으로 갔다.  하루는 그의 할머니가 왜 그렇게 매일 일찍 나가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학교 가기 전에 하느님의 축복을 받기 위하여 세 번의 미사에 참례하러 갑니다."라고 하였다.

성 베드루 쥴리안 에이마르가 어릴 때 이미 미사 성제에 참례하는 것을 좋아하였다.  그 당시 그가 살던 지방에서는 다음과 같음 풍습이 있었다. 즉 미사에서 복사하려는 소년은 아침 일찍 사람들을 깨우기 위하여 작은 종을 울리면서 약 15분 간씩 마을을 돌아다녀야 한다는 것이었다.  어린 베드루 쥴리안은 다음 날 미사에서 꼭 복사할 수 있기 위하여 전날 저녁에 작은 종을 숨겨놓곤 하였다.

8명의 자녀를 두었던 스코틀랜드의 여왕 성녀 말가리따는 매일 미사에 갔으며 그녀의 자녀들을 데리고 갔다.  자녀들이 미사 경본을 귀중하게 여기게 하기 위하여 그 작은 경본들을 손수 보석으로 장식해주었다.


"비효율적인 시간 사용"

우리의 하루 일과를 잘 꾸려감으로써 미사에 갈 수 있는 시간을 내도록 하자.  너무 바쁘다는 말을 하지 말자.  이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들에 대해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단 한 가지이다" (루카 10,41-42).

우리가 진정으로 원한다면, 우리의 의무들을 소홀함이 없이 미사에 갈 시간을 낼 수 있을 것이다. 성 요셉 꼬똘렝고는 모든 이들에게 매일 미사를 권했다.  즉 선생들, 간호부들, 노동자들, 의사들, 그리고 부모들에게.
시간이 없다고 하면서 항의하는 사람들에게 성인은 단호하게 말하였다. "시간을 잘못 쓰는 거예요!  시간을 비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성인은 이것이 대개의 경우 사실임을 알고 있었다. 만약 우리가 미사 성제의 무한한 가치를 안다면, 미사 참례를 간절히 원하게 될 것이고 모든 수단을 써서 시간을 내려고 할 것이다.

세쩨(Sezze)의 성 챨즈가 그의 수도회를 위한 구걸을 하면서 로마의 거리를 걷고 있을 때, 더 많은 미사에 참례하기 위하여 시간을 내어 성당을 방문하곤 하였다.  이렇게 미사 참례를 하고 있던 어느 날 거양 성체 때 사랑의 화살이 그의 심장을 뚫었다.

바올라의 성 프란시스도 매일 아침 성당에 갔는데, 아침에 거행되는 여러 번의 미사를 모두 참례하였다.  성 알로이시오 공사가, 성 알퐁소 로드리게즈, 그리고 성 제랄드 마옐라도 가능한 한 많은 미사에 참례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너무나 열절한 신심으로 참례하였기 때문에 많은 신자들이 그들 때문에 성당으로 몰려들었다.

가경자(可敬者) 아기 예수의 프란시스는 매일 열번의 미사에 참례하였다.  혹 그보다 적은 횟수밖에 참석하지 못했을 때에는, "오늘 나는 아침을 제대로 못먹었다."라고 말하였다.  
삐에뜨렐치나의 비오 신부 역시 매일 많은 미사를 드렸다.  과연 아르스의 성인 신부가 말했듯이 "미사는 성인들의 신심이다."


"나는 10 마일(=16 km)을 걷겠습니다"

거룩한 사제들이 미사를 거행하는 것을 얼마나 사랑했는가에 대해서도 꼭같은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분들이 미사를 드릴 수 없을 때에는 큰 고통을 느꼈다.  성 프란시스 사비에르 비앙끼는 동료 수사 신부에게 말하였다. "내가 더 이상 미사를 거행할 수 없다라는 말을 당신이 듣거든, 나를 죽은 사람으로 간주하시오."
십자가의 성 요한은 그가 9 개월 동안 감옥에 갇혀있을 때 가장 큰 고통은 미사를 드릴 수 없고 성체를 모실 수 없는 것이었다라고 말하였다.

성인들은 미사를 드리기 위해서라면 장애물들이나 어려움들을 개의치 않았다.  예를 들면, 성 알퐁소 드 리구오리가 나폴리의 거리를 걷고 있을 때, 갑자기 심한 복통이 왔다.  그를 동행하던 수사는 성인께 멈추어서 진정제를 드시라고 권하였다.  그러나 성인은 그 날 아직 미사를 드리지 않았으므로 즉시 대답했다.  "나의 사랑하는 형제여, 나는 미사 성제를 바치기 위하여 이 상태에서 10 마일이라도 걷겠습니다."  당시에는 영성체 전의 공심재를 자정부터 지켜야 했으므로, 성인은 그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공심재를 깨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고통이 좀 덜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성당을 향해서 계속 걸어갔다.

카푸친 회 수사 신부였던 브린디시의 성 로렌스는 한 번은 이단의 지방을 거쳐가게 되었다.  이 곳에는 가톨릭 교회가 하나도 없었으므로, 성인은 성당이 있는 곳까지 40 마일(=64 km)을 계속해서 걸어갔다.  그리고 그는 말했다. "저에게 미사는 지상의 천국입니다."

성 프란시스 드 살레즈는 프로테스탄트 도시에 얼마 동안 머물게 되었다. 그는 매일 아침 미사를 드리기 위하여 강 건너 편에 있는 성당까지 가야 되었다.  그런데 가을의 우기(雨期)가 되어서 강물이 불어나 작은 다리가 휩쓸려가고 말았다.  그러나 성인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다리가 있었던 곳에 통나무를 갖다 놓고 그 위로 건너갈 수 있었다.  그런데 겨울이 되자 얼음과 눈 때문에 미끄러워서 강에 빠질 위험이 있었다.  그러자 성인은 통나무 다리에 걸터 앉아 기어서 건너갔다.

우리가 제대 위에서 갈바리아 산 위의 희생을 재현하는 미사 성제의 신비를 충분히 묵상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 지고(至高)한 하느님의 사랑의 경이에 대하여 충분한 신심을 가지기도 어려울 것이다.

성 보나벤뚜라는 "미사 성제는 우리가 보는 앞에서 우리에 대한 당신의 사랑 모두를 펼쳐놓는 하느님의 역사(役事)입니다.  어떤 의미로는 그것은 우리에게 부어주시는 모든 혜택들을 종합한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성 요한 보스꼬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열절히 권고한다. "미사 성제에 가도록 많이 애쓰십시오.  평일에도 말입니다.  이렇게 훌륭한 목적을 위해서 불편함을 좀 겪더라도 기쁘게 생각하십시오. 그렇게 함으로써 여러분들은 주님께로부터 온갖 축복을 받으실 것입니다."

(성체 성사의 예수님께 대한 사랑)





나를 진정으로 사랑해 다오

(가톨릭출판사 / '성심의 메시지' 중에서)

 


나를 위로해 다오. 나를 진정으로 사랑해 다오. 다른 영혼들에게 나의 성심을 높이 드러내 보여 주어라. 나의 성심을 통하여 공정하시고 의로우신 하느님의 은혜를 기워 갚아라. 다른 영혼들을 위해 나의 성심에 사랑과 희생을 바치고, 특히 나에게 자기 자신을 봉헌한 영혼들을 위해 바쳐라.


내가 너희 가운데서 함께 생활하고 있듯이, 너희들도 나의 마음 가운데로 들어와 나와 함께 살아라. 내가 너희 안에 숨어 있듯이, 너희도 내 안에 들어와 숨어 있어라. 우리 둘이 서로 위로하면서 살자꾸나. 그러면 너희 고통이 나의 고통이 될 것이며, 나의 고통이 너희들의 고통이 될 것이다.


나의 마음을 위로하려면, 어서 나의 마음 한가운데로 너희 자신을 들여보내라. 그리고 나와 짝이 되어 하느님 아버지께 우리 노고를 바치자꾸나. 하느님의 은혜를 저버리고 배은망덕하는 영혼들을 위해 나의 아버지께 대신 용서를 빌어라. 그리고 죄인들의 하느님 아버지의 엄위(嚴威)에 손상을 끼친 것을 미약하나마 대신 보속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아뢰어라.


하느님 아버지께 바치는 너희 자신은 보잘 것 없고, 미미한 희생물에 불과하다. 그러나 너희 영혼들은 나의 성심에서 흘러나오는 성혈에 흠뻑 적셔져 있다고 아버지께 말씀드리고, 재차 용서를 빌면서 보속하는 생활에 몰두하여라.


