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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ㅣ체험
하느님 눈으로 보면 우리 인생은 도토리 키재기입니다.

128807 강만연 [fisherpeter] 스크랩 2019-04-05

 

 

고등학교 동창 중에 포항공대를 간 동창이 있습니다. 이 동창 친구한테서 도토리 키재기라는 말을 처음으로 들었습니다. 이 표현을 보면 참 재미있는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실제로 초등학교 5학년 때 어머니랑 다른 동네분들이랑 마산 근교에 있는 야산에 도토리를 따러 간 적이 있어서 그때 도토리를 실제로 보고 그 외는 그림으로밖에 보지를 못했습니다. 

 

정말 도토리는 말 그대로 고만고만한 크기였습니다. 밤 같은 건 왕밤도 있고 정말 작은 밤도 있어서 크기가 큰 것도 있고 작은 것도 있고 그렇습니다. 근데 도토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근데 우리 사람이 봤을 때 도토리 자기네들끼리 너가 크니 내가 크니 하면서 서로 자기가 크다고 키를 맞대어 재어 본다고 하는 걸 보게 되면 우습지 않겠습니까? 마치 도토리처럼 우리 인간 세상의 삶도 도토리 키재기 같은 삶이라고 생각됩니다. 

 

세상에는 부자도 있고 가난한 사람도 있고 선한 사람도 있고 악한 사람도 있고 정말 다양한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우린 신앙생활을 하니 특히 죄의 관점에서 죄의 경중을 놓고 봤을 때 누구누구는 누구보다 죄가 많니 적니 하고 우리는 그런 걸 판단하며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그건 인간의 머리로 생각한 기준에서 봤을 때 그렇습니다. 하느님 눈으로 봤을 때는 어떨 것 같습니까? 저는 하느님이 아니라서 잘은 모르겠지만 만약 하느님께 누가 이런 걸 말씀을 드린다면 저는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실 것 같습니다. 

 

도토리 키재기라고 말씀하실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자비는 대자대비하시고 또 그 깊이가 심연과 같아서 그런 자비 안에서는 우리 각 개인의 죄가 그 자비 속에서 녹아 죄의 농도를 비교를 한다면 수학적인 개념으로 생각을 하게 되면 그 자비가 무한대에 가깝다고 하면 죄의 농도도 자비의 바다에서는 거의 제로에 가깝고 아니 자비가 무한대면 인간이 느끼는 죄의 경중은 똑같다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만약 하느님의 자비가 인간이 품을 수가 있는 자비처럼 한계가 있다면 분명 죄의 경중은 인간이 생각하는 죄의 무게와 똑같아 하느님께서도 그렇게 느끼실 테지만 하느님의 자비는 인간의 자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자비이기 때문에 하느님 앞에서는 그래서 누가 죄가 많니 적니 하고 따질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바로 오십보 백보입니다. 전쟁에서 오십보 도망간 사람이 백보 도망간 사람에게 더 겁장이라고 말한다고 해서 자기는 겁장이가 아니라고 말할 수가 없지 않겠습니까? 

 

속담 중에 죽인지 밥인지는 솥뚜껑을 열어봐야 안다고 하는 말처럼 우리 인간도 인간의 생각으로 무언가를 재단하고 판단을 합니다. 이 모든 게 완전한 인간이 아닌 불완전한 인간의 판단이기에 우리의 판단도 하느님께서 직접 하느님의 눈으로 우리의 마음 뚜껑을 열어보시고 판단하시면 정확한 판단을 하실 겁니다. 하느님께서는 전지전능 하셔도 뚜껑을 열어보시지 않으셔도 다 아실 겁니다.


 

이처럼 우리도 쉽지는 않지만은 가급적이면 하느님 눈으로 모든 걸 보려고 하면 나중에는 언젠가는 자신도 모르게 가랑비에 옷 젖듯이 하느님의 몸인 거룩한 몸과 영혼으로 변화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도 세상을 살면서 이런 표현을 곧잘 사용합니다. 말이 쉽지, 쉽지 않다는 말 말입니다. 

 

이건 말로써는 쉽지만 그 말처럼 행동과 실천을 하기가 어렵다는 말이지 않습니까? 그렇다고는 하나 저도 이런 표현을 사용하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 말도 한번 곰곰이 생각한다면 무책임한 말일 수 있고 또 노력을 하지 않겠다는 무언의 뜻이 녹아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익히 아는 고시조를 제가 조금 바꾸어서 한번 표현해드리면 이게 무슨 뜻인지 이해가 가실 겁니다.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오르면 못 오를리 없건만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리오. 초등학교 때 배운 고시조입니다. 이걸 제가 변형을 시켜보겠습니다. 

 

아무리 인간이 실천하기 어렵다고는 하지만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또 안 되면 또 하고 해서 노력하면 언젠가는 실천하는 날이 올 텐데 사람들은 실천도 해보지도 않으면서 흔히 쓰는 말로 말이야 쉽지 하면서 구차하게 변명거리만 찾으려고 한다네. 

 

제가 좀 재미있게 표현을 변형했지만 고시조처럼 하게 되면 설사 완전히 하느님처럼 거룩한 몸이 되지는 않는다고 할지라도 노력한 만큼은 거룩한 몸과 영혼으로 변화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니 저희도 항상 하느님 눈으로 모든 걸 보려고 애를 쓰면 좋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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