나의 성심을 불사르는 열정에 너희 마음을 결합시켜라. 너희 영혼들을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나를 희생 제물로 삼아 하느님 아버지께 대신 보상하기를 내가 얼마나 원하고 있는지 알아 주었으면 좋겠다. 절대로 내 곁을 떠나 멀리 가지 말아라. 내가 너희 영혼들을 이다지도 뜨겁게 사랑하고 있지 않느냐?


('성심의 메시지' 중에서) 





예수님의 마음을 가장 아프게 하는 영혼들

(가톨릭출판사 / '성심의 메시지' 중에서)

 


이 세상은 쾌락에 빠져, 그 낙에 잠기어 세월가는 줄 모르는구나. 죄인들이 죄악의 구렁텅이에서 온갖 죄악을 범하고 있는 것은 나의 성심을 더럽고 악취가 나는 시커먼 개천 속에 던져 버리는 행위와 같다. 이럴 때 나는 어디 가서 위로를 받는단 말이냐?

나의 공정하고 의로운 마음을 채우고, 나의 사랑을 능욕한 죄악을 대신 보속하려면, 너희 자신을 완전히 나에게 바쳐야 한다. 너희 죄인들이 스스로를 부당한 죄인이라고 느끼고, 나에게 범한 너희 죄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임을 깨닫는다면, 나에게 다가와서 나의 마음에서 샘물처럼 솟아나고 있는 나의 성혈에 너희를 담그어, 그 죄악의 얼룩을 깨끗이 씻어서 지워라.

그런 후에 내가 너희 죄인들에게 내려 주는 고통을 혼연히 받아들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너희 자신을 완전히 봉헌하여라. 너희가 능욕 당하시는 하느님께 위로를 드리겠다는 마음으로 불타고, 지은 죄를 보속하기 위해 전심 전력으로 노력한다면, 얼마나 내가 기뻐하겠느냐!

나의 마음보다 더 사랑하는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또 내 사랑처럼 보답 받지 못하는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나에게 말해 보아라. 나의 성심 보다 더 용서하고 싶어 끓어오르는 마음이 있더냐? 나는 이러한 사랑하는 마음의 대가로 나의 성심은 견디기 힘들 정도로 수모만 당하고 있다.

가련한 영혼들!
이 불쌍한 영혼들을 위해 하느님 아버지께 용서를 청하고 대신 보속하자꾸나. "아버지, 이 영혼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이들의 행실대로 벌하지 마옵시고 당신 아드님이 간청하시는 대로 이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나는 내가 선택한 영혼들 가운데로 쉬러 온다. 이들은 내가 죄인들로부터 받은 상처를 온 정성을 다하여 치료해 준다. 아! 수 없이 저질러지고 있는 죄악 때문에 나의 마음이 받고 있는 이 쓰라린 아픔! 이 고통을 잠재우려면, 너희들의 희생이 얼마만큼이나 필요한지 너희들은 알고 있느냐?

이 엄청난 죄악들! 이 죄악 때문에 얼마나 많은 영혼들이 지옥에 빠지고 있는고! 사악한 영혼들이 나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내고 있다. 그러나 나에게 충실한 영혼들의 따뜻한 애정은 나의 성심이 상처입는 것을 막아줄 뿐만 아니라 하느님 아버지의 의노를 사그러 들게 한다.

내가 충실한 너희 영혼들에게 고통의 짐을 지워주면, 너희를 덜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말아라. 이것은 이 세상 영혼들의 죄악으로 생긴 병을 치료할 약이 아쉬워서 그러는 것이다. 내가 너희 영혼들을 위해 대신 보속의 짐을 지고 있으니, 너희들도 다른 영혼들을 위해 기꺼이 보속의 짐을 짊어져라.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영혼들도 많고, 지은 죄 때문에 지옥에 떨어지는 영혼도 많이 있다. 그러나 나의 마음을 가장 아프게 하는 영혼들은 나한테 지극한 사랑을 받고 있으면서도, 자기 자신을 완전히 바치지 않고, 무언가 항상 따로 떼어 놓고 일부분만 바치는 영혼들이다. 나는 나의 마음을 송두리째 다 주는데, 이 영혼들은 왜 나에게 전부를 바치지 않는가!



('성심의 메시지' 중에서)





미사 성제는 십자가 상의 희생 제사이다


"예수께서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위하여 당신을 희생하셨다" (갈라티아 2,20)

우리가 천국에 이르러서야만 미사 성제의 진정한 가치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과 천사의 이해를 초월하는 하느님의 역사인 미사 성제를 우리가 설명하려고 한다면 말을 더듬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 아무리 우리가 노력을 하고 아무리 거룩한 영감을 받는다고 할지라도.
삐에뜨렐치나의 비오 신부님께 어떤 소년이 물었다. 
"신부님, 우리에게 미사 성제를 설명하여 주십시오."
"나의 자녀들아," 신부님은 대답하셨다. "내가 그것을 어떻게 너희들에게 설명해줄 수 있겠느냐? 미사는 무한한 것이다 -  예수님처럼....... 천사에게 미사가 무엇이냐고 물어보아라. 그러면 그는 솔직하게 대답할 것이다. '나는 미사가 바쳐지고 있음을 알며 또 왜 바쳐지고 있는 지도 안다.  그러나 미사의 가치는 나의 이해력을 초월한다.'  천국의 수많은 천사들이 다 그렇게 알고 있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제대는 갈바리아 산이다

성 알퐁소 드 리구오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미사 성제를 바치는 것보다도 더 거룩하고 더 위대한 일은 하느님께서도 하실 수 없으시다."
어째서 그런가?  미사 성제는 그리스도의 강생과 구속(救贖) 사업을 종합적으로 요약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미사는 예수님의 탄생, 수난 및 죽으심, 즉 하느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행하시는 신비들을 포함하고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이렇게 가르쳤다. "최후의 만찬 때, 즉 당신께서 배반당하시던 밤에 예수님께서는 당신 몸과 피의 희생인 성체 성사를 세우셨다.  그리하여 십자가 상의 희생 제사를 당신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모든 세기들을 통하여 계속하고저 하셨다" (Sacrosanctum Concilium, n. 47).

그보다 일찍 교황 비오 12세께서는 다음과 같은 중요한 가르치심을 주셨다. "골고타의 제대는 우리들의 성당들의 제대들과 다름이 없다. 성당 안의 제대 또한 골고타처럼 하나의 산이며, 그 위에 십자가가 세워져 있고 하느님과 인간들 사이의 화해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히신 분이 계신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렇게 기록하였다. "미사 성제를 바치는 것은 십자가 상에서 예수님께서 죽으셨던 것과 같은 가치를 지닌다."

이러한 이유로 인하여,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꼬는 "사제의 손을 통하여 하느님의 아들께서 제대에 내려오실 때 인간들은 두려움으로 떨며, 세상도 진동하며, 천국 전체가 깊이 감동해야 한다."라고 하였다. 참으로, 미사 성제는 예수님의 수난과 죽으심의 희생을 재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느님의 정의의 진노하심을 누그러뜨리기에 충분하다.
"하느님의 모든 진노하심과 분노하심이 미사의 봉헌 앞에서 풀어진다." 라고 성 대 알베르또는 기록하였다.

아빌라의 성녀 테레사는 수녀들에게 말하였다. "미사 성제가 없다면 우리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지상의 모든 것이 멸하고 말 것입니다. 왜냐하면, 미사 성제만이 하느님의 (진노의) 팔을 붙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미사 성제가 없다면, 교회는 분명히 지속될 수 없을 것이며 세상은 희망없이 상실되고 말 것이다.
성 알퐁소 드 리구오리는 "미사가 없다면, 지구는 오래 전에 이미 사람들의 죄로 인하여 파괴되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비오 신부는 "세계가 태양없이 존속하는 것이 미사 성제 없이 존속하는 것보다 쉬울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 말씀은 뽀르 모리스의 성 레오나르드의 말씀과도 맥이 통하는 것이다. "만약 미사가 없다면, 세상은 이미 그 안의 사악함으로 인하여 깊은 구렁텅이로 침몰되고 말았을 것이다. 미사는 세상을 떠받들고 있는 강력한 힘이다."


고귀한 은총들

미사 성제가 미사에 참례하는 이들의 영혼에 미치는 구원의 효과는 참으로 훌륭하다.  미사는 통회를 유발시켜 죄의 사함을 얻게 한다.  그리고 지은 죄에 대한 잠벌(暫罰)을 감해준다.  사탄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고 육욕의 충동을 다스려준다.  미사 성제는 우리를 그리스도의 몸에 더 굳세게 결합시켜주며, 우리를 위험과 재난으로부터 보호해준다. 연옥에서의 벌을 짧게 해주며, 천국에서 더 높은 영광을 받게 해준다.
성 로렌스 쥬스티니언은 "미사 성제로부터 흘러오는 혜택들을 인간의 혀로써 다 나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죄인은 하느님과 화해되며 의인은 더욱 의롭게 된다. 죄들이 씻어지며, 악들이 뿌리뽑히고, 덕과 공로는 증가된다. 그리고 마귀의 계책들이 좌절된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뽀르 모리스의 성 레오나르드는 그의 말을 듣기 위하여 몰려오는 군중들에게 지칠 줄 모르고 충고하였다. "오, 착각하고 있는 사람들이여, 그대들은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왜 어서 성당으로 가서 가능한 한 가장 많은 횟수의 미사를 드리지 않습니까? 미사가 거행될 때마다 천국으로부터 무수히 떼를 지어 내려와서 제대 주위에 꿇어 흠숭드리고 또 우리를 위하여 중재하는 천사들을 왜 본받지 않습니까?"

만약 우리의 현세와 내세를 위하여 은총들이 필요하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미사 성제만큼 하느님께로부터 은총을 얻어주는 것은 없을 것이다.
성 필립 네리는 자주 이렇게 말하였다. "기도드림으로써 우리는 하느님께로부터 은총을 구합니다. 미사에서는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은총을 주지 않으실 수 없도록 해드립니다."
미사 중에 바치는 기도에는 우리의 사제직 전체가 동원된다. 즉 서품받은 사제직과 모든 신자들의 일반적인 사제직이다. 미사 성제에서 우리의 기도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당신을 희생하시면서 바치셨던 고통의 기도와 합쳐지게 된다.  미사 성제의 핵심인 전문(典文) 중에는 특별히 우리 모두의 기도가 우리 가운데 현존하시는 예수님의 기도로 된다. 로마 전문(典文)에서 산 이들과 죽은 이들을 기억할 때는 우리가 청원을 드리는 귀중한 순간들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사제의 손 안에서 그의 수난과 죽으심을 거쳐나가시는 그 지고(至高)한 순간들에는 우리가 우리 자신을 위해서 필요한 것들을 구할 수 있고 또 우리에게 가까운 산 이와 죽은 이들을 위하여 기도드릴 수 있다.  그러한 기도들을 바침으로써 혜택을 받도록 하자. 성인들은 이 점을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하였으며, 그들이 사제들에게 기도 부탁을 드릴 때에는 특히 미사 전문(典文) 때에 기억해달라고 부탁드렸다.

우리가 열심히 참례한 미사들이 우리에게 가장 큰 위로와 희망을 주게 되는 것은 우리의 임종 때이다.  생전에 한 번 드렸던 미사가 죽고 나서 다른 이들이 우리를 위하여 바쳐주는 많은 미사들보다 더 유익할 것이다.
성 요셉 꼬똘렝고는 미사 성제에 자주 참례하는 이들은 누구든지 거룩한 임종을 하게 된다는 것을 확실히 말했다. 성 요한 보스꼬는 많은 미사에 참례하는 것은 구원을 예정받은 징표라고 생각했다.

우리 주님께서 성녀 제르뜨루다에게 말씀하시기를, "미사 성제에 열심히 참례하는 이들에게는 그들의 임종 때에 그들이 열심히 참례한 미사의 횟수만큼 많은 성인들을 보내어서 그들을 위로하고 보호하게 해줄 것임을 확실히 말해준다."라고 하셨다.  이 얼마나 위로되는 말씀인가!
아르스의 성인 신부는 "만약 우리가 미사 성제의 가치를 안다면, 우리가 미사에 잘 참례하기 위하여 얼마나 더 많은 노력을 하겠습니까!"라고 외쳤다.
그리고 성 베드루 쥴리안 에이마르는 "오, 크리스챤 신자여, 미사가 가장 거룩한 신앙 행위임을 아십시오. 그대는 미사에 열절하게 그리고 자주 참례하는 것보다 더 하느님께 영광을 드릴 수는 없을 것이며, 그대의 영혼에 더 유익되는 일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천사가 우리의 발걸음을 세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미사 성제에 참례할 수 있을 때마다 이를 큰 다행으로 생각해야 한다. 귀중한 미사 참례의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하여, 우리는 어떤 불편함이나 희생이 요구된다고 하여도 이를 핑계로 미사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특히 주일과 여러 축일에는 미사 참례를 해야 할 중대한 의무가 있으며 이를 궐할 경우 대죄를 범하게 된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2181조).

성녀 마리아 고레띠는 주일 미사에 참례하기 위하여 성당까지 24 km를 걸어서 갔다. 산띠나 캄빠나는 고열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미사에 갔다. 성 막시밀리안 콜베 신부는 건강이 너무 나뻐서 그가 쓰러지지 않도록 동료 수사가 붙들고서 미사 성제를 드렸다. 삐에트렐치나의 비오 신부는 출혈을 하며 고열이 있는 중에서도 미사를 드렸다.

병으로 인하여 성인들이 미사 성제에 참례할 수 없었을 때에는 그들은 최소한 정신적으로 이 세상의 모든 성당들에서 미사를 드리는 사제들과 일치하였다. 예를 들면, 성녀 벨라데따는 오랜 기간 자기 방에만 있어야 했는데, 동료 수녀들에게, "매 시간 세계의 다른 곳들에서 미사가 바쳐지고 있습니다.  나는 자신을 그 미사들과 일치하며, 특히 밤에 잠을 잘 수 없을 때 그렇게 합니다."라고 말하였다.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 우리는 미사 성제를 다른 어떤 좋은 것들보다도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성 벨라도는 "자신의 모든 재산을 빈민에게 나누어주고 전 세계로 순례를 다니는 것보다 한 번 정성껏 미사에 참례함으로써 더 많은 공을 세우게 됩니다."라고 했다. 그 이유는 명백하다. 이 세상의 그 어떤 것이라도 한 번의 미사가 가지는 무한한 가치를 지닐 수는 없기 때문이다.
아르스의 신부는 말하기를 "미사 성제에 비하여 순교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왜냐 하면, 순교에서는 인간의 희생을 하느님께 바치지만, 미사에서는 인간을 위하여 천주 성자이신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시간을 허비하게 하며 우리의 영혼에 아무 유익도 주지 못하는 오락들보다 미사 성제를 더 귀중히 여겨야 한다. 프랑스 국왕 성 루이 9세는 매일 여러 번의 미사에 참례하였다. 한 장관이 불평하기를 왕이 국사에 더 많은 시간을 소비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했는데, 이를 들은 성왕은 "내가 미사를 위해 사용하는 시간의 두 배를 사냥 등의 오락에 사용한다 해도 아무도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렇게 귀중한 미사에 참례하기 위하여 관대하고도 기쁘게 희생을 하자.
성 아오스딩이 신자들에게 말하기를, "미사 성제에 참례하러 가기 위하여 내딛는 발걸음 하나 하나를 천사가 세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와 영원에서 하느님께서 큰 상급을 주실 것입니다."
아르스의 신부도 말하였다. "미사에 참례하러 가는 영혼을 동행하는 수호 천사는 얼마나 기쁘겠읍니까!"

(성체 성사의 예수님께 대한 사랑)





예수님께서 나를 부르신다

(가톨릭출판사 / '성심의 메시지' 중에서)

 


내가 너희 영혼들에게 내리는 최상의 상급(賞給)은 너희 영혼들을 나의 사랑과 나의 자비의 희생물로 삼는 것이다. 그래야만 너희 영혼들도 죄인들을 위해 스스로 희생 재물이 된 나와 일치할 수 있다.

너희들이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 나에게 위로되는지 알고 있느냐? 나를 사랑하고 다른 영혼을 위해 고통을 달게 참아 받으며 내가 너희에게 요구하는 것을 거부하지 말아라. 또한 하느님의 의노(義怒)를 진정시키기 위해 나의 수고 수난(受苦受難)을 계승할 수 있는 영혼들을 아쉬워하며 찾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라. 나는 나의 길을 따르는 너희들을 계속 지지하고 성원하겠다.

너희 영혼들이 어느 죄인의 회개를 위해 진정한 마음으로 기도를 드리면, 그 죄인은 죽을 때에라도 회개하게 될 것이다. 너희가 이러한 기도를 내게 바치면, 내 마음의 상처는 보상(補償)을 받게 된다.

기도하면 잃는 것이 없다. 한편으로는, 세상의 죄악 때문에 모욕을 받은 나의 마음에 보상할 수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나의 자비를 얻을 수 있다. 만일 그 죄인이 나의 자비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나의 자비를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는 다른 영혼에게 베풀어질 것이다.

현세의 삶과 후세의 영원한 생명까지 나에게 바쳐 나에게 영광을 돌리고, 멸망에 임박한 영혼들을 회개시켜, 나에게 영광을 바치게 하려고 특별히 부름을 받은 영혼들도 있다. 이러한 영혼들은 나의 영광에 손실이 없게 하기 위해, 다른 영혼들의 죄를 대신 보속하는 의로운 영혼들이다.

모든 영혼들을 사랑하는 나의 정은 깊고 지대하여, 영혼들이 나와 멀어질 때에는, 나의 목숨이 끊어질 듯한 아픔을 느낀다. 내 영광을 손상시켰다고 해서 아파하는 것이 아니다. 제 손으로 파 놓은 구렁텅이에 빠져 파멸의 길로 가고 있으니 나의 성혈은 영 쓸모 없이 되고 마는구나! 그래도 나를 사랑하여 보상의 재물로 자기자신을 희생하는 영혼은 하느님의 자비심을 우러나오게 하여, 이 세상을 구원받을 수 있게 만드는 영혼이다.

나는 하느님의 엄위(嚴威) 하심을 손상시킨 죄인들을 대신하여 보속할 영혼들을 찾는다. 나의 마음은 죄인들을 용서해 주고 싶어 애를 태우다 보니, 진이 빠지는 것 같구나.

가련한 죄인들! 어찌 이리 저들의 눈이 어두운고! 나는 죄인들을 용서하는 일에 골몰하고 있는데, 이 죄인들은 나를 짓밟는 죄악에만 연연하고 있구나. 나는 범죄자를 추적하는 형사처럼 이 죄인들을 잡아 벌주려고 쫓아다니는 것이 아니다. 용서해 주려고 찾아 다니고 있다.

 

(가톨릭출판사 / '성심의 메시지' 중에서)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가톨릭출판사 / '성심의 메시지' 중에서)



사랑하는 영혼들아, 나 너희에게 쉬러온다. 내가 사람들에게 받는 사랑은 너무 빈약하구나! 나는 사랑을 갈구하나, 그들은 나에게 배은망덕만 주는구나.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내가 너희에게 부탁하려는 것은 내가 너희를 필요로 할 때, 나의 마음에 들어와 나의 마음을 위로해 줄 준비를 항상 하고 있어 달라는 것이다.


충직한 영혼들이 나를 위로하면, 냉정하고 무관심한 영혼들로부터 받은 푸대접 때문에 생긴 나의 섭섭한 마음이 풀어질 것이다. 너희는 언젠가는 나의 마음의 고통을 이해하고 깨달을 날이 있을 것이다. 너희가 나의 고통에 동참하면, 나는 크나큰 위로를 받는다. 고통을 무서워하거나 두려워하지 말아라. 나는 언제나 너희들과 함께 있다.


내가 너희를 차디차게 방치할 때는 다른 영혼을 뜨겁게 하기 위해 너희의 열성을 취할 때이다. 내가 너희를 고통 중에 버려 둘 때는, 죄인들을 벌하시려는 하느님의 의노를 너희들이 받고있는 고통으로 누그려뜨려, 하느님과 화해시키려 할 때이다.


부족하지만 한결같은 사랑을 나에게 바치면, 그때가 바로 나의 성심이 가장 큰 위로를 받는 때이다. 내가 너희를 고독 속에 내버려 두어도, 너희가 행하는 사랑의 작은 행위는 내가 당하고 있는 사람들의 배은망덕을 크게 보상하는 것이 된다.


나의 마음은 너희들의 사랑의 행위를 헤아려 향기로운 향으로 피어 오르게 할 것이다. 너희들의 영혼을 나에게 다오. 매사 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행동하라는 것뿐, 다른 것을 요구하지 않겠다. 모든 것을 사랑으로 하여라. 참는 것도 나의 사랑을 위해 참고, 일하는 것도 사랑으로 하여라. 무엇보다도 네 자신을 나의 사랑에 완전히 맡겨라.


너희가 위로를 받고 싶을 때에는, 나의 사랑의 손에서 직접 받아라. 고통과 외로움을 느끼면,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당한다고 생각하고, 달게 참아 넘겨라. 나는 너희들을 지치고 병약한 사람들이 몸을 가누기 위해 사용하는 지팡이로 삼으려 한다. 나는 너희들을 소유하고, 철저히 포위하여, 완전히 소모시키려 한다.



('성심의 메시지' 중에서)


 



어서 나의 사랑에 응답하여라 !

(가톨릭출판사 / '성심의 메시지' 중에서)


나를 위해 일생을 바친 영혼들 중에도 참된 신뢰심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은 그다지 많지 않다. 그들 중에 나와 친밀하게 결합하여 생활하는 영혼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얼마나 간절하게 너희 영혼들이 생활 중에 나와 친밀하게 결합하여 새로워지기를 원하는지 깨닫기 바란다.

감실 앞에서 나와 대화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을 버려라.

나는 감실 안에 있다. 정말이다. 그리고 너희 영혼들 한 가운데 있다. 그리고 너희 영혼들과 결합하여 하나가 되는 것이 나의 유일한 낙이다.

무엇이든지 나에게 말하고, 무슨 일이든지 나의 의견을 물어서 행동하며, 모든 것을 나에게서 찾으려 한다면, 나는 너희 영혼들에게 생명을 주기 위해 너희들 안에 살면서 힘이 되어 주겠다. 어서 나의 사랑에 응답하여라!

많은 영혼들이 아침마다 기도를 드리고 있다. 사랑의 회견(會見) 형식에 불과한 기도를 바치고 있다. 미사에 참례하고 성체를 받아 모시지만 일단 성당 밖으로 나오면 나에게 거의 말도 걸지 않고, 세상일에 휩쓸려 정신을 잃고 있지 않느냐?

내가 이런 영혼들 안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무도 없는 허허 벌판에 서 있는 것과 다름이 없다. 이런 영혼들은 나에게 말도 걸지 않으며, 아무것도 나에게 부탁하지도 않는다.

제 영혼이 위로받고 싶을 때, 자기 영혼과 가장 가까이 있는 창조주인 나에게 의탁하지 않고, 같은 처지에 있는 피조물에게만 청탁한다. 이런 영혼들은 나와 친밀하게 결합되지 않은 영혼들이다. 나와 결합하여 생활할 의사가 전혀 없는 영혼들이다. 사랑이 없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질 않느냐?



(가톨릭출판사 / '성심의 메시지' 중에서)

 

 



신심 생활을 진일보시키는 비결

(가톨릭출판사 / '성심의 메시지' 중에서)


내가 너희들에게 십자가 외에 다른 것을 말하려 하는 줄로 착각하지 말기 바란다. 내가 십자가로써 이 세상을 구원하였지 않느냐? 믿음과 진리와 사랑, 이 모든 것의 중심은 십자가이다. 십자가 없이는 믿음이든, 진리이든, 사랑이든, 아무런 의미가 없다.
죄악은 나를 짓밟는 행위이다. 십자가에서 내가 당한 고통을 모독하는 행위이므로, 무한한 대가를 치뤄야 한다는 것은 너희들도 이미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너희가 나의 구원 사업을 하면서 고통을 겪게 되면, 십자가 위에서 당한 나의 고통을 생각하고 나의 성심 안에 너희 고통을 일치시키도록 노력하여라.

나의 성심에 가까이 접근하려는 영혼들에게 사랑과 신뢰를 심어 주고, 그 영혼들을 내 사랑으로 목욕시키고, 어질고 착한 내 마음속에 깊이 잠기게 하여라. 그리고 기회 있을 때마다 그들에게 내가 사랑의 하느님임을 일러주어, 나를 무서워하지 않게 하여라.

나는 너희에게 다음 세 가지를 특별히 당부하겠다.
첫째, 성시간(聖時間)을 행할 것. 성시간을 갖는 것은 하느님의 아들인 나를 중개자로 삼아 하느님 아버지의 무한하신 자비에 보답할 수 있는 방법이다.

둘째, 나의 오상(五傷)을 극진히 섬기는 마음으로 주님의 기도 다섯 번을 바칠 것. 모두가 이러한 신심으로 기도를 드린다면 이 세상은 구원받을 수가 있다.

셋째, 너희가 하고 있는 일과 모든 행위를 나의 성심에 항상 일치시키도록 노력할 것. 나는 나의 마음과 일치된 너희 행실에 무한한 가치를 부여하겠다.

항상 나의 마음과 성혈, 그리고 나의 생명을 너희 사업에 이용할 것이니, 두려워하지 말고 나의 마음에 의탁하여라.

많은 영혼들이 이러한 비결을 잘 알지 못하고 있다. 나는 너희가 이 비결을 실천에 옮겨 너희 신심 생활을 진일보시키기 바란다.



(가톨릭출판사 / '성심의 메시지' 중에서)





예수성심으로 온 세상을 밝혀라

(가톨릭출판사 / '성심의 메시지' 중에서)


내가 너희에게 요구하는 것은 나에 대한 완전한 신뢰심이다. 너희들이 겪는 어떠한 고초나 역경을 나는 전혀 문제시하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것은 사랑이다.

나의 사랑은 모든 것을 하느님의 것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자비를 베풀어 너희들의 과오와 잘못을 용서한다. 나의 성심은 완전한 사랑 자체이다.

나의 마음을 태우는 사랑의 불길은 너희들이 지니고 있는 온갖 장애와 어려움을 불살라 없앨 것이다. 나는 용서하기 위해 너희 영혼들에게 가까이 가고 있다.

나의 평화를 이 세상 어느 곳에나 빈틈없이 내려 보내고 싶다. 나의 사랑 사업의 목적은 평화를 실현시키는데 있다.

나는 이 사업을 통해 자신의 죄과를 뉘우치고 보속하는 영혼들을 용서하고, 그들에게 용서받기에 합당한 희생을 제시해 준다.

이 세상에는 나의 성심과 자기들의 마음을 일치시키려고 노력하는 영혼들이 많이 있다. 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을 내 뜻대로 처분하라면서 나에게 후한 인심을 바치는 영혼들도 있다.

너희 영혼들이 나를 알고, 나에게 가까이 오고 싶으면, 나와 함께 고통을 받아야 한다. 고통을 감수해야만, 사랑을 위한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내 사랑의 힘으로 너희 영혼들의 마음을 얻고자 한다. 나는 너희 영혼들이 내 사랑의 참 빛을 받아 주기 바란다.

어른들의 무관심 속에 나를 알지 못하고 자라는 아이들, 자기 영혼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모르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천진난만한 마음을 지니고 있는 이 작은 영혼들이 나를 믿어 주고, 나의 계명을 경외하며, 나의 마음을 사랑하면서 커 간다면, 내가 얼마나 기뻐하겠느냐?

나는 모든 아이들이 내 마음을 사랑하며, 나를 배울 수 있도록 양육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내가 이 세상에 내 사랑의 불을 지피면, 너희들은 나의 사랑이 활활 타오를 수 있도록 그 불섶이 되어라. 그 불이 계속 타오를 수 있게 계속 지펴 주어야 한다. 금방 불길이 사그라들거나 죽어 버린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그러므로 쉴새없이 치성(致誠)을 드리는 사랑이 있어야 한다.

모든 것을 나에게 의탁하며 사랑에 불타는 영혼들로 사슬을 만들어라. 그리고 타오르는 내 사랑의 불꽃으로 온 세상을 밝혀라.



(가톨릭출판사 / '성심의 메시지' 중에서)

 




예수성심께 의탁하는 영혼

(가톨릭출판사/ '성심의 메시지' 중에서)


너희 영혼들을 향한 나의 사랑은 여전히 깊고 그침이 없다. 나의 사랑은 너희들의 작은 일에도 나의 신성한 가치를 붙여 주어 너희들 일상 생활에 유용하게 하려고 한다.

비록 너희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역경 속에 헤매면서 쓰라린 고통을 당하고 연약하여 죄악에 떨어진다 하여도, 너희들을 향한 나의 사랑을 멈추게 할 수는 없다.

사실 너희 영혼들은 시련에 부딪치고 가련한 처지에 떨어져야만 자신이 미약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겸손해진다.

자기 자신은 사도 성직에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느끼고, 타인을 완덕의 길로 인도하는 데 있어서 부적격자라고 느낄 때에, 비로소 자기 자신을 낮추게 된다.

자기 자신의 나약함을 겸손되이 승복하고 나에게 달려오지 않았던 점에 대해 나에게 용서를 빌어라.

나의 마음에게 힘과 용기를 달라고 간청하여라. 그러면 나의 마음은 너희를 사랑의 눈으로 보아 줄 것이고, 너희들이 하는 일에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해주겠노라.

매일 노력하며 희생하면서도, 쾌할한 마음으로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영혼들도 있다. 이러한 영혼들의 생활은 약속만 하고 진실한 실천이 없는 빈 껍데기 생활이다. 실천에 옮기려는 마음도 없고, 나의 사랑을 증거하겠다는 열의도 없이, 약속만 남발하는 습관만 가진 자들에게 나는 이렇게 말하련다.
"창고에 쌓아 둔 너희들의 곡식에 내가 불을 지르거나, 바람에 휩쓸려 날려 보낼지 모르니 항상 조심하라"고

나는 다음과 같은 영혼들을 사랑한다. 나에게 자신의 사랑을 드러내 보여 주고 싶어하는 마음을 가진 영혼, 어떠한 경우에는 자신을 버리고 기꺼이 희생을 감수하겠노라고 약속하는 영혼, 그러나 자기 자신의 타고난 성격, 환경, 건강 등 여러 가지 요인 때문에 나와 맺었던 진실한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이럴 때에 자기 자신을 낮추고, 자신의 허약함을 인정하여 용기를 내어 내게 용서를 비는 영혼, 잘못을 인정한 후 나의 성심에 의탁하고, 자기 자신을 완전히 내게 맡기며 새롭게 굳은 결심을 하면서 즐거운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으로 보속하는 영혼, 이러한 영혼들이 진정으로 나를 현양하는 영혼이다.

그래서 나는 나약하여 잘못을 저지르는 영혼들을 더 소중하게 여긴다. 왜냐하면 잘못을 저지르고 난 후에 더 정진하여 나를 섬기기 때문이다.

따라서 너희들의 약점 때문에 나의 마음은 상처받지 않는다.



(가톨릭출판사/ '성심의 메시지' 중에서)

 




하느님으로부터 간택받은 사람

(가톨릭출판사 / '성심의 메시지' 중에서)



나의 마음은 사랑의 깊은 못이며 자비의 깊은 못이다. 나는 알고 있다. 아무리 복을 많이 타고난 영혼일지라도 예외 없이 각자의 어려움과 고통이 있다는 것을. 나는 이들의 보잘것없는 행실도 세상을 구원하려는 나의 사랑과 자비의 못에 적셔 주고 싶다.

너희 모두가 다 멀리 미지의 세계로 진출하여 나의 복음을 전파할 수는 없다. 그러나 너희 모두는 나의 마음을 사람들에게 알려 나를 사랑하게 만들수가 있다.

그리고 너희는 서로서로 도와 하느님으로부터 간택받은 사람들의 수를 배가시켜야, 많은 영원들을 멸망의 길에서 구출할 수가 있다. 나의 사랑과 자비의 효험으로 많은 사람들의 영혼을 구할 수 있다. 내가 지시하는 대로 그대로 이행하여라. 
나의 마음이 선택한 너희들은 사랑과 희생으로 내 은총을 세상에 부어 많은 영혼을 죄악으로 구출할 책무가 있다.

정말 이 세상에는 온갖 위험과 죄악이 득실거리고 있다. 죄악에 얽매어 너희들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느냐? 다시 한번 당부하겠다. 선택받은 너희 영혼들이 하루 일상 생활을 무익하게 보내면, 너희 자신이나 다른 영혼들에게 얼마나 큰 손실을 가져오게 되는지 아느냐?

매일 노력하고, 매일 실천해야 비로소 너희들의 아름다운 생명이 은총으로 충만해질 수 있다. 그러니 아무리 너희 생활이 불완전하다 할지라도, 모두 나에게 바쳐라.

내가 얼마나 간절하게 너희들을 부르고 있는지 아느냐? 나에게는 영광이 되고 너희에게는 유익이 되게 하려고, 너희들의 하루하루를 다 나에게 바치라는 것이다. 
간절한 나의 말을 알아듣는 자도 많지만, 알아듣지 못하는 자도 많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노릇이다.


 

('성심의 메시지' 중에서)






완덕으로 나아가는 지름길

(가톨릭출판사 / '성심의 메시지' 중에서)


나의 사랑하는 영혼들을 위해 내가 하는 말을 더 기록하여라.
내가 간절히 바라는 것은 너희 영혼들이 완덕(完德)의 길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다. 완덕에 이르는 특수한 방법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너희 일상 생활의 모든 행위를 나와 친밀히 결합시키는 것이 완덕으로 나아가는 지름길이다. 너희들의 모든 행위를 영혼 중심적 행위로 변화시킨다면, 너희 일상 생활의 가치는 그 어느 것과 비교될 수 있겠느냐?

너희 영혼들이 사랑을 가지고 일을 하면,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어려움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사랑이 없이 냉냉한 가운데 일을 하면, 모든 것이 다 귀찮고 짜증이 날 것이다. 이럴 때에는 나의 성심에 다가와 용기를 얻어라. 낙담과 실망, 권태 등 모든 잡다한 것들은 내 앞에 모두 드러내 놓아라. 그러면 그날 하루는 너희 영혼들에게 있어서 매우 보람있는 하루가 될 것이다.

나의 마음은 인간들의 모든 어려움을 알고 동정하고 있다. 너희 영혼들이 나와 결합하되, 예사롭게 결합하려는 것은 싫다. 나는 이 결합이 서로 사랑하여 곁을 떠나지 않는 사랑의 결합이어야 하고, 영원하고도 긴밀하게 맺어지는 결합이 되기를 원한다. 
항상 대화는 못한다 하더라도, 항상 서로 마주하고 있으면, 서로서로 마음을 주고 정을 줄 수 있지 않겠느냐?

너희 영혼들은 내가 주는 평화와 위안 속에 있으면서, 설사 번민과 비애가 너희를 엄습해 와도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하지 마라. 나를 쳐다보고만 있어도 된다. 나를 바라보고만 있어도, 너희들은 내 마음의 애정을 얻을 수 있다.

나는 영혼들에게 나의 마음이 얼마나 그들을 사랑하는지를 말해 주려 한다. 그들에게 알려 주어라.
나는 모든 영혼들이 나만 바라보고 다른 데에 시선을 주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제발 나의 사랑을 잘못 이해하여 예사로운 보통 사랑으로 잘못 아는 일이 없기 바란다.

나의 성심을 사랑하는 것은 어려운 것도 거북스러운 것도 아니다. 감미롭고도 용이한 것이 바로 내 사랑이다. 이 사랑의 높은 단계에 오르려고 어떤 특별한 일을 할 필요가 없다. 
너희들의 크고 작은 행위를 순결한 지향으로 나의 성심과 친밀하게 결합시키면 된다. 그 외 다른 것은 나의 성심이 다 해줄 것이다.


 

('성심의 메시지' 중에서)






하느님과 일치하는 지름길

(가톨릭출판사/ '성심의 메시지' 중에서)

 

자기 생활을 나의 생활과 일치시키려고 노력하는 영혼은 나를 현양하는 영혼이며, 영혼 사업을 가장 열심히 하는 영혼이다. 그 자체로 보아서는 별로 가치 없는 사소한 일일지라도, 내가 너희 영혼들을 위해 흘린 피를 생각하면서 나의 마음과 일치시켜 행동하여라.

다시 말해서 사소한 모든 일도 나의 성혈 안에 담그어 정화시켜라. 공부를 할 때나, 글을 쓸 때나,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할 때도, 심지어는 휴식을 취하며 거닐을 때에도, 나의 마음과 일치시켜 행동하여라. 이렇게 하는 것이 온 세상을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파하는 것 못지 않게, 나와 일치할 수 있는 지름길이다.
다만 이러한 일들을  자기 멋대로,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지 말고, 순명과 책임의 궤도 안에서 실행에 옮겨야 하며, 나의 성혈과 밀접히 결합해, 오로지 하느님의 영광만을 위한다는 순수한 지향을 가지고 해야 한다.

나는 너희 영혼들이 이 점을 명심하여 행동하여 줄 것을 간곡히 당부한다. 너희들이 행동하는 그 행위 자체에 어떠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고, 그 일을 하는 너희들의 지향이 나와 밀접하게 결합할 때 그 가치가 있는 것이다. 
내가 나자렛 목공소에서 막 일을 할 때나, 공생활 중에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진리를 가르칠 때도, 한결같이 하느님께 영광을 위하는 지향을 가지고 했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아무나 할 수 없는 버거운 일을 공공연히 드러나게 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실제로 그들의 봉사가 나를 기쁘게 하고 위안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아주 천한 일을 하면서, 내 포도밭의 유익한 일꾼 노릇을 하며, 숨어서 일하는 영혼들도 많이 있다. 이들은 오로지 사랑 때문에 그 일을 한다. 사소한 행실일지라도, 그들은 자기들이 하는 일을 나의 성혈에 담그어, 본성을 초월한 황금으로 도금시킬 줄 아는 영혼이다.

너희 영혼들이 하루 온종일을 자기 영혼에 유익한 일이 되기를 바라면서, 나의 마음에 의탁하고 자기에게 주어진 직무를 사랑으로 이행한다면, 그 영혼들은 값진 보배를 거둬 들이는 일을 하는 것이다.

나는 이런 영혼들에게 나의 깊은 나의 사랑을 더욱더 보여주겠다. 나의 사랑은 무한정이다. 나의 사랑을 갈망하는 영혼들이 쉽게 차지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나의 사랑이다.

 

(가톨릭출판사 / '성심의 메시지' 중에서)





고해성사로 자비의 하느님께 다가가 의탁하세요


세례를 받은 신자들이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가장 훌륭한 선물 중 하나가 고해성사입니다. 고해성사의 진정한 의미를 조금이라도 파악하고 있다면 고해성사가 우리에게 얼마나 큰 위로와 축복을 주는 선물인지 알 수 있습니다.

많은 신자들은 고해성사를 보기를 두려워하는 신자들이 많아 주변에 고해성사를 하지 않는 자들도 많이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고해성사는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을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인간에게 준 선물 중의 선물인데도 말입니다.

고해성사는 인간의 죄악을 하느님의 대리인인 사제에게 통회와 회개하는 마음을 지니고 자신의 죄를 고백하면 모든 것을 용서받는 너무나 큰 축복입니다. 이를 소홀히 하여 방치한다는 것은 자신의 영혼을 마귀에게 영원히 던지는 너무나 어리석은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단적으로 말씀드리면 자신의 죄가 용서받지 못한 부분에 대해 연옥에서 단련받을 죄와 영원히 지옥에 갈 죄를 고백하여 이 땅에서 깨끗하게 용서받는게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신자들이 고해성사를 자주 못보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로, 신부님께 부끄러워 고백을 하지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는 너무나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고백은 신부님께 하지만 실은 하느님께 하는 것입니다.
사제의 용서하는 사죄경도 성부와 성자와 성령님의 이름으로 하는 것입니다. 만일 사제와의 인간적 안면이 있는 사실이 있어도 하느님과 사제를 전폭 신뢰하여 고백하십시오. 그러면 온 세상을 얻는 것과 같은 기쁨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법상으로 다른 신부님에게 고해할 수도 있습니다.

둘째로, 죄악을 진실로 고백하지 않고 숨기는 것입니다. 입에서 죄악을 고백하지 못하게 하는 사탄과 마귀의 존재가 있어서 그러합니다. 옳바른 고백을 가로막는 자는 누구이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사탄과 마귀입니다. 왜냐하면 마귀와 사탄은 한사코 신자들이 고백소에 들어가는 것을 막을 뿐만 아니라, 고백소에 들어간 신자에 대해서는 올바른 고백을 하지 못하게 가로 막습니다.
우리 신자들은 이것을 물리치게 우리의 주님께 자신의 죄를 올바르게 고백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기도하십시오. 마귀와 사탄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죄의 상태에서 신자를 죽게 하여야 자신들의 목적(지옥)을 달성하는 것입니다. 신자들은 고백소에서 사제에게 숨기지 않고 모든 죄악을 고백하여야 합니다.

부끄러운 죄 때문에 고백하기가 쉽지 않다고요? 아닙니다. 신자들이 고백한 것은 그 전에도 많은 신자들이 수도 없이 많이 고백한 것입니다.
 모고해(거짓 고해), 모령성체(대죄 중에 성체를 모심), 낙태, 불륜, 간통, 살인, 간음, 추행, 강간, 횡령, 상해, 사기, 절도, 강도, 불효, 우상숭배, 혼전 성관계, 자위행위, 음란한 생각, 도둑, 불친절, 교만, 잘난척 등 이루 셀 수 없는 죄악들을 하느님의 도우심 아래서 모두 모두 고백하십시오. 그리고 이 무거운 죄악의 짐을 벗어버리십시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악의 짐을 십자가의 수난을 통해서 다 짊어지셨습니다. 우리는 그 공로로 자신의 죄악을 뉘우치면서 고백을 진실히 하면 되는 것입니다.

셋째로, 미사 전후의 고해시간이 짧아 많은 신자들이 줄서 있어서 고백하기가 쉽지 않는 경우입니다. 보통 미사전에 약 10분동안 고해를 주기 때문에 줄서있는 신자들을 생각하면 오래동안 고해를 하기가 쉽지 않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면 좋은 대책이 있습니다. 서울의 경우 예를 들겠습니다. 서울을 제외한 타교구도 마찬가지 입니다.

서울교구청의 명동성당에 있는 상설고해소를 방문하십시오. 그곳에서는 오랜 시간동안(보통 5시간 이상) 고해를 주기 때문에 한 신자가 고해를 오래동안 보아도 무관하며 대개 일반 성당의 고해시간보다 몇배나 길게 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그러면 고해보는 것에 대한 많은 어려움과 의문점은 풀린다고 봅니다.

아래의 글은 성인들의 고해성사의 중요성을 알려줍니다.

오늘 당장 머뭇거리지 말고 자비의 하느님께서 형제자매 신자들을 계속하여 기다리고 계시는 고해소로 향하시기를 간청합니다. 가슴을 누르고 있던 음란과 교만과 거짓 등 각종 죄악들을 자비의 주님께 모두 고백하여 고해소를 나올 때 그 아름다운 기쁨을 맛보십시오.

1. '내 딸아, 내 자비의 샘인 고해성사를 받을 때, 내 성심에서 흘러 나오는 피와 물이 네 영혼을 채우고 너를 고귀하게 만들 것이다. 고해성사 때마다 신뢰하는 마음으로 내 자비에 빠져들어라. 네 영혼에 무한한 은혜를 내릴 것이다. 고해소 가까이 가거든 내가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라. 사제 뒤에 감추어져 있지만 고해자의 영혼 안에서 내가 직접 활동한다. 한 영혼은 이곳에서 하느님의 자비를 만날 것이다. 이 자비의 샘에서 자비를 퍼 올릴 수 있는 그릇은 신뢰밖에 없다는 사실을 전하여라. 신뢰하는 마음이 클수록 내 관용에는 한계가 없을 것이며 겸손한 영혼에게는 은총의 급류가 흐를 것이다. 교만한 영혼에게는 가난과 비참함만이 남을 것이다. 왜냐하면 내 은총은 교만한 사람을 피해 겸손한 사람들을 향해 흐르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성녀 파우스티나에게 하신 말씀)

2. '그들은 그들의 생활태도를 바꾸어야 하며 그들의 죄에 대한 용서를 청해야 한다.'
(1917년 10월 13일 파티마)

3. '죄악은 독이요 죄의 고해는 해독 행위입니다..죄의 고해는 죄악의 재범을 예방하는 좋은 약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다시 의로워지려면 당신의 죄를 고백하십시오. 그 독이 곧 사라질 것입니다. 고백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그러한 부끄러움은 하느님 앞에서의 심판 때는 아무 효력도 내지 못할 것입니다.'
(성 암브로시오)

4. '인자하신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후세에서 치욕을 당하지 않게 하시려고 현세에서 죄를 고백하도록 마련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는 하느님께 직접 죄를 고백한다'든가 '하느님 앞에서 고백하겠다'는 등의 말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만일 그렇다면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라는 말씀이나, '하늘의 열쇠를 교회에 맡기신다'는 말씀은 헛소리라는 말입니까. 우리가 무엄하게도 복음서와 그리스도의 말씀을 마음대로 없애버리겠다는 것입니까?'
(성 아우구스띠노)

5. '죄의 고백으로 죄악의 상처를 영혼의 의사인 사제에게 모두 보이면 완치의 은혜를 받는다는 것을 잘 아는 우리의 원수인 악마는 기어코 이를 방해하려 듭니다... 여러분은 나에게 와서 죄를 고해할 때 음란 등 드러난 죄만 고해할 것이 아니라 모든 종류의 은밀한 죄악까지 빠짐없이 고백하십시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6. '독사 같은 마귀가 사람을 몰래 물어 온 몸에 죄악의 독이 퍼져 있는데, 말씀 한마디로 그것을 고칠 수 있는 권능을 가진 스승에게 상처를 보이지도 않고 통회하지도 않는다면 어떻게 그것을 고칠 수 있겠습니까. 부끄럽다는 핑계로 상처를 의사에게 보이지 않는다면 아무리 명의인들 어떻게 하겠습니까. 아무리 좋은 약인들 병을 제대로 모르고서야 어떻게 병을 고칠 수 있겠습니까...'
(성 예로니모)

7. '많은 이가 자기 죄의 참 원인이 되는 욕망을 고해 신부에게 성실하게 고백하지 않기에 조금도 진보가 없습니다.'
'유혹에 가장 좋은 약은 고해 신부에게 솔직하게 열어 보이는 것입니다. 악마가 영혼에게 주는 첫째 해독은 고백하기를 주저하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 프란치스꼬 살레시오)

8. '선하고 진실한 고해 성사로 당신의 마음을 텅 비워 버리십시오. 고해 성사는 내가 죄를 지었기 때문에 성서의 죄 많은 여인처럼 예수님 앞에 서 있는 것일 뿐입니다. 나는 죄를 진 죄인으로 고해소에 왔지만 죄사함을 받고 고해소를 떠납니다.'
(마더 데레사)

9. '화해와 사랑을 베푸는 성사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에게, 본인은 이렇게 호소하고 싶습니다. 이 은총의 샘으로 돌아오십시오. 그리고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리스도께서 몸소 여러분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분께서는 여러분을 치유하실 것이고, 그리하면 여러분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평화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성녀 파우스티나와 하느님의 자비심



1. 성녀파우스티나 수녀

 

파우스티나는 수도생활을 하는 동안 계시와 환시 같은 특별한 은사들을 체험했고 이를 통해 자신의 사명이 하느님의 자비를 전하는 데 있음을 깨달았다. 파우스티나 수녀는 고해사제의 뜻에 따라 특별한 영적 체험을 통해 받은 하느님의 메시지들을 일기 형식으로 자세히 기록했다. 교황청은 한때 이 일기와 하느님의 자비 신심에 대해 제재 조치를 내리기도 했지만 자료들을 면밀히 검토한 후 이전 조치가 잘못됐음을 확인하고 1978년 이를 철회했다.

33살 나이로 생을 마친 파우스티나 수녀는 1993년 4월18일 
수녀에게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자비 축일로 지내라고 명한 부활 제2주일에 시복됐으며 2000년 대희년 같은 부활 제2주일인 4월30일 성인품에 올랐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파우스티나 수녀 시성식 강론을 통해 예수께서 수녀에게 “내 자비를 신뢰하지 않는 한 인류는 평화를 얻지 못할 것”이라고 하신 말씀을 상기시키면서 자비 메시지는 새로운 것이 아니지만 이 시대 사람들에게 한줄기 빛을 던져주는 특별한 선물이 될 수 있다 고 밝혔다.



2. 파우스티나 수녀가 전하는 하느님의 자비 신심


하느님의 자비 신심의 핵심은 하느님의 자비로우신 사랑을 일깨우고 하느님의 자비에 관한 신심을 실천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어린이와 같이 순수한 마음으로 하느님의 자비에 자신을 온전히 맡기는 것이 필요하다. 또 말과 행동과 기도로써 자비를 실천해야 한다. 이 두 가지를 바탕으로 하느님의 자비 신심을 전하기 위해 성녀가 받은 메시지들은 하느님의 자비 상본을 만들고 하느님의 자비 축일을 지내며 오후 3시에 하느님의 자비 기도 시간을 갖고 하느님의 자비 신심을 널리 전하는 것 등이다.

1) 하느님의 자비 상본 = 1931년 2월22일 환시 중에 파우스티나 수녀에게 나타난 그리스도는 수녀가 본 당신 모습 그대로 상본을 그린 다음 그 아래에 “예수님 저는 당신께 의탁합니다”라는 글을 넣도록 하셨다. 이는 부활한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손과 발에는 십자가에 못 박힌 표시가 나타나 있고 심장에서는 붉은 빛과 옅은 빛의 두 광채가 발산되는 모습이다.

3) 하느님의 자비 시간 = 파우스티나 수녀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시각인 오후 3시에 하느님의 자비를 찬미하고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며 죄인들을 위해 하느님의 자비를 청하는 기도를 바치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가능하다면 오후 3시에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하느님 자비를 묵상하며 자비를 실천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화살기도라도 바치자는 것이다.



3. 예수께서 파우스티나 수녀에게 하신 말씀


"나의 자비의 은총은 오직 하나의 그릇, 즉 의탁에 의해서만 전달될 수 있다. 더욱 더 의탁할수록 더욱 더 많은 은총을 얻을 것이다. 끝없이 의탁하는 영혼은 나에게 큰 위로가 된다. 왜냐하면 나의 은총이 모든 보물들을 그들에게 부어주기 때문이다. 그들이 많이 청하는 것이 나는 기쁘다. 그들에게 더욱 더 많이 주고 싶은 것이 나의 바람이기 때문이다. 그와 반대로 영혼들이 적게 청하고 그들의 마음을 좁힐 때 나는 슬프다." (일기 1578)

"
절망하는 영혼들의 선익을 위해 이것을 기록하여라. 영혼이 그 죄의 심각함을 보고 깨달을 때, 그의 끝없는 비참함이 심연에로 빠져드는 것이 그의 눈앞에 펼쳐질 때 절망하지 말고 그를 사랑하는 엄마의 품에 뛰어드는 아이와 같이 의탁과 함께 내 자비의 품으로 달아들게 하여라.
이 영혼들은 내 동정심 깊은 마음에 대한 최우선권을 가지며 내 자비의 첫번째 통로를 갖는다. 내 자비를 청하는 영혼이 실망하거나 부끄러움을 당한 영혼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그들에게 말하여라. 내 선함에 신뢰를 두는 영혼을 나는 특별히 기뻐한다
."(일기 1541)

"
내 자비에 의탁하는 영혼은 가장 행복하다. 내가 그들을 친히 돌보아 주기 때문이다." (일기 1273)

"나는 나에 대한 사랑에서 나온 자비의 행위를 요구한다. 언제나 모든 곳에서 이웃에게 자비를 보여야 한다. 이것을 피하거나 변명하거나 자신에게 면제시키려 해서는 안된다.
나는 이웃에게 자비를 실천할 세가지 방법을 준다.

첫째는 행동으로, 둘째는 말로, 셋째는 기도로서이다.
이 세 단계는 자비의 완전함을 내포하며 나에 대한 사랑의 확실한 증거이다. 이것으로 영혼은 나의 자비에 영광과 흠숭을 드리는 것이다." (일기 742)

"
자비를 실천할 물질적인 것을 갖지 못해서 종종 염려하는 많은 영혼들을 위해 이것을 기록하여라. 허가도 요구하지 않고 창고도 요구하지 않는 정신적 자비가 훨씬 더 칭찬할만하며 모든 영혼을 사로잡는다.
어떠한 식으로든 영혼의 자비를 실천하지 않으면 심판의 날에 나의 자비를 입지 못할 것이다. 오, 영혼들이 자신을 위하여 영원한 보화를 모으는 방법을 알기만 하였다면 그들은 심판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의 자비로 나의 심판을 누그려뜨렸기 때문이다
." (일기 1317)

"
영혼들에게 그들이 어디에서 위안을 찾아야 하는지를 말해 주어라. 그곳은 자비(화해의 성사)의 법정이다. 그곳에서는 가장 위대한 기적이 일어나며 또 끊임없이 반복된다. 이러한 기적을 위해 큰 순례를 하거나 특별한 의식을 거행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나의 대리자의 발 아래에 믿음으로 와서 자신의 비참함을 그에게 드러내는 것으로 충분하며 그러면 하느님 자비의 기적은 완전하게 증명되어 질 것이다. 어떤 영혼은 인간의 관점으로 보아서는 썩어가는 시체와 같아서 더 이상 회복 희망이 없고 모든 것을 이미 잃어버린 것처럼 보이는 영혼도 하느님과 함께라면 그렇지 않다. 하느님의 자비의 기적을 이용하지 않는 영혼들은 얼마나 불행한가! 너희는 헛되이 울부짖을 것이다. 그때는 이미 너무 늦은 것이다." (일기 1448)

"
나는 내 자비의 영광을 전파하는 영혼들의 전 생애를 자애로운 어머니가 아기를 돌보듯이 보살펴 줄 것이며, 그들의 임종 시에 나는 심판자가 아닌 자비로운 구세주로 그들을 대할 것이다." (일기 1075)



4. 하느님 자비의 5단 기도


예수님께서는 파우스티나 수녀에게 하느님 자비심의 5단 기도의 가치와 효력을 보여 주셨으며 이 기도에 덧붙여지는 약속도 주셨다.
"이 기도를 바치며 청하는 것은 무엇이나 베풀어 주는 것이 기쁘다. (일기 1541) - 만일 그것이 내 뜻에 부합한다면(일기 1731)"

하느님의 뜻은 인간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다. 임종의 시간에 이 기도를 바치는 사람과 죽어가는 사람을 위해서 이 5단 기도를 바칠 때 주님께서는 행복하고 평화로운 죽음의 은총을 약속하신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
임종의 시간에 이 기도를 바칠 모든 영혼을 나 자신의 영광처럼 지킬 것이다. 죽어가는 사람을 위해 다른 사람이 바쳐줘도 그 대사는 같다. 죽어가는 사람 옆에서 이 기도가 바쳐질 때 하느님의 분노는 누그러지고 헤아릴 수 없는 자비가 그 영혼을 에워싼다.(일기 811)

사제들은 구원의 마지막 희망으로서 죄인들에게 이 5단 기도를 권하게 하여라. 아무리 악한 죄인이라도 이 기도를 단 한번이라도 바친다면 나의 무한한 자비를 얻을 것이다.(일기 687)" 그러나 이 5단 기도를 단 한번 바칠때는 기도에 포함되어진 의미에 상응하는 감정으로 바쳐진 때라야 한다. 무엇보다도 신뢰와 겸손 그리고 신실하고 깊은 통회의 태도로 바쳐져야 한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기도를 바침으로 너는 인류를 나에게 더 가까이 데려오고 있다."(일기 923)



5. 하느님 자비심의 5단기도 방법


( 묵주를 이용하지만 로사리오기도와 다름)

1) 주의 기도, 성모송, 사도신경을 바친다
.

2) 각 단이 시작되기 전에 있는 큰 묵주알에서
"영원하신 아버지, 저희가 지은 죄와 온 세상의 죄를 보속하는 마음으로 지극히 사랑하시는 당신 아들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몸과 피, 영혼과 신성을 바치나이다
."

3) 각 단의 10 묵주알 각 각에서
"예수님의 수난을 보시고 저희와 온 세상에 자비를 베푸소서
."

4) 위의 기도를 마친 후
"거룩하신 하느님,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분이여, 저희와 온 세상에 자비를 베푸소서
."  [ 4)를 3번 반복
 ]


*~*~*~*~*~*~*~*~*~*~*~*~*~*~*~*~*~*~*~*~*~* 

“거룩한 연옥 영혼들과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하느님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다른 신들을 믿는 사람들과 쉬는 교우들을 위해서” 라는 지향을 미사에 참례때 혹은 기도하면서 붙이면 매우 큰 선행과 보속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인의 통공 교리를 생활화 한다면 지상에서 행할 수 있는 선행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과 예수님과 성령께 찬미와 흠숭을,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와 성가정의 수호자이신 요셉께 사랑을!

자비의 예수님, 양점상 마리아와 장한상 요셉과 장가브리엘과 모든 거룩한 연옥영혼에게 구원의 은총 속에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교회와 교황님과 사제와 수도자와 온 세상의 모든 이들과 태아에게도 은총과 자비를 베푸소서. 온 세상과 우리 나라에도 사랑과 평화와 축복이 가득하게 이끌어주소서. 성모 마리아님과 배필이신 성 요셉과 성인의 통공 안의 모든 가족들은 하느님께 빌어주소서. 이 모든 것을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0 1,002 1

추천  0 반대  0 신고  

TAG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로그인후 등록 가능합니다.

0 / 500

이미지첨부 등록

더보기
리스트